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식이 /이재무
아비의 평생과 죽은 엄니의 생애가
고스란히 거름으로 뿌려져 있는
다섯 마지기 가쟁이 논이 팔린 지
닷새째 되는 날
품앗이에서 돌아온 둘째동생 재식이는
한동안 잊었던 울음 쏟고 말았다
맷돌 같은 손으로 흘러넘치는 눈물 찍으며
대대손손 가난뿐인 빛 좋은 개살구의
가문의 기둥 찍고 있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자"
가훈이 덜컹 마루 끝으로 떨어지고
동네 허리 감싸안은 야산도
함께 울었다 여간한 슬픔
끝모를 절망의 늪에
온몸 빠졌을 때도, 눈물에 인색하면서
선웃음 잃지 않던 뚝심의 동생이
썩은새로 무너지며 터뜨린 눈물로
텃밭 푸성귀들을 자지러지게 흔들던 날
예순의 머슴 아비도
죽은 엄니 초상화 꺼내들고
아끼던 눈물 한 방울
방바닥으로 굴리셨다
팔려버려 지금은 남의 논이 된
그 논에 모를 꽂고 온 동생의 하루가
내 살아온 부끄러운 나날에
비수되어 꽂히던 달도 없던 그날 밤
건넛집 흑백 TV 브라운관을 뛰쳐나온
프로야구의 들끓는 함성
허름한 담벼락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시인에겐 이십여 년 짧은 생애를 살다간 연년생 동생이 있었습니다.
무지하게 가난했던 시절, 그 상황 설정을 위해 시인은 경험을 굴절시켜 이 시를 썼습니다.
20대 시절, 예순 정도면 많다고 여겼던 나이가 그렇게 젊게 느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를 쓴다면 아버지의 나이를 칠순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동생 재식이는 품앗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가훈 또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지요.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초상화를 꺼내 울다니요?
다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어떤 독자도 의심하거나
거짓말이라고 이의를 걸지 않습니다.
그 시를 쓸 당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엄청 가난했던 시인의 느낌은 진실이니까요.
여기에 시적 진실이 있습니다.
경험을 과장해야 시가 됩니다. 내면 세계를 풍경을 통해서 표현하거나
바깥의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바람이 꽃의 살을 문질렀다
그러니까 향기가 공중의 공기를 덥히면서 원을 그리면서 퍼져나갔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절반 정도는 감추어 반투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지요.
형태나 모양에 사실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햐 합니다.
벌초 /이재무
무딘 조선 낫 들고 엄니 누워 계신
종산에 간다
웃자란 머리
손톱 발톱 깍아드리니
엄니, 그놈 참
서러운 서른 넘어서야
철 제법 들었노라고
무덤 옆
갈참나무 시켜
웃음 서너 장
발등에 떨구신다
서산 노을도
비탈의 황토
더욱 붉게 물들이며
오냐 그렇다고
고개 끄덕이시고....
무덤 위의 잔디를 머리에 비유한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둥그런 무덤은 고봉밥을 닮았습니다.
죽어서도 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듯 하지요.
사람들의 주거지에 가까이 있는 서양 묘지와 달리
대부분 산에 위치한 우리 묘지는 마치
형제들끼리 우애있게 찾아오라는 암시처럼 느껴집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세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는 딸을 완벽한 연기자로 만들려는 엄마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노이로제에 걸리고 강박관념에 시달렸습니다.
엄마의 억압이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주었고 그로 인해 여덟 번이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배우로 남아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는 고아원에서 폭행에 시달렸지요.
내면의 공포감을 연기하고자 했던 그는 스크린에 자신이 나오면
그리운 엄마가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치콕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전에 그날 겪었던 모든 일을
엄마에게 보고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숟가락을 떨어뜨렸던 얘기에도 잘못이라는 지적을 받은 그는
치욕과 굴욕을 느끼며 성장했지요.
자신의 마조키즘적 심리를 영화를 통해 나타낸 그는
심리 스릴러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정신병을 앓았던 뭉크는 내면의 공포증을 절규라는 그림을 통해 나타내었습니다.
신체적 장애나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 경우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결핍이 있어야 무언가를 채우려는 욕망이 생기고 그것이 나를 발전시키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내안의 나는 무엇을 채우려고 또는 치유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어쩌면 글쓰기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일과도 같지 않을까요?
한 주를 쉬는 것이 어찌 그리도 길었을까요?
모두들 너무 오랜만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박완서 소설 전집은 드디어 막을 내렸고 다음부터는 창비 중단편선을 합니다.
2013년부터 역순으로 197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갈 계획이니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그러나 열여덟 권을 읽어온 우리들이니만큼 걱정은 안 합니다.
맛있는 고구마말랭이를 간식으로 가져오신 새 총무님 정미샘 덕분에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도나도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합평을 다 할 수 없었지만 타오른 면학 분위기에 신이 절로 나는 여름학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