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서야 들리는 말 /공광규
가문 봄 개심사 연못 바닥이
갑골문으로 쩍쩍 갈라지고 있었지
더듬더듬 문장을 읽어가다가 수련 잎 그늘 아래
올챙이들이 주둥이를 처박고 발버둥치고 있었지
흙탕물에 대가리를 처박고 사생결단으로
도시 노동자처럼 옆에 있는 동료들을 밀어내고 있었지
나는 연못 위에 걸친 외나무다리를 건너 법당 쪽으로 가다가
생수병에 남은 물을 부어주었는데
지쳤던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입을 뻐끔대며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걸어오는 올챙이들
연못을 떠나와서야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지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나의 갈수기에 생수를 부어준 당신도
나를 떠나서야 내 말을 알아듣겠지, 고마워!
올챙이에게도 생의 처절한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개심사 연못에 봄이 가문 한 때,
몇 줌 흙탕물에 모여 서로를 밀어내며 몸부림치는 올챙이들.
시인은 법당 쪽으로 가다가 마시다 남은 생수를 부어주었습니다.
이 작은 보시에도 올챙이들은 꼬리를 흔들면서 파닥거렸을 것입니다.
시인에게 뭐라고뭐라고 말을 걸어왔을 것입니다.
제 갈 길이 바빴던 시인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요.
깨달음은 세월이 지나서야 그렇게 늦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어 또 한 순간을 새깁니다.
누군가도 나 때문에 고마워했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너무 힘이 들 때 아주 작은 도움이 큰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죽어가던 삶이 소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써주는 것.
기쁨 / 나태주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허공에도 기댈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난초가 허휘어지자 허공도 따라서 휘어집니다.
세상 사물의 배경이 되어줌으로써 그 존재가 빛나는 허공에
등을 기대는 난의 여유로운 조화...
빈 허공에 서로 등 기대고 섰지만 질서의 아름다운 조화가 있습니다.
심미적이고 형이상학적 접근입니다.
시인은 난을 진정한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지사적인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안으로 채우면서 무심히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고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삶입니다.
문법에는 어긋나지만 문장 맥락상 효과를 주기 위해 용인되는 <시적 허용>이 있습니다.
‘산을 내려왔다’는 원래 ‘산에서 내려왔다’라고 써야 하지만 시적 허용에 해당됩니다.
문장을 스타카토처럼 짧게 써야 문법에 틀리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게 합니다.
만연체는 이문열 작가나 쓸 수 있습니다.
수필은 논리학이 아니지만 <논점이탈의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오류를 수없이 합니다.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계산하고 써야 합니다.
일관성 즉 통일성 있게 써야 합니다.
퇴고할 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논점이탈의 문장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대부분 애써서 쓴 문장이 너무 아까워 붙잡으려고 하지요.
시저의 글이 명문장인 까닭은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결함, 명석함, 세련된 우아함이 시저의 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이것을 화두로 삼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싹싹 버려야겠습니다.
강화에서 오시는 한명숙샘이 따끈한 보리찐빵을 사오셨어요.
매번 사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는데 마침 막 찐 찐빵을 만날 수 있었다네요.
덕분에 맛있게 먹고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최영자샘은 달콤한 도넛을 간식으로 준비해 주셔서 빵데이가 되었지요.
새해 첫 수업은 지난해와 다름없이 재미있게 지나갔습니다.
삼 주 만에 독서모임을 하니 얼마나 오랜만에 하는 것 같던지요.
이제 다시 열심히 바퀴를 굴려야지요.
토지 12권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