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벌써 다 가버렸습니다.
금요반 3월 마지막 주 수업을 하는 오늘.
날씨는 봄날보다 조금 더웠습니다.
꽃들이 서둘러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한꺼번에 피어나 압구정 교실이 아니라 양평강가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심을 흔드는 아찔한 이 계절.
그래도 저희반 교수님과 사나이 한분,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들은 교실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웃음을 피우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업 시작 전. 더 들뜨는 일들.
설영신님이 수필집을 보내주셨습니다. 정성 가득담긴 한편의 수필집이 설영신님의 숨결 같아 소중히 받았습니다. 저희반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서 보내셨습니다. 택배를 보내면 혹 누락될까 염려하셔서 반장님께 직접 배달하셨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고개 숙이며 감사히 받았습니다. 저희반 회원님들께 기쁜 마음으로 설영신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저희반 회원이신 김정희님도 수필집을 직접 가져오셔서 나눠 주셨습니다. 한분한분께 정성을 담아 눈인사를 하고 손을 잡으며 전해주시던 모습이 봄날 꽃처럼 아름다웠답니다. 신입회원분이 김정희님의 수필집을 받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며느리도 보신 분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시더군요. 너무 젊고 아름답다고... 그리 보이는 비결이 뭔지 책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늘 열정적으로 사시기 때문을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이렇게 따끈따끈한 두 권의 수필집을 받았습니다. 책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들떴습니다. 좀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글을 써야지 하는 각오도 다지게 합니다. 어쩜 이렇게 부지런히 글들도 잘 쓰시는지 그저 감탄하고 부럽기만 합니다. 책을 내신다고 고생하셨을 작가님들의 정성과 창작의 고통에 고개 숙이며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임옥진님의 <내 25살의 8월>
이글은 임옥진님의 스물다섯 살 8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시절 정선 여중에서 교사로 제직할 당시의 이야기를 쓴 글입니다. 젊은 시절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다시 못 올 시간’ 글 속에 담긴 이 한마디가 추억이 되어버린 지금. 글을 써서 되살아났습니다. 저희모두 잠시 그 시절 8월의 정선으로 돌아갔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제목을 조금 바꾸셔야합니다. 이 글은 메시지를 전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니 글의 분위기를 잡아주고 호흡을 맞춰서 감성이 묻어나는 문장으로 끌고 가야합니다. 할 말을 다 적지 마세요.
다시 한 번 다듬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명자님의 <무지개 빛깔 주례사>
이글은 작가가 경험한 주례사에 대한 글입니다. 주례사가 너무 길어 잠시 정신을 잃은 신부의 이야기와 무지개 빛깔에 비유해서 멋진 주례사를 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주례사는 참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빨강이 빨리 해결(어려운 일이나 실수)로 주황이 주는 생활(상대의 배려) 노랑은 노하기를 더디하라등등 참신한 이 주례사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귀 기울여 들었다고 하네요. 저라도 그랬을듯합니다.
송교수님의 평
너무 지루한 주례사는 모두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글에 주례사의 말을 모두 담았는데 주례 말 보다는 작가의 말이 더 많아야합니다. 이렇게 참신한 주례사 몇 개를 써서 작가의 주례 소감을 말하는게 좋을듯합니다.
오수화님의 <장을 담그며>
이글은 작가의 어머니가 장을 담그는 정성과 삶의 한 토막, 그리고 본인이 장을 담그는 이야기입니다. 장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운 금줄이 둘러져 있어 무서웠다는 작가. 귀신 못 오게 하는 신이 그 주변에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하네요. 옛 어른들의 장을 담그는 정성이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정성이 가족을 돌보는 힘이 되었겠지요. (사람의 느낌이란 모두 다른 것. 전 사실 새끼를 둘러친 항아리가 신기했답니다. 왕관 쓴 항아리라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항아리는 왕 대접을 받아야한다며 잘 모셔야한다고 조심하셨던 친정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답니다.)
송교수님의 평
작가는 좋은 글감을 지지고 있습니다. 글 속에 응수 깊은 생각이 담겼으며 생이 깃든 글입니다. 그것을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합니다. 글을 쉽게 쓰세요. 전체를 매듭 하는 내용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적인 감정을 빼고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잘 살려보면 좋은 글이 될듯합니다. 앞으로 여러 편을 내기보다는 이글을 잘 고쳐보세요.
오세윤님의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글은 작가의 친구분이야기입니다. 힘든 삶은 산 이분.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작가의 좋은 필력으로 깔끔하게 쓰인 이 글은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근대 시절이 가장 좋았다는 이분. 군대 갔다 오고, 가정 이뤘고, 아파트도 장만했으니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만큼 다 했다는 이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게 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잘 쓰인 글입니다.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을 발굴해서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산문>>3월호도 봤습니다. 3월에 등단하신 소지연님이 지금 미국에 계셔서 “등단 글은 참 잘 쓴 글입니다. 있으면 더 칭찬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렇게 송교수님이 말씀하셨답니다. 멀리 계시지만 소지연님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송교수님이 지난 시간 부모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참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좋은 글을 가져오셨습니다.
윤형두님의 <나의 어머니>를 교수님의 좋은 목소리로 읽어주셨답니다. (너무 길어 포인트만)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모두 벗을 자신이 있는지 저희들에게 물었습니다. 내 가슴에 드리운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라고도 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말하며 어머니를 말합니다. 이 글의 어머니는 격동의 시대에 굽히지 않고 한 시대를 건너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던 분이였습니다. 잘 쓰인 글을 읽는 기쁨은 수업을 더 알차게 했습니다.
좋은 수업에 여심이 아니라 글심이 흔들렸답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좋은 글 여러 편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살짝 했습니다.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바쁜 교수님은 서둘러 가시고 저희들만 밥정을 다지고 자리를 옮겨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와 뜨거운 커피로 수다도 모처럼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 글을 쓸까와 수업시간에 과제로 받은 좋을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했습니다.
오늘 결석하셔서 빈자리 허전했던 김진님, 책은 다 챙겨 두었습니다. 다음 주 오실 때는 큰 가방 챙겨오세요.
이제 총무도 믿지 마소서.
어제 저녁 이 후기를 제가 창작 합평에다 올렸습니다.
오늘 아침 고마운분이 그걸 알려 주셔서 급히 옮겼는데
후기 기다리셨을 님들께 죄송합니다.
그리고 벌써 댓글이 달려 지울수도 없다는...
어찌해야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