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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의 추위는 일산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글쓴이 : 한지황    14-12-09 00:21    조회 : 4,519

옻나무 / 이재무

 

어릴 적 나는, 토담집 한 귀퉁이

십수 년 우리집 가난과 함께 자라온

옻나무가 무서웠다 살갗만 살짝 스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던 그 괴괴한 나무의 서늘한 눈빛과

무심코 눈이라도 부딪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진저리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해인가

할머니의 가슴앓이로 다리 한짝 잃고도

아버지의 진기 빠진 근력을 위해

팔 한짝 선뜻 내주던 은혜였던 나무

그리고 그 다음해의 늦봄

해수병의 당숙 기어이 속옷으로 쓰러뜨리던

성성한 이파리로

그늘을 넓혀 이십여 평 양지의 마당

삼키어가던 식욕 좋던 그 나무가

어릴 적 나는, 왜 그리 무서운 금기의 나무였는지

지금도 추억 떠올리면 종아리에 소름꽃 핀다

옻타지 않는 이에게 더없이 약되면서

옻타는 사람에겐 더없이 병되던

은혜와 배반의 이파리로 엮어진 나무

그 시퍼런 이중성의 표정이

근엄한 판검사의 얼굴로 덕지덕지 열리는 것을

어느 날 나는, 법정의 방청석에서

오돌오돌 떨며 그러나 똑똑히 보았다

 

어떤 이에게는 약효가 있는 옻나무가

어떤 이에게는 부작용을 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좋을 수만은 없지요.

양면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약재가 누군가에게는 독이 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입장, 처지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일방적 사랑은 독 또는 억압이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고요 / 이재무

 

일 년 중 고요의 힘이 세지는 때는

망종(亡種)에서 몸을 빼 소서(小暑) 쪽으로 느리게 걷는 절기의

빨랫줄 바지랑대 그림자의 키가 가장 작아지는 때

한동안 각축하듯 울어대던 매미 울음 뚝 그친 막간

어슬렁대던 개들도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오수 즐기고

숫돌 다녀온 왜낫처럼 날 선 햇살 따갑게 내려

축축한 생각의 물기 휘발시켜

백치의 순간에 이르게 하던,

살구씨처럼 단단한,

이제는 어데 먼 데로 귀양 떠나 죽었는지 소식조차 없는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고요한 때가 그리워집니다.

도시에서는 온갖 소음들로 고요한 곳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옛날 시골이 정말 고요했지요.

해가 가장 긴 하지, 제일 뜨거운 시간인 12시에서 2시까지

시골에 있는 모든 사물은 낮잠을 잡니다.

사람을 비롯하여 개, , 매미까지 잠을 청합니다.

이때의 고요함이야말로 살구씨처럼 단단한 고요입니다.

고요라는 관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낫을 갈았다는 설명적인 문장 대신 숫돌 다녀온 낫이라고 쓴 표현도 좋습니다.

 

장독대 / 이재무

 

이제 다시 그처럼 깨끗한 기도 만날 수 없으리

장독대 위 정한수 담긴 흰대접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둠은 도둑걸음으로 졸졸졸 고여 오다가

흰빛에 닿으면 화들짝 놀라 내빼고는 하였다

어머니는 두 볼에 홍조 띄우고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천지신명께 일구월심 가족의 소원 대신 빌었다

감응한 뒷산 나무들 자지러지게 잔가지를 흔들고

별꽃 서너 송이 고개 끄덕이며 더욱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런 새벽이면 어김없이 얼어붙은

비탈에 거푸 엎어져 무릎 까진 밤새 울음이 있었다

풀잎들은 잠에서 깨어 부스럭대고

바지런한 개울물 들을 깨우러 가고 있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어둠의 천 오래 입은 낡은 옷 되어

툭툭 실밥이 터질 때 야행에 지친 파리한 달빛

맨발로 걸어 들어와 벌컥벌컥 마셨다

광석들 가로지르는 서울행 기차 목 쉰 기적이

달아오른 몸 담궈 오기도 하였고 밤나무의,

그 중 실한 가지가 손 뻗어오기도 했으나

정한수는 줄지 않았다

장독대. 내 생의 뒤뜰에 놓여 있는,

생활이 타서 갈증으로 목이 마를 때

흰빛 내밀어 권하시는,

내 사는 동안 내내 위안이고 지혜이신 어른이시여,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을 토대로 쓴 시로

감각적 묘사를 통해 어머니의 가족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별꽃 서너 송이라는 문학적 표현은

기표 중력으로부터 벗어난 표현입니다.

