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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가을이 다 가버린 것입니다.    
글쓴이 : 노정애    14-11-14 18:20    조회 : 4,362
금요반 오늘은
결석이 많았습니다.
숭숭 빈자리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못 오신 분들의 몫까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한희자님께서 흑임자 인절미를 간식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맛난 간식에 입이 행복하니 마음은 더 행복했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나윤옥님의 <책상은 책상이지>
지난주에 결석하셔서 저희들끼리 조금 평했습니다. 다행이 오늘은 나윤옥님이 출석하셔서 다시 합평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지난번 후기에 적었습니다. 이 글은 조금 수정되어 원고를 넘겼다고 합니다.
 
송교수님의 평
글을 많이 써본 솜씨입니다. 잘 쓰셨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목소리가 안 커도 되는 부분까지 너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조금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하는게 좋습니다.
 
조순향님의 <여주에서 만난 괴테>
여백서원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보고 그곳을 찾은 작가. 그곳의 주인 정영애교수는 평생을 괴테 연구에 바친 괴테 권위자입니다. 여백은 그분 아버지의 호라고 합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그 서원의 대들보에는 맑음을 위해, 후학을 위해, 시를 위해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서원의 전통이 정교수의 집안에 흐르고 있다는 작가의 말. 서원 경계를 따라 만들어진 나무 밑에 있는 괴테의 시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의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여백서원 나들이를 한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좋은 글입니다. 저도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도 들어있어서 좋습니다. 시작부분은 조금 글맛을 살려서 써보세요. 마지막 부분은 두 문단이 분리된 느낌입니다. 합쳐서 써 주는게 좋겠습니다.
 
강수화님의 <미국일기-2>
본격적인 미국생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허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열쇠 없이 집을 나와 고생하고 빨랫줄 만들어 빨래 널었다가 쫓겨날 뻔하고, 심지어 잘못 전화 걸어서 엄청난 전화비를 물기까지... 고난의 시대입니다.
 
송교수님의 평
잘 쓰셨는데 본인도 모르게 즐기고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 보여주었던 긴장감이 뚝 떨어졌습니다. 이민 가서 겪은 에피소드는 짧게 적는게 좋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지를 정하고 초점에 맞춰서 쓰셔야합니다.
 
이렇게 수업이 끝나고 <<상상동화>>에서 헤르만헤세의 <시인>을 공부했습니다.
헤세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들어있는 아주 매력적인 글이라고 합니다. 고전 소설의 주인공이 갖춰야하는 모든 소설적 요소를 다 갖춘 주인공. 시인이 되고 싶은 열망을 품습니다. 자연과 음악속에서 시를 찾는 모습들이 헤세의 멋진 언어로 나와 있습니다. (오윤정님은 석가의 일생을 말하는 것으로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읽으며 그 부분을 더듬어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프지 마시고 다음 주에는 모든님들 볼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다음주는 가을학기 종강입니다. <<한국산문>>11월호도 챙겨오세요.
 
종강이라니!
벌써 가을이 다 가버린 것입니다.
 
학구파 금반님들을 위해 헤세의 삶과 짧은 시를 올립니다.
 
