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춘교수님께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2월4일(목요일) 2시에 서울 시청에서 시상식이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오셔서 축하해주세용^^~.
고소하고 맛난 쑥인절미는 이순례 반장님이 준비해주셨어요^. 고소한 콩고물에 쑥향이 너무 향긋했어요. 목동반을 위해 애쓰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개강기념으로 떡까지 준비해주시니 목동반이 반장님의 온정으로 넘칩니다.
항상 일찍 오셔서 커피와 떡을 준비해주시는 박유향총무님과 안옥영샘... 함박눈처럼 포근하고 풍성한 성품에 늘 감사 드립니다.
12월의 첫날에 거의 ‘첫눈’으로 정의할 수 있는 함박눈이 와서 목동반의 개강을 축하해주었어요.
눈길을 뚫고 오신 목동반님들의 온기로 즐겁고 따뜻하게 12월을 시작했습니다.
세 편의 작품을 합평했습니다. 간단한 내용을 적습니다.
<‘첫사랑’ 정의하기> - 김은희
송교수: 세 편 모두 고치지 않는다면 고치지 않아도 되는 글들이다. 다만 선생의 입장에서 첨언을 하자면 몇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가지고 쓴 글인데, 첫사랑은 액자소설인데, 겉 구조가 중요하다는 말로 이 글은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도 ‘울림’이란 부분을 말하고 싶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정의하던지, 나만의 첫사랑을 정의하던지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글은 세 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장은 첫사랑에 대한 서두이고, 둘째 장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 대한 정의이고 셋째는 다시 자신의 첫사랑으로 나왔다.
그런데 첫사랑을 정의하면서 투르게네프의 작품론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이 글은 논리와 점잖음 등은 다 갖추었는데 글쓰기에서의 ‘울림’이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논리화하는 시간이 있고, 또 생각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투르게네프 <첫사랑>의 인용을 이렇게 많이 했어야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적게 들어가서 너무 학술적이 되어버렸다.
논리적으로는 다 되었는데 ‘울림’이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 첫사랑을 인문학적으로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 첫사랑을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죽을 때 생각하면 남편이 첫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가출이냐, 탈출이냐> - 김은희
송교수: 다 된 글이지만 아까 얘기한 ‘울림’이란 부분을 여기에도 적용하고 싶다. 나는 주로 ‘가출이냐, 출가냐’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문제를 잘 다룬 글이다.
다만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도 부모의 마음은 똑같게 서술된다.’에서 ‘똑같게’는 ‘비슷하게’로 바꿔야한다.
마지막 부분에 약간의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작가: 이 글들은 독자들을 향한 ‘울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문학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소개하는 시도쯤으로 생각했다.
송교수: 그런 식으로 계속 써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제목을 좀 더 다듬어야할 것 같다.
독자: 송교수님이 ‘가출’을 ‘출가’라고 했는데 ‘출가’는 불교적 용어로서 두 단어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
송교수: 물론 연원을 따지면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하룻밤이나 이틀이나 가출을 한다는 것은 크느라고 하는 ‘출가’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쓴 것이다.
<벗들과 맛있는 여행> - 김문경
송교수: 고칠 곳이 없이 잘 된 글이다. 이렇게 써도 좋다. 그런데 글을 왜 쓰는가? 글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은 김문경 선생의 글과 전혀 상관없이 제기하고 싶은 문제이다.
글을 쓰는 것은 닭이 알을 낳는 것과 같다. 모든 닭은 알을 낳는데 그래도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글은 독자에게 와 닿아야한다. 또는 울컥하게, 또는 씁쓸하게 독자에게 가 닿아야한다. 김지하는 ‘울림’이란 말을 쓰기를 좋아했다. ‘반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소리로 와서 ‘땅’ 때릴 수 있는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그런 울림을 울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소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구나 겪는 소재나 일상, 체험을 그 작가만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데, 그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 부분이 고뇌라고 볼 수 있다. 맨 먼저가 독서이다. 남의 글을 읽는 것이 첫 번째 훈련이다. 이어령의 글이 ‘까불지 않고 참신하고 재밌다’고 평들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이어령이 그런 식의 훈련을 많이 한 것이다. 항상 생각하고 고뇌하고 한 것이다.
김문경 선생의 글은 ‘참 신나고 재밌는 삶이야기’인데 그 속에 무엇이 빠져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야한다. 문장도 좋고 발랄하고 좋은데 마치 햇살 좋은 날 사진을 찍은 것과 같다. 그 속에 햇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늘도 함께 보여주어야 인생, 삶, 여행, 맛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울림’이다. 글에서는 ‘반향’이 요구되기에 그런 부분이 필요한 것 같다.
모두가 글을 쓰면 닭을 알을 낳듯이 글이 되기에 이제는 반성이나 자성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산문> 11월호
송교수: 품위도 있고 잘 만든 잡지라는 생각이 든다.
김성수 대주교 이야기가 있어서 아주 좋았다.
문경자샘의 ‘황금자리’가 실렸는데, 제목이 좀 낯설었다. 좋은 글이다.
박승희샘의 ‘독일인의 성매매와 성체험’은 독자의 눈길을 노리고 쓴 글이다.
한금희샘의 ‘지구촌 기행’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