이렇게 문학 표현에서는 언어 약속을 깨야 합니다.

비탈에 거푸 엎어져 무릎 까진 밤새 울음이 있었다

청각의 시각화로 공감각적 표현입니다.

풀잎들이 잠에서 개어난 부스럭거림은 새벽을 나타냅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어둠은 밤이 깊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길과 시골길 중 어느 쪽이 더 싱싱할까요?

도시에는 밤에도 불이 켜진 곳이 많아 길은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길은 오래 입은 런닝구처럼 구멍이 나고 지쳐 있지요.

반면 시골길은 바람을 잔뜩 넣은 공처럼 튀어 오릅니다.

가로등이 켜진 곳엔 식물도 성장이 느립니다.

 

내 일상의 종교 / 이재무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란 것을 알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에 기록된 여자들

전화번호를 지워버린 일이다 외로움은 사람을 한없이 추하게 만든다

술이 과하면 전화하는 못된 버릇 때문에 살아오면서 얼마나 나는 나를

함부로 드러냈든가 하루에 두 시간 한강변 걷는 것을 생활의 지표로

삼은 것도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전설적인, 위대한 스승께서 사소하고 하찮은 외로움 때문에

자신이 아프게 걸어온 생을 스스로 부정한 것을 목도한 이후

나는 걷는 일에 더욱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만인의 병 한가로우면

타락을 꿈꾸는 정신 발광하는 짐승을 몸 안에 가둬

순치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강에 나가 걷는 일에 몰두한다

내 일상의 종교는 걷는 일이다

 

 

항구에 배가 너무 오래 정박해 있으면 썩습니다.

사람의 몸 또한 편하면 정신이 썩습니다.

호미는 밭에 있어야지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습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늘 걸으면서 사색을 했습니다.

정신의 고통은 육체를 힘들게 하면 낫습니다.

오체투지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존재론적, 실존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과학이 규명 못하는 것을 문학, 예술은 해결해줍니다.

 

꽉찬 교실은 유난히 다양한 먹거리로 더 풍성했습니다.

향긋한 귤을 가져오신 문정혜샘과 정미 총무님,

달콤한 감말랭이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오신 래순샘,

맛있는 빵으로 우리들 입을 호사시켜주신 인해영샘 모두 고맙습니다.

12월의 추위는 일산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


정정미   14-12-09 09:47
    
한지황반장님 수고하셨어요.
반장님 후기를 볼때면 연애편지처럼 설레임이 이는
심정으로  읽게됩니다.  고맙습니다.
밖에 날씨와 대조로 우리반은 정말 따뜻했지요.
먹을거리에 맘을 담아 오신 정혜샘 인영샘 해영샘 순이샘
덕분에 더 따뜻했나 봅니다.
항구의 배, 편한 몸, 녹슨 낫, 이번 수업에서
특히 자극을 받은 내용이었습니다.
유난히 귀찮아하고 게으르기 까지한 제맘에
시원한 바람이 지난간듯 물결이 일어 났어요.
내 일상의 종교를 뭐로 만들까가 이번주 저의 고민입니다.
벌써 내일이네요
한국산문 송년회에서  만나요^^
추우니 옷 단단히 입고 오세요 ㅎㅎ
     
한지황   14-12-09 11:39
    
혹시 정미샘이 오늘 호수공원을 걷기 시작함은 어제 강의 덕분?
몸을 고되게 해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이 하루만에 빛을 발하다니 
역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나 봅니다.ㅎㅎ
배우기만 하고 실천을 안하면 소용없는데 모범을 보이신 정미샘은
역시 일산반 멋쟁이 총무님!
누군가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지요.
덩달아 저도 연애 편지 주고받는 기분으로 후기를 쓰고 답글을 답니다.
연애편지에 없어서는 안되는 단골 말로 끝을 맺어야 겠네요.
사랑합니다!
진미경   14-12-09 21:00
    
