1. 달동네 밥상머리
총회 있는 날이라 점심 드실 시간이 없으셨나 봅니다.
저도 단장~단장~ 하느라 늦을 뻔 하였습니다.
12시 29분에 도착하여 보니 교수님과 최은실 쌤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일찍 오신 김성례 쌤도 합류. 한국인의 평균 가족 수 네 명입니다!(요즘은 더 적어지긴 했지만요.)
오붓하게 김치찌개 전골과 생선구이를 먹었답니다.
아버지와 함께 딸 셋이 밥을 먹는 모습을 오버랩하며 혼자서 키득키득.
딸 셋 중 제가 막내였어요ㅎㅎ~
다음 주에는 낮12시 30분에 많은 가족들이 오실 것 같아요.
문영일 선생님도 담 주에는 꼭 오신다고 연락 받았거든요^^
2. 남프랑스와 스위스 문학 기행 (제4강 베른과 코놀핑엔)
우리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습니다. 상대성 원리를 완성시킨 집이 개조된 아이슈타인 기념 박물관을 입장하고 뒤렌마트가 태어난 크놀핑겐을 탐방한 후 몽트뢰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투숙합니다.
과학과 문학의 두 천재, 아인슈타인과 뒤렌마트를 공부해봅니다. 이론물리학을 베른 대학에서 강의했던 알베르트 아이슈타인부터 시작합니다.
*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4 March 1879.3.14. - 1955.4.18.
독일 울름 출생의 유대계 물리학자이다. 유대인이었으나 신앙에 얽매이지 않는 가정 환경에 서 자랐다. 그러나 인생 후반부에는 유대민족주의, 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 평화주의자였다. 학교 성적은 반평균 성적을 떨어뜨릴 만큼 형편없었으나 수학 실력이 탁월하여 취리히 공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교사가 될 실력이 안 돼 호구지책으로 베른 특허청에 근무하게 된다.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 고체 비열 이론 네 개의 논문을 <<물리학 연보>>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1914년에 베를린 대학 교수, 카이저 빌헬름연구소 소장(director of the Kaiser Wilhelm Institute for Physics, 1914?1932)이 된다.
1차대전 기간 중 독일 지식인들은 명백히 군국주의적인 침략행위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문명세계를 향한 지식인>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아인슈타인은 거기에 서명하지 않았을 정도가 아니라 그 반대로 반침략 평화운동을 주창하는 <유럽인을 위한 선언>에 가담했다. 그 추진자가 투옥 당할 정도로 탄압이 거셌으나 아인슈타인은 국적상(스위스 국적) 형벌을 면할 수 있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고, 1924년 4월 대사관에서 수상합니다.
왜 이런 시간차가 발생했을까요? 네이버 지식백과로부터 답을 얻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1921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전보가 베를린의 집으로 전달되었을 때 아인슈타인과 엘자(부인)는 중국에서의 강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05년 7월 27일, 아인슈타인은 지난 1922년 11월 상하이(上海) 방문 당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을 처음으로 통보 받았다고 보도한 기록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도 유별났다. 그가 세계 순회강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식에는 스웨덴 주재 독일 대사가 대신해서 참석했다. 독일 대사는 아인슈타인이 1901년에 스위스 시민권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독일 시민이냐 스위스 시민이냐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노벨상은 "이론물리학에 기여하고, 특히 광전효과의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주어졌다. 당시의 노벨물리학상은 이론보다는 실험을 강조하고 있었고, 혁명적 이론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1923년에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회를 위해 스웨덴을 방문하여 역설적이게도 광전효과가 아닌 상대성이론에 대해 강연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별난 노벨상 수상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갈릴레오에서 아인슈타인까지), 2009.8.1, ㈜살림출판사)
1933년에 나치의 압력으로 추방되어 미국에 건너가,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연구원이 되었다.
1952년, 이스라엘의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달라는 요청 거절하였다.
1955년 76세의 나이로 프린스톤 병원에서 사망했다..
원폭제조나 사용에 극력 반대. 그러나 2차대전을 전후하여 그는 원폭 제조에 깊은 관심과 참여의사를 나타냈으나 전공도 달랐고 위험인물이라는 낙인 때문에 일체의 자료제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참여의 기회도 없었다고 보는 견해(에드 레지스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도 있다. 국적과 신앙을 방기한 이 양심의 주인공은 메카시즘 선풍 때 독일이 섰던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려 한다고 우려할 만큼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났다.
