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독자로 하여금 슬퍼지게 때로는 울게 하는 글이 그 중 하나이지요.
그 유명한 일본 소설 <우동 한 그릇>이 이에 해당됩니다.
절제하면서 구구절절 아픔과 고통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하나의 소재를 집중적으로 써야만 슬픔이 전달되지요.
회상을 할 때는 매개체 또는 기폭제가 꼭 있어야 합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드레느 과자를 먹다가
그 냄새로 인해 과거의 회상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감각을 통해 느끼는 것이 일련의 연상 작용을 시작한 것이지요.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렇듯 시인은 눈을 매개체로 하여 과거 아버지가 아픈 자신을 위해
눈 속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에 얽힌 회상으로 들어갔습니다.
깊은 가을밤 교교한 달빛 아래
마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청아하게 반기는 다듬이소리
말발굽 소리로 긴장을 더하고
젓가락 장단으로 리듬을 타는
마주 앉은 고부간의 합주
또닥또닥, 따그닥따그닥
밝은 날엔 빨래터에서
밤엔 대청마루 다듬잇돌에
닮아가는 동병상련으로
말없이 두들기는 난타
여인의 한 서린 세월을 다져
시간의 주름이 펴지는 정겨운 소리
또닥또닥, 따그닥따그닥
아랫마을에서 다듬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윗마을에서도 그 소리가 시작됩니다.
서로 연대를 이룬 다듬이 소리는 마치 합주를 하듯
또는 강강술래를 하듯 이어집니다.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를 듣다보면 리듬에 따라
엄마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술집에서 안 오시면 소리는 술집으로 달려갑니다.
다듬이 소리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여 시를 지었듯이
사소한 사물에도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으면 글이 됩니다.
간장에 삭힌 고추를 먹다가 발견을 했습니다.
서로 생태가 다른 고추와 간장.
간장은 콩과 소금으로 만들어졌지요.
시어머니는 메주, 며느리는 소금.
생면부지의 너와 내가 만나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려져서 맛있는 간장으로 거듭나듯이
가족 또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푸르게 몸을 세워 살아온 고추만이 붉게 익습니다.
독하고 매운 맛을 품기 위해 여름 내내
땡볕과 비바람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결실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고추를 통해 얻습니다.
할머니가 고추를 땁니다.
한 가지에서 자란 고추들이지만 어떤 것은 실하고 어떤 것은 부실합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제각기 다른 내 새끼들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고추를 손에 쥔 할머니의 볼이 발그레 해집니다.
밥을 먹다가도 발견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작가를 구분하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은 퇴고를 얼마나 하느냐입니다.
명문장가도 아니면서 우리는 과연 몇 번의 퇴고를 하는지요?
퇴고를 하면 할수록 문장은 아름다워집니다.
오늘 독서모임은 제일 많은 인원이 모여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박완서 단편집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할 이야기가 많지요.
노인 문제를 비롯하여 고부간 갈등, 중동으로 떠난 남편 이야기,
전쟁 후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얼마나 구수한 입담으로 끌어나가는지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반전의 묘미도 많이 있고요.
<쥬디 할머니>에서 보여준 반전은 슬픔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 주는 제 4권을 합니다.
손수 만드신 시원한 호박식혜를 맛보게 해주신 박래순 선생님 다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