신기하게도 반장님의 후기 제목처럼 수필반 강의시간에 추위는 사라졌습니다.
열강의 힘이었을까요? 아님 가르침을 눈,귀,심장의 깊은 곳까지 빨아들인 마력때문이었을까요?
배움의 열기로 달아오른 교실에는 온기만이 가득했습니다.
최영자샘의 옻닭을 합평하면서 시를 찾아서 공부하고,한지황반장님의 돌직구를 합평하면서는 중수필이 주는
묵직함을 느꼈습니다. 철학적인 주제는 깊이있는 좋은 수필이 된다고 칭찬하셨구요.
날로 수준이 높아가는 일산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스승님의 합평과는 별개로 저는 반장님의 돌직구가 좋습니다.
솔직함이 주는 볼륨이 시원시원하게 귀를 열어주니까요.
수필은 결국 저자의 개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남으로써 인생이 깊어집니다.
     
한지황   14-12-10 10:51
    
순진무구한 아기가 스폰지처럼 세상의 이치를 빨아들이 듯
우리 미경샘도 온몸 구석구석까지 강의 내용을 흡수하고 있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쏟아내는 멘트에 우리반 님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님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또 다른 행복이지요.
그래서 우리 반은 영하의 날씨랑은 전혀 무관한 것이지요.
우리 둘 다 돌직구 성향 덕에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십년 넘는 우리 우정은 서로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솔직함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벗들이 있다는 것이
일산 수필반이 뜨끈뜨끈한 또 하나의 이유이지요.
최영자   14-12-09 22:28
    
맞아요.
12월의 추위에도 일산반은 따뜻했지요.
두분의 결석이 있음에도 꽉찬 강의실에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더군다나 한여름 복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합평했으니...

아~ 
처음에는 멋모르고 썼던 글들이 갈수록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뭐 욕심부리고 시작 한 것도 아니건만 . 지나가는 과정이겠지 하면서도 ~~~

 송년회에 가면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저는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모임이 연속있네요.
혹 누군가 펑크내 줘서 하루 쯤 쉬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ㅎㅎ ~
     
한지황   14-12-10 10:58
    
옻닭...ㅎㅎ
다시 떠올려도 집까지 무서워졌던 납량특집?ㅎㅎ 
사랑도 지나치면 두려운 존재가 되나 봅니다.
시아버님의 집요함이 다른 분야에서는 무언가 큰 일을 이루셨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영자샘이 겪은 일들을 수필로 다 써내려가면 두꺼운 책이 몇 권이나 나올 듯 해요.
글이 갈수록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니
영자샘도 글쟁이의 길로 진입하셨군요.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쓰고 싶어 자판을 두들기는 글쟁이의 길....
함께 걸어갈 벗들이 있으니 그 길이 그리 험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까요?
오윤정   14-12-10 23:34
    
일산반 선생님들 만나 뵈어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한반장님과 선생님들 더 예뻐지시는 비결이 뭘지...
즐거운 수업 때문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문 정혜선생님. 박래순 선생님. 박인숙 선생님 늘 건강하시기를...
한 지황 반장님. 정정미샘. 김성희 선생님 더욱 행복하시기를....
일산반의 화이팅을 응원합니다.
     
정정미   14-12-12 14:05
    
오윤정샘!  오~~~윤정!이라고도 불렀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그 동안  얼굴 보진 못했어도
한국산문을 통해서  샘의 안부를 알곤 했지요.
우리들도  송년회에서 샘의 예쁜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늘 한결같다고 해야하나....칭찬입니다 ㅎㅎ
이정선샘과 오윤정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한지황   14-12-10 23:46
    
저도 윤정샘을 오랫만에 뵈어서 반가웠어요.
반가운 얼굴들 만나는 재미가 가득한송년회를 끝내고 나니 또 일년이 저문다는 실감이 나네요.
글로 만난 우리들은 서로를 더 잘 알 수있는 장점이 있지요.
자주 못 보더라도 마음은 늘 함께 하고있다고 믿어요.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