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님이 등단떡으로 절편을 내셨는데 본인은 정작 수업에 못 오셨어요... 보내주신 떡 너무 잘 먹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꼭 뵈어요.
박유향 총무님도 휴가차 못 나오셔서 이순례반장님께서 더욱 바쁘셨습니다^^. 항상 노고에 감사드리고 옆에서 항상 도와주시는 안옥영샘, 황다연샘 감사합니다.
<쓰기 중독> - 김은희
송교수: 잘 고친 글이다. 성경 쓰기를 시작하면서, “끝내지 않아도 되는 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가 마저 끝내도 좋을 일이다.” 라고 했는데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대만에 갔더니 복숭아씨를 새겨서 작품을 하는데, 그 안에 뱃사공도 들어있고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었다. 상상도 못할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한 작품이 아니라 몇 대에 걸쳐서 한 것이다.
일본의 한 가족이 청일전쟁 당시 한국에 살려고 온 적이 있는데, 한국 군산에 뱃사람으로 정착해 살았다. 그러다가 아들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일본에서 한국까지 와서 살게 된 과정과 일상과 일과를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박영효가 그 배를 타고 갔다 등 아주 중요한 기록도 많았다. 그런데 아들은 한국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으로 가서 살게 되는 과정까지를 계속 쓰게 되었다. 그런 기록이 아주 소중하고 중요하다.
일본은 기록문학이 잘 습관화되어 있는데 한국은 기록이 오히려 피해의 증거가 되는 과거가 많았기에 기록하는 습관이 없는 것 같다.
김선생은 본인을 작가로 정의했는데, 번역가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 1929년 일제 시대때 번역가가 나타났다. 해외문학파가 외국문학을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하면서 정착했다. 그 전까지는 일본어 중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1929년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출판사와 야합해서 일본에서 유행하는 외국문학책들을 번안해서 국내에 소개했다. <이수일과 심순애>처럼 번안한 작품들이었다. ‘번안문학의 시대’였다.
1950-60년대에 이르러 현재 우리가 읽는 외국작품이 번역되어 들어왔다.
그래서 김선생은 러시아문학을 국내에 많이 소개하기에 번역가가 더 맞는 것 같다.
한국은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대부분 한국문학계나 비평계에 뿌리 내리고 있다.
독자: “‘독’하나쯤은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에서 중독에서 독만을 빼서 독이란 표현을 했는데 이 표현이 과연 정확한지?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은지..
작가: 그것은 중독에서 ‘독’자를 빼낸 것은 아니고 자신을 치유하고 타인을 치유하는 독이란 의미에서 쓴 것이다. 독이 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쓴 표현이다.
독자: ‘대충 갈겨놓은’이란 표현을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명> - 이순례
송교수: 표현이 너무 정확하고 좋았다. 결론도 너무 좋았다. 자칫 휴머니즘으로 흘러갈 수 있었는데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 하나쯤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표현이 아주 인간적이라서 좋았다.
독자: ‘이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빼도 좋을 것 같다.
독자: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에서 하지만 다음에 쉼표를 넣은 것은 어떨지..
송교수: 이 작품을 보면서 서정인의 <후송>이 생각났다. 서정인의 <후송>은 당선작이면서 출세작이었다. 한국문학에서 ‘이명’을 다룬 작품이 없었기에 조금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군대에서 한 군인이 이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타난 것이 자신 같이 생각되는 빈 깡통을 향해 150발을 모두 쏜 후부터였다. 그 후 후송되는 과정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 무의식, 불안, 초조 등을 잘 포착한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청준과 서정인 모두 ‘환부 없는 환자’를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소재도 소설로 쓰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수필로서 아주 잘 된 글이다. 힘도 있고 아주 좋다.
<딸자랑> - 김혜정
송교수: 재밌게 아주 잘 썼다. 그냥 평서문이 아니라 약간의 역설이 되어 있다. 1,2,3,4로 되어 있는 것을 꼭 그렇게 구분될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나, 둘, 셋’ 등으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잘 쓴 글이다. 글이 재밌다.
독자: ‘5’는 지워도 좋을 것 같다.
