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반 이야기
설영신님과 송경미님이 보내주신 간식비로 호박떡과 완두 팥시루떡을 먹었습니다. 맛난 간식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울러 다시 한 번 수상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문화센터에서는 여름학기 수강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름 학기에는 금요일 휴일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반장님이 12번을 수업 받으려면 5월 마지막 주와 8월 마지막 주까지 수업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회원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회원들은 송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 물었습니다. 송교수님이 “제가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셔서 저희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유머가 넘치시는 송교수님. 아무도 못 말립니다. 덕분에 수업 시작 전부터 반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서청자님의 <내 삶의 숙제>
지난시간 결석하셔서 오늘 합평을 했습니다. 한번 수정되어 나온 글입니다. 친구들을 만나 추억도 되새기고 좋은 시간들을 보낸 이야기입니다. 또한 작가가 아내로 엄마로 산 세월들과 자신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삶을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을 보살피고 삶을 돌아보고 약해진 몸도 어루만져 사랑을 주고 싶어 수필반에 들어왔다는 필자의 고백이 있습니다. (서청자님의 삶에 문운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할 말을 다했습니다. 더 들어갈 말도 없습니다. 그러나 깔끔한 문장을 위해 빼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부분들은 글을 읽는데 호흡을 끊습니다. 조금만 수정하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병옥님의 <토스카니니의 PPP>
이글도 한번 수정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4월 꽃들의 도발을 조심하세요.’라는 글벗의 댓글이 산책을 하게하고 그곳에서 토스카니니가 완벽한 피아니시시모(PPP)를 추구했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밖으로, 밖으로를 되 뇌이면서 나는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좁다란 꽃길로 들어섰을 때 봄이 와아 일어났다. 그야말로 ‘꽃들의 도발’이었다. 내 혼도 함께 일어나 산이 되어 날아올랐다. 토스카니니처럼, 아주 아주 조용히, 아주 아주 억제된 소리로.’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한 줄의 댓글이 한 곡의 음악 같은 글을 낳았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처음 내신 글보다 많이 고쳐졌습니다. 잘 쓰셨습니다.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안명자님의 <감기가 남긴 파열음>
이글도 한번 수정되어서 나온 글입니다. 안명자님은 오늘 결석하셨기에 이글만 “순탄하게 잘 풀렸습니다. 완입니다”는 송교수님의 평으로 넘어갔습니다. 다른 글 <사람이 사랑의 대상인 것을>은 다음시간에 합평하기로 하고 넘어갔습니다. 병원에 가셨는데 어찌 되셨는지? 크게 아프지 않으시기를...
강수화님의 <엄마와 쌀밥>
합평을 위해 내신 글입니다. 오세윤님의 글에서 인용된 부분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쌀밥이 아픔이 된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와 사이에 쌀밥은 돈으로도 풀 수 없는 빈곤이며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다.’라는 마지막 글이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배고픔과 힘든 시간들... 어찌 다 견디셨는지... (지난 초파일에 봉은사에서 송교수의 가족들을 만났다는 강수화님. 울 송교수님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이제 어딜 가시나 조심스러우실듯합니다.)
송교수님의 평
강수화님은 마음대로 그냥 쓰는게 더 잘 씁니다. 문장을 유연하게 잘 쓰며 꾸밈없이 평온하게 씁니다. 서두르지 말고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합평을 위해 쓴 글은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자꾸 틀에 묶여 지적 받게 하고 있습니다.
김옥남님의 <치자꽃이 피었다>
아버지가 사랑하셨던 치자나무의 꽃이 그리워 작은 치자나무를 산 작가. 꽃망울을 맺고 향을 넘치도록 선물하는 치자꽃은 좋았지만 열매는 맺지 않게 나온 계량종이였다고 합니다. ‘치자꽃나무’를 보며 열매에 대한 그리움을 쓴 글입니다. 치자열매가 실생활에서 어여쁜 색을 선물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귀한 자연의 선물인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글 속에 담겼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고칠 것이 없게 잘 쓰인 글입니다. 김옥남님의 글에는 자연이나 옛정, 옛 사문에 대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글 중간에 현 시대를 나무라는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꼭 필요한지 묻고 싶습니다. 옛 정취나 생활의 발견을 신문의 칼럼처럼 쓰시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읽다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오세윤님의 <만국기 소녀>
박영자 수필가와 인연이 깊으신 작가는 그분의 시상식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을 소개합니다. 12살 어린 시절 신문을 팔던 작가가 만국기를 팔던 그분을 만난 이야기는 저희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분이 만국기를 팔던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언제 저희반에 초대해서 같이 밥정이라도 나눴으면 좋겠다고 금반님들이 입을 모았답니다. 한편의 글이 모르는 사람도 가까이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좋은 글감입니다. 지금 까지 잘 쓰셨는데 이 글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간의 거리감도 있고 남의 이야기를 내가 하는데 일방적인 전달만 하고 있습니다. 글이 넝쿨져 있습니다. 마지막부분도 조금 엉켜있는 느낌입니다.
정지민님의 <스승은 의지목이다>
이 글은 청탁 받으셔서 쓴 글입니다. 큰아이가 중학교 시절 만난 좋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학창시절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글은 보여줍니다. 또한 그것에 대하여 내내 감사하는 학생과 학부형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선생님이 많으면 참교육이라는 말은 따로 안 해도 될듯합니다.
송교수님의 평
잘 고쳐졌고 좋습니다. 할 말은 없습니다.
오늘은 송교수님은 수필 쓰기에서 많이 하는 ‘인용’에 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지난 시간 수업했던 이인로의 <해와 달이 빛나듯> 중에
‘전에 황정견이 시를 논하면서 옛사람 시문의 뜻을 그대로 따서 자기 말로 삼은 것은 ‘환골(換骨)’이라 하고, 옛사람 시문의 뜻을 본뜨고 분칠해서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을 ‘탈태(奪胎)’라고 하였다. 이것은 비록 남의 것을 통째로 삼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나 결국 남의 것을 교묘하게 표절한 데 지나지 않는다. 어찌 창발성을 발휘하여 옛사람이 이르지 못한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글로 인용에 대하여 뼈아픈 지적을 하셨습니다. 인용의 본질을 파악해야함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주에는 소지연님의 등단파티가 있습니다. 1시에 수업마치고 강가로 갑니다. 모든분들 오후시간 넉넉히 비워두시고 꽃단장하고 5월 강가로 가셔야합니다.
오늘 결석하신 안명자님, 하점순님, 김진오빠 꼭꼭 참석해주세요.
멀리 파리로 문학기행가시는 송경순님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