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원리 중 비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은유는 a=b로 ‘내 마음은 호수’가 늘 예로 거론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비유입니다.
직유는 같이, 처럼이 들어가는 것으로
‘누님같이 생긴 꽃’을 예로 들 수 있지요.
대유는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환유와 제유로 나뉩니다.
환유는 정신과 관련된 것으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고 할 때 펜은 글쓰기를 대표합니다.
제유는 물질과 관련 있는데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할 때 빵은 식량을 대표하지요.
의인은 사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나무 / 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 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수도승, 과객, 파수병 등을 동원해 의인화를 통해 나무를 표현한 시입니다.
이렇게 개념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예문의 시를 기억하면 좋습니다.
비유 중 의인법하면 박목월의 나무를 떠올리세요.
활유는 무생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활유로 인해 문장은 생동감이 생깁니다.
‘산길이 꿈틀꿈틀 산꼭대기를 향해서 기어오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쏜살같이 달아나는 길들’
이런 문장들이 생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자전(自轉) 1 /강은교
날이 저문다.
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
무한천공(無限天空) 바람 겹겹이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
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
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날이 저문다.
날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여자들은 떨어져 쌓인다.
잠 속에서도 빨리빨리 걸으며
침상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는 끝없고
한 겹씩 벗겨지는 생사의
저 캄캄한 수세기(數世紀)를 향하여
아무도 자기의 살을 감출 수는 없다.
집이 흐느낀다.
날이 저문다.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落果)처럼 흔들린다.
높은 지붕마다 남몰래
하늘의 넓은 시계소리를 걸어 놓으며
광야에 쌓이는
아,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
부서지면서 우리는
가장 긴 그림자를 뒤에 남겼다.
날이 어두워져 사물 윤곽이 흐릿하고 불완전해 보이는 것을
빈 뜰이 넘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안식과 평화의 상징인 집이 불안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집이 파도친다고 표현했습니다.
밤이 왔다는 것은 도시를 끌고 간다라고 했고요.
일상에서 쓰지 않는 과감한 용법을 쓰는 것이 시입니다.
수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편의 수필 중 세 번 정도는 이런 시적 표현을 쓰면 좋습니다.
처음부터 쓰는 것은 어렵지만 퇴고하는 과정에서 활유로 바꾸어주면 됩니다.
풍유는 속담, 격언으로 기존의 것들을 사용하면 됩니다.
또는 내가 만들어도 되는데 이것을 아포리즘이라고 하지요.
비유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기초해서 이루어진 표현 행위이고
반어법(아이러니)은 두 사물 사이의 차이성을 기초해서 이루어진 표현 행위입니다.
이상의 <거울>이란 시는 거울 밖에 있는 일상적 자아(현실적 자아, 외적 자아)와
거울 안의 내적 자아 사이의 분열양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거울 속의 나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내 말을 못 알아듣지요.
결국 소통이 단절되며 나와 나 사이의 단절이 심해지면
자아분열 증상으로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현대인은 탈 또는 가면을 쓰고 가면무도회에서 사는 존재들입니다.
사람만이 아이러니의 원리를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반성, 분석,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동전 한닢 /김명수
오늘 날, 차들이 오고 가는 큰길 버스 정류장에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길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육중한 버스가 멎고 떠날 때
차바퀴에 깔리던 동전 하나
누구 하나 굽혀
줍지도 않던
테두리에 녹이 쓴 한닢
저녁에 집에 오니 석간이 배달되고
그 신문 하단에 1단짜리 기사
눈에 띌 듯 띄지 않던
버스 안내양의 조그만 기사
만원 버스에 시달리던 그 소녀가
승강대에 떨어져 숨졌다 한다.
1,2연은 동전 한닢을 3,4연은 버스 안내양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는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존재라는 슬픈 유사성이 있습니다.
식상한 비유는 독입니다.
죽은 메타포입니다.
쟁반같이 둥근 달을 쓰는 순간 원숭이가 됩니다.
세월이 유수같다고 쓰는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천재성이 나타납니다.
예술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사회 변화의 수단이라는 입장으로 사르트르, 고은 ,신경림 등이 대표적입니다.
참여 예술로 참여적 관점에서 문학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문학은 사회 변화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美 자체에 충실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예술지상주의, 유미주의 또는 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의미에서
악마주의 퇴폐주의라고도 합니다.
그림을 위해서 살인까지도 가능하다는 김동리의 <광염 소나타>가 바로 그 예입니다.
오늘은 12월의 첫 날이자 겨울학기 개강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바람은 또 어찌나 센지 겨울 신고식을 톡톡히 했지요.
유난히 결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백선숙님이 새 회원으로 오셔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새로운 한 분도 우리에게는 무척 소중합니다.
학기 당 한 분 씩만 오셔도 일 년이 지나면 네 분이 되니까요.
인해영샘이 처음으로 낸 시도 칭찬을 받아서 다들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내시길 기대합니다.
조용하지만 진심으로 글공부를 하고 싶어서 오신 벗들로
일산반은 꽉 찬 느낌입니다.
지나간 4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