작가: 그 부분은 지우고 문장만 바꿔 쓸 것이다.
<청춘 엿보기> - 김혜정
송교수: 전시회 작품에 대한 해석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것은 아니고 글은 잘 썼다. 결론만 말하면 ‘에필로그’가 왜 필요한지?
작가: 이 글은 너무 많이 오랜 시간 고친 글이다.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전시회를 보고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에필로그였다.
독자: 그 부분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송교수: 한국에서 본 것인가? 미국에 가서 전시회를 본 것처럼 되었다. 처음 부분에서 ‘그리 아름다울 수 없었다.’에서 ‘그리’는 ‘그토록’으로 바꾸었다. ‘기념촬영을 한 A선생......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라는 문장은 좀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작가: 사실은 사진전을 보면서 막 눈물이 났었다. 왜 젊은이들이 저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는데 그런 감정이 잘 드러났는지...
송교수: 청춘의 무기력을 언급하고 있는데 본인의 멍함을 설명할 수는 있는지... 도덕성이나 그런 부분은 전혀 언급이 없고 예술의 현대성을 마주한 작가의 심정을 논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정리해야 될 것 같다.
# 월반 풍경
백화점이 휴점일이라서 지하 1층 오므라이스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휴가철이라 못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다음 주에는 꼭 뵈어요.
이번 주는 많이 덥다고 하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한 주 되세요.
아참. 복날이네요^^. 삼계탕 드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 참고로 아래에 서정인의 자료를 올립니다.
서정인 [徐廷仁]브리태니커
1936. 12. 20 전남 순천~.
소설가, 작가.
본명은 서정택(徐廷宅). 초기작에서 인간과 인간의 근본적인 괴리와 세계의 타락을 응시하는 비극적 시각을 고도로 정제된 문체로 표현하며 현실적 삶의 쓸쓸함과 무의미를 날카롭게 드러냈지만, 후기에는 자신의 소설언어에 대한 근본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상투적인 세상 이해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완성한 작가로 꼽힌다. 순천중학교와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2년 전남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2002년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1~73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었고 1979~82년 미국 털사대학교에서 유학했다.
1962년 〈사상계〉 신인작품 모집에 현대인의 주체의식 문제를 다룬 단편 〈후송 後送〉으로 등단했다. 초기작에서는 지식인의 자의식적 세계를 주로 다루었으며, 단편소설 미학의 전범이라 불릴 만큼 절제된 문체미학에 바탕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문학언어를 구사했다. 그러나 1983년 〈철쭉제〉 연작 이후에는 일상언어인 구어체를 소설의 전면에 끌어들여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말을 비판적으로 소설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달궁〉 연작과 〈모구실〉 연작은 이러한 언어실험과 형식실험이 극단적으로 추구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들을 통해 서정인은 소설이, 두텁게 쌓인 허위와 편견의 먼지를 씻어내고 사람살이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2001년 〈달궁〉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작품 <후송>
작가가 최초로 발표한 작품답지 않게 원숙한 경지를 보여 준 것으로 평가 받은 이 소설에는 '티나이투스'라는 희귀한 귓병을 앓는 성 중위가 등장한다. 그는 후방 병원으로 후송 받기 위해 군의관에게 자신의 병 증세를 설명하지만 번번이 난관에 부딪힌다. 무려 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계속되는 주인공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을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문제이다.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주인공만이 느끼는 자각 증상이므로, 그가 환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군의관들이 그의 말을 믿어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군의관들은 완고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의 말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성 중위는 할 수 없이 상급 병원에 의견서를 받으러 가게 되고, 결국 그 권위에 기대어 후송을 승인 받는다. 이처럼 자신의 진실을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독한 개인과, 그 과정에서 그가 겪게 되는 정신적 상처가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또 하나의 주제는 개인의 진실을 계속해서 묵살하는 군대 조직,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이다. 그가 근무하던 부대는 임무 완수를 위해 부하의 아픔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군인들이 근무하는 곳이며, 병원 역시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진 공간 속에 힘없는 환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다. 구성원의 개성과 인간성이 일방적으로 무시되고 억압되는 공간들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폭력적인 조직과 속성에 대하여 작품 곳곳에서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