* 뒤렌마트 드라마의 매력
뒤렌마트가 추구하는 문제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존엄성 옹호이다. 그는 문학과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둘 다 신랄하게 비판한 작가이자, 비인간화 현상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명비판적 시각을 갖춘 극작가였다. 프리츠 마르티니는 <<독일문학사>>에서 뒤렌마트를 이렇게 평했다.
브레히트를 수용하고, 시대와 시민을 비판하고, 인도적이며 도덕적인 충동을 사람에게 주고, 또한 괴담과 그로테스크로써 부조리의 세계를 통찰한다 ..........그는 환상이 풍부했기 때문에 극을 만들거나 연출함에 있어서 매우 자유로웟고, 가끔 패러디를 서서 핵심을 부각시켜 준다. 그는 풍부한 착상에 넘친 작품을 써서 방송극에 자극을 주었고, 또 훌륭한 희극을 써서 현대 연극에 실험의 영역을 초월한 실례를 제공해 주었다.
프리츠 마르티니 지음, 황현수 옮김, <<독일문학사>>, 을유문화사.
그는 현대사회의 위험을 이렇게 갈파했다.
“이래서 우리들을 위협하는 것은, 이미 신이나 정의나 제5교향곡의 경우처럼 운명이 아니고, 교통사고이며, 부실공사에 의한 댐의 붕괴이며, 원자폭탄 공장의 폭발이며.......기폭장치의 스위치 조작 잘못이다. 이같은 사고의 세계로 우리들의 길은 통해 있다.”(<<사고>>. 위의 책에서 재인용).
뒤렌마트 Friedrich D?rrenmatt가 어떤 인물인지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1921.1.5.- 1990. 12.14.
스위스 베른주 코놀핑엔(Konolfingen)에서 목사 아들로 출생했다,
열네 살(1935) 때 베른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인문계 고교를 졸업 후 취리히와 베른 대학에서 철학. 문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키엘케골과 아리스토파네스, 카프카 등을 즐겨 읽었던 그는 화가냐 작가냐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전자를 선택했으나 이내 희곡에 손을 댔다.
1943년(22세)부터 드라마와 소설. 방송극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창작하던 그는 이듬해부터 작품발표를 시작했다.
1948년, 희곡 <<로물루스(Romulus) 대제>
1950년, 희곡 <<미시시피씨의 결혼>>
1951년, 방송극 <<당나귀 그림자 재판>>
1954년, 희곡이론서 <<연극의 제문제>>
1956년, 희곡 <<노부인의 방문>>
1962년, 희곡 <<물리학자들>>
베른시 문학상(1954), 전쟁맹인들의 방송극상(1957), 프릭스 이탈리아 및 로잔느 객석문학상(1958), 만하임시 쉴러연극상(1959), 뉴욕비평가상(1959), 러시아작가회의 참가(1967) 등을 수상했다.
1990. 12.14, 스위스 뇌샤텔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4월의 봄날 저녁 ♡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리버사이드 호텔로 갔습니다.
한국산문작가협회 총회, 한국산문문학상 시상식, 한국산문신인작가상 시상식, 윤오영수필문학상 시상식 네 개의 행사를 했습니다.
김미원 회장님의 파격적인 내빈 소개와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이임 인사.
정진희 회장님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고 하였지만 의연하고, 조리있고, 산뜻하게 한 취임인사.
가장 무대에 많이 오르셨던 이종열 이사님의 재치있는 멘트들은 행사에 유쾌함을 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앞에서 뒤에서 수고하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장사익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봄날은 간다’에 4월의 봄 저녁은 즐겁게 흘러갔습니다.
가게에서 어제 찍은 사진과 같이 후기를 올리려고 했는데 카메라 메모리 카드는 집에 두고 왔고, 휴대폰 SD는 이상해져 포맷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포맷하면 저장파일은 휘~익사라지고. 홈피도 저를 거부하고... .
시간을 더 지체하기보다 그냥 후기 올리겠습니다.
미리 나눠 드린 명작반 교재(5강), 한국산문 4월호 (수필반) 꼭 가져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