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반 오늘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조병옥님은 여전히 아프셔서 결석하시고 지난주에 못 오신다고 미리 신고하신 한희자님과 임옥진반장님, 그리고 지난시간 우리반을 빛내주었던 신임회원 김정인님도 결석. 허전하지만 다음주에는 나오시리라 기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송교수님은 합평전에 “오늘 글들은 모두 수준 이상입니다. 아무 문제 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합평하면서 글쓰기 일반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수업 방향을 먼저 설명하셨습니다.
조병옥님의 <자장면 먹는 사람들>
이글은 소설입니다. 글의 끝에 ‘...이런 식으로 써 보면 어떨까? 하고 용기를 내 본 첫 시도입니다. ...’ 이런 추신이 달려있습니다. 소설 쓰는 것을 배울 겸해서 쓰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주인공은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문희라는 여인입니다. 어떻게 이혼하게 되었냐는 선배의 질문에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선배와의 대화체 글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입하나 덜기위해 선택한 결혼이야기와 결혼하고서야 자신을 알아버린 문희. 그리고 이혼. 왜 이혼하게 되었냐는 선배의 질문에 ‘우린 그 흔해빠진 부부 말다툼 같은 것도 잘 안했어요. 사람이 죽을 때 보면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다가 마침내 숨소리가 완전히 멈추잖아요. 우린 그냥 그렇게 될 때까지 살다가 헤어진 거예요.’라고 합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리고 언젠가 수필로 쓴 <떡 사세유>의 글이 들어오고 이 할머니를 목격한 날 이혼수속을 하게 됩니다.
송교수님의 평.
재미있게 아주 잘 쓰셨습니다. 소설형식에 기존의 수필작품을 넣어서 쓰였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쓴 글(추신부분)을 읽고 이 글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기를 쳐도 고도로 치는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이혼의 이유가 명확하게 들어나지 않습니다. 독자는 당위성을 찾아야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없습니다. 떡 파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이혼을 결심한 것에 대한 심리는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른 글을 가져오면서까지 쓰였지만 유기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문제는 어느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써 줘야합니다. 이 글을 인정하면 앞으로도 계속 써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프시다하니 더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계속 쓰시길 바랍니다.
조순향님의 <마로니에 공원>
작가는 50년 전 졸업한 학교 교정을 찾아갑니다. ‘60년에 입학한 동기들과 함께 모교를 찾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자꾸 과거로 갑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진아춘이라는 식당에 가고 학교 여기저기도 둘러봅니다. 함께했던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가집니다. 오래전 그날처럼 학림다방에서 음악도 듣습니다. ‘모든 것은 다 변해 있었다.’ ‘겁을 먹고 피했던 남학생들이 편안하고 믿음직한 친구로 다가와 있었다. 삭막했던 우리들의 청춘이 풍성하게 변하는 순간이다’이렇게 글을 맺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깔끔하게 잘 빠진 글입니다. 고치거나 다듬을 필요는 없습니다. 회고하는 글이라서 ‘있었다’가 많이 쓰였습니다. 오늘을 이야기하며 회상하는 글이기에 변화 되어온 삶을 글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회상하는 글은 변화를 감지해서 작가의 마음을 투여하는 시도를 해서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회고와 변화를 섞어서 적절히 작가의 마음도 담는 것입니다. 이 글은 손대지 마시고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정지민님의 <허물이 어둠일 수 없는 까닭은>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 상대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사회를 말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잘못을 책임져야 상식이 살아나고 인간성이 싹튼다는 작가. 테니스 코트에서의 일을 사과하는 메일을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작가는 사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사과는 실수와 용서를 이어주는 다리’라는 글과 ‘아름다운 사과가 많아지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도 같다.’는 마지막 문구가 계속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글입니다. 어긋나지 않고 논리에 맞으며 어렵지 않은 글인데 조금 까끌까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단락이 바뀔 때 주어가 없어서 맥이 바집니다. 주어를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명자님의 <버려진 담배꽁초>
여름장마에 막힌 하수구로 인해 거리는 물바다가 됩니다. 교통을 통제하고 하수도를 뚫어보니 구멍을 막은 실체가 각종 쓰레기와 담배꽁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꽁초는 자신이 가져간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도로 여기저기에 널린 담배꽁초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앞차에서 턴 담뱃재가 날아들어 사고가 날 뻔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담배 피는 애연가님들이 이 글은 꼭 보셔야겠어요.