헤르만헤세(1877.7.2 ~ 1962.8.9.)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하였다. 러시아령 에스틀란트 태생인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新敎)의 목사이고, 모계(母系)도 역시 유서 있는 신학자 가문이었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포교에 종사하였고, 그 인격과 인도학(印度學)과 수천 권의 장서(藏書)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死別)한 후 칼프에서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으며, 후년에 이 거리를 '겔바스아우'란 이름으로 묘사하였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에 어려운 주()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천성적인 자연아(自然兒)로서, 개성에 눈뜨면서 미래의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노이로제가 회복된 후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견습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프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하였다. 1895년 가을 튀빙겐의 서점에서 다시 견습점원이 되는 한편, 여가에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여 R.M.릴케에게 인정을 받았다. 헤세는 이로써 시인으로 입신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1904)였다.
 그는 이해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였고, 이어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移住)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하였으며,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그후 그가 걸어온 긴 생애에는,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일,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문단과 출판계로부터 지식계급의 극단적인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공격을 당한 일,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그 자신의 신병(身病) 등 가정적 위기를 당하자 정신분석 연구로 이 위기를 타개하고 작풍(作風)이 뚜렷하게 달라진 일, 2차 세계대전 중 인간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나치스의 광신적인 폭정에 저항한 일 등 많은 파란을 겪었지만, 19628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기 실현의 길만을 걸었다.
 주요작품으로 제2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 음악가소설 게르트루트 Gertrud(1910), 화가소설 로스할데 Rosshalde(1914),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 Knulp(1915), 정신분석 연구로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 데미안 Demian(1919),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Siddhartha(1922), 1차 세계대전 후의 혼돈시대를 살아온 탐구의 서 황야의 늑대 Der Steppenwolf(1927), 신학자로서 지성(知性)의 세계에 사는 나르치스와, 여성을 알고 애욕에 눈이 어두워진 골트문트와의 우정의 역사를 다룬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Narziss und Goldmund)(1930), 20세기의 문명비판서라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 헤세와 로맹 롤랑의 왕복서한(1954) 등이 있다. 또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두산백과)
 
 
주여, 저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께는 절망하지 말게 하소서.
혼미한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소서.
모든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부끄러움과 욕됨을 맛보게 하시고
내가 나 자신을 가누는 것을 돕지 마옵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자아가 파괴되었을 때는
당신이 그것을 파괴하셨고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으신 사실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왜냐하면 나는 기꺼이 멸망하고
또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만,
오직 당신의 품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소서>
 
 
 

강수화   14-11-14 20:24
    
결혼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과
결혼 후 신혼이라곤 맛도 보지 못한 채
겨우, 남편따라 동행한 미국에서
이제 막 신혼 재미에 빠지려는데 
그마저도 허락 치 않으신 송교수님!
시아버지가 미국까지 따라오신 줄 알고
등줄기가 서늘했습니다.
***********

*주여, 저로 하여금 절망치 말게 하시고
혼미한 모든 슬픔을 맛보지 말게 하소서.
모든 고뇌의 불꽃을 핥지 말게 하여 주시오며
모든 부끄러움과 욕됨을 맛보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나 자신을 가누는 것을 도와주시옵기를.
....
저의 기도도 햇세와 비슷해요.
단지 단어 몇 개만 다른 뿐.

*안명자 선생님 쾌유를 빕니다.*
오윤정   14-11-15 00:26
    
'크눌프'에 이입되어 살았던 청춘시절.
'생떽쥐 베리'와 '헤르만 헤세'에 제 넋을 홀랑 빼앗기곤 했습니다.
풍경화보다 더 아름답고 다채로운 문장
철학과 사색적인 문장 
헤세의 글은 언제 다시 읽어도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콩쥐 안선생님이 안계서 많이 허전했던 자리..
곧 그 자리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소지연   14-11-15 17:11
    
소설 <시인> 중,
' 그의 목표는 언젠가 이 세상을 완벽하게 시 속에 담아서
이 영상들 속에서 세계 자체를 정화된 상태로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 때야 비로서 그는 진정한 행복과 깊은 만족을 얻게 될것이다' 에서,
진정 헤쎄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지고지순한 세계였음을 느끼고 다시한번 숙연했읍니다.
중등학교시절엔가, '나르찌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그 미숙한 시기에,
갑도 없고 을도 없이 공평하게 가슴을 울려주던
'지성' 과 '사랑' 의 섬뜩한 양면이 무한 그리워집니다.

