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없는 개/ 이재무
몸속에 꿈틀대던 늑대의 유전인자
세상과 불화하며 광목 찢듯 부우욱 하늘 찢으며
서슬 푸른 울음 울고 싶었다
곧게 꼬리 세우고 송곳니 번득이며
울타리 침범하는 무리 기함하게 하고 싶었다
하늘이 내린 본성대로 통 크게 울며
생의 벌판 거침없이 내달리고 싶었다
배고파 달이나 뜯는 밤이 울지라도
출처 불분명한 밥은 먹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불온하고 궁핍한 시간을 나는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목에는 제도의 줄이 채워져 있었고
줄이 허락하는 생활의 마당 안에서
정해진 일과의 트랙 돌고 있었다
체제의 수술대에 눕혀져 수술당한 성대로
저 홀로 고아를 살며 자주 꼬리 흔들고 있었다
머리 조아리는 날 늘어갈수록
컥,컥,컥 나오지 않는 억지울음 스스로 향해 짖고 있었다.
개를 통하여 나를 얘기한 자화상의 시입니다.
개의 자유는 목에 매달린 개줄의 길이에 달려 있지요.
목줄을 맨 개와 우리는 동일합니다.
체제와 제도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나 역시 체제 안에서 사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무인도에 염소 열 마리를 방복한 후 한 달 후 가보았습니다.
다섯 마리만 살고 다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염소는 야생성을 회복했기에 살았지만
이것이 쉽지 않기에 반이나 죽은 것이지요.
집에서 키우는 염소는 편합니다.
잠자리와 먹을 것이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다만 자유의 존재가 아니지요.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고통을 지불해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또한
도피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유는 십계명 지키디보다도 어렵습니다.
자유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나 결혼, 직장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는 동시에 속박을 원하는
이중성 추구와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유럽인들은 한국 대학생 배낭족들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한국 대학생들 모두 유행을 따른 옷차림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유행 속에 매몰된 것도 모른 채 유행을 따르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이 재 무
내 생전 언젠가는 찾아갈 거야, 푸른 고독
광도 높은 별들 따로 떨어져 으스스 춥고
쩡쩡 우는 한겨울 백지의 광야
방랑과 유목의 부족 찾아갈 거야
처음 그들은 낯선 이방인 적의로 맞겠지만
청동빛 근육에서 동족의 피냄새를 맡고는
마음의 시장기 무청처럼 퍼런 얼굴 앞에
네발 달린 짐승 하나 불쑥 적선하겠지
난 날짐승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들의 배려
예 갖추어 달게 삼키고 언 강 깨서 입 축이고
그새 허물없어진 그들과 나란히 식구로 서서
컹, 컹, 컹 산과 하늘 크게 들었다 놓고
깊고도 서늘한 눈빛, 길게 세워 다투듯
무인지경 내달릴 거야 가도 가도 끝없는 광대무변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초원에서는 더러 행위와 동기가 한몸이라서
더운 피가 시키는 대로 달리는 것뿐
딴뜻 있어 달리는 것은 아니지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맨발에 달라붙는 진흙 같은
잡념 따위 바람 앞에 검불로 흩어지고
걸핏하면 찾아와 몸과 마음 물어뜯던
까닭 없고 대상 없던 우울과 초조,
울분이며 분노 따위 햇살 만난 눈처럼 사라지겠지
초원의 파수꾼, 떠돌이 협객, 외로운 사냥꾼
내 생전 언젠가는 찾아갈 거야
한 마리 변방의 야생을 살며 폭설 내린 어느날
비축해둔 식량마저 떨어지면 파오 우리 덮치다가
불 뿜는 총구 앞에서
한점 비명, 회한도 없이 장렬하게 전사할 거야
어느 날 시인은 몽골 초원 다큐를 보았습니다.
현존하는 늑대들이 가축을 잡아먹다가
몽골인들이 쏘는 총에 맞아 죽거나 도망가는 장면을 보며
늑대의 야성에 대해 시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몽골 초원에 가서 늑대를 만나 그 무리들에 끼어 그들처럼 살고 싶다.
광대무변의 초원을 달리고 싶다.
그러다가 몽골인들의 총구 앞에서 장렬히 죽고 싶다.
이런 공상의 날개를 펼쳐 봅니다.
자본주의 즉 제도와 체제의 일상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늑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늪에서 수면을 뚫고 올라왔다가 결국은 다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붕어를 보며
직장을 때려치고 안나푸르나로 떠나버린 친구를 떠올립니다.
그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결국 다시 회귀해야하는 우리의 모습은 늪 속의 붕어랑 다를 바 없습니다.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는 가시덤풀 쑥굴헝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무등은 등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루는 넝마이며 갈매빛은 푸른 빛입니다.
지란은 난초이고 농울쳐는 물결치는 것입니다.
오후는 인생의 나이가 들 때를 말합니다.
지어미 지아비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쓸쓸하고 외로운 것임을 암시하는 시입니다.
오래된 것에 청태란 이끼가 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낙관적으로 살라는 교훈과 함께
부부애를 과시하는 대표적 시이기도 합니다.
개, 늑대, 붕어, 무등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남과는 다른 발견을 했기에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나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우리 주위의 사물들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비가 촉촉이 내린 여름 학기 첫날이었습니다.
김화순샘이 제주도에서 직접 배달해 오신
오메기 떡으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박래순샘이 가져오신 방울 토마토도 맛있었고요.
박영숙샘, 공인영샘, 김성희샘, 진미경샘의 빈자리가 쓸쓸했지만
다음 시간에는 꼭 채워지리라 기대합니다.
다음 주는 한중 문학세미나에 참석하시는 교수님의 사정으로 휴강입니다.
일찍 시작된 무더위에 다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