송교수님의 평
자연스럽게 잘 쓰인 글입니다. 개인적 시각으로 써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반적인 글입니다. 사적인 것을 공론화 해보는 것이지요. 이 글은 무겁게 시작해서 사적으로 끝냈습니다. 시작부분을 가볍게 시작해서 사적으로 끝내는게 좋습니다. 좋은 글감인데 힘을 주어서 풀어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풀어 가면 좋겠습니다.
소지연 <유월, 그 친근함>
유월이 오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옛 시인의 구절을 인용하며 작가의 유월이야기가 나옵니다. 몇 해 전 칠월에 있을 결혼준비로 바쁜 딸의 모습과 엄마로서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 결혼전 유월에 딸과 함께하는 귀한 시간들. 그리고 올해 긴 여행과 등단파티로 오월은 서둘러 가고 설레며 유월을 기다리는 작가입니다. ‘이 유월을 엄살쟁이다. 서둘러 오다 보니 놓친 것이 많다며 등에 진 짐을 내려놓는 그는, 하나하나 물건들을 끄집어낸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놓쳐버린 그리움의 찌꺼기들이라 몹시도 눈에 익다. 나는 그것들을 얼싸 앉고 싶다. 다시는 그리 허술히 보내지 않으리라 되뇌어 본다. 지난날의 염원을 고스란히 데려온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넝쿨을 오르는 새빨간 장미여야 한다.’ 작가는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유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멋을 부릴 줄도 알고 맛을 낼 줄도 아는 잘 쓰인 글입니다. 리듬을 탈 수 있는 글감으로 잘 처리했습니다. 글이 리듬을 타고 흘러나올 만큼 행복하면 되었지요. 글이 조금 더 부드러워도 됩니다. 제목은 다시 생각해봐주세요.
*작가는 ‘글을 쓸 때 리듬을 타야한다.’는 수업을 받고 이 글에 리듬을 타는 형식으로 썼다고 합니다. 진짜 모법생 소지연님.
강수화님의 <결혼이야기-7>
상견례이후에 두 달이 넘도록 남자에게서는 연락이 없습니다. 그의 소식을 기다리며 말라가는 작가. 그의 진실한 마음을 되짚어보고 전화를 기다리며 애타는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몽유병환자처럼 아버지의 산소를 들락거려 동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합니다. ‘차라리 미치고 싶었다.’는 마지막 글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좋습니다. 혹시 여기오기 전에 따로 글 쓰는 공부를 하신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이 질문에 “아닙니다. 문화센터에 등록하면서 처음 글을 쓰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한 강수화님. 그럼 글쓰기에 천재적 자질이 있습니다. 칭찬 받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갈 때까지 가봅시다. 고칠 것도 다듬을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의 글에서 고치거나 다듬어야할 부분들이 나오면 말해드리겠습니다. 표현도 비유도 다 좋습니다.
이렇게 조용하게 금요반 수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일초님과 한희자님의 유우머가 빠지고 반장님도 없어서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어여쁘게 차려입고 오신 금요 여인들의 패션 감각과 멋진 강의로 우리를 홀리는 송교수님의 은은한 목소리만 압구정을 살짝살짝 흔들었습니다.
다음 주는 수업후 수서에 있는 임차자님의 다원으로 갑니다. 차타고 간답니다. 차량 봉사해주시는 임반장님, 오윤정님, 이원예님 감사합니다. 김동수님, 김진님 꼭 오셔야합니다. 저희반 모두 기다립니다. 점심도 수서에 가서 먹습니다. 오후시간 조금 넉넉히 비워두시면 됩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다음주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