가을이 가노라 서글펐을까요, 찬바람이 너무 빨리 불어와서 어지러웠을까요.
아침부터 어찔어찔하여 점심도 못하고 왔는데 ,
꼭 이맘때 쯤  한번 듣고 싶던 헤쎄의 기도가 후기에 올라와 있네요.
내 동갑, 명자샘, 지금쯤 우리의 기도 소리도 들리겠지요?
한희자   14-11-15 23:46
    
안명자씨와 거닐던 창덕궁 생각나서 오늘은 경복궁 뒷뜰 향원정을 거닐었습니다.
떠나려는 가을에 인사도 나누고 고궁 박물관의 천국의 문,피렌체 두오모 박물관 소장품 전시를
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안샘 쾌유를 빌었습니다.
빨리 퇴원하셔서 우리반 함께 관람했으면합니다.
좋은것, 귀한것 보면 꼭 함께하고싶은 사람들....
임옥진   14-11-16 00:49
    
미음을 드셨다는 일초쌤의 전갈을 듣고 전화는 못하실 것 같아 카톡을 보내봤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얼른 회복하실 일만 남았네요.
송교수님도 부처같으신 분이 앞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계셔 든든했는데 허전하시대요."하고요
따님이 대신 답을 주셨네요.
"엄마가 두 군데를 떼어 많이 힘드십니다.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네요."
나중 기운좀 차리시면 우리반에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아실 듯합니다.
일초님 연락 받으심 경과좀 알려주세요.

희자언니 어쩜 저런 명언을...
찾아 즐기는 자가 임자라는 말 새기겠습니다.
조병옥   14-11-16 07:56
    
추수감사절 아침
    예배드리러 가기 전
    헤르만 헤세의 시 한 수 보냅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차옥혜 시인이 보내온 것입니다.)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

                                  헤르만 헤세

 
당신은 죽었습니다, 그리운 형제 그리스도여.

하지만 당신이 대신해 죽은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당신은 모든 죄인들의 괴로움 때문에 죽었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거룩한 빵이 되었습니다.

그 빵을 성직자와 신도들은 주일날 먹습니다만

굶주린 우리는 그들의 문에 동냥을 갑니다.

우리는 살찐 성직자가 배부른 뒤에

조금 뜯어주는 당신의 용서의 빵을 먹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고 돈을 벌며 싸우고 죽입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당신 때문에 행복해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가난한 자들은 당신의 길을 가오니

빈궁과 수치와 십자가를 향한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만찬에서 돌아와

성직자를 구운 고기와 다과에 초대합니다.

형제 그리스도여, 당신은 헛된 고민을 하셨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십시오!

우리 굶주린 자는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여,

단지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당신은 우리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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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시는 안명자 선생님!
조금만 더 기운을 내십시오.
헤세처럼 기도합니다.
    '단지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당신은 우리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요.'

제 감기가 조금 숙으러드는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김진   14-11-16 22:33
    
안명자샘의. 수술 경과가  좋아질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께서 당신을 무지 사랑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고 감사합시다.  우리 들 삶의 대한 감사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 하면서.  ............... Jin, Kim
조병옥   14-11-17 20:39
    
수술 후
    오늘 오후 안명자 샘의 첫 음성을 들었습니다.
    안샘이 직접 전화다이얼을 누르신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목소리는, 목소리는 수술 전 고대로였습니다. 목소리에까지 어찌 칼을 댈 수 있겠습니까!
    안선생님! 저희들 자세를 바로 잡고 다시 그대의 빠른 회복을 위해 기도하렵니다.
    어서 어서 회복하십시오. 당신을 안아드립니다.
김진   14-11-17 23:37
    
일초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안샘의 회복 결과가
좋으신거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건강하세요.
노정애   14-11-18 08:34
    
안샘 소식에 조금 안도하는 아침입니다.
부디 더 많이 기도를...
그래서 우리와 함께 언능 공부할 수 있기를...
여기는 시인의 놀이터인가
가을이라서인가
모든 분들 마음속에서 낙엽태우는 냄새가 나는듯합니다.
저희반 모든님들이 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특별히 12월 부터 오신다는 김진샘도 건강관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