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나 수필은 인간과 세계 이해에 대한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통찰과 생각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즐거운 제사 /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일가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니 멀리 산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꺽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제삿날 풍경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촛불이 휜다’와 ‘삼색 나물처럼 붙어다니는’이란 표현이 좋습니다.
섬세하면서도 격조있는 언어 걈각으로 눈길을 끌었고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가 좋다는 심사평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스승님은 영화 <5일의 마중>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영화는 ‘기다림은 무엇일까? 부부란? 가족이란?’ 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입니다.
거창하지 않고 미세하고 보잘 것 없어도 계기를 주었기에 오랫동안 여운을 주지요.
앞에서 말했듯이 좋은 글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시적 자기 감정의 소비를 쓰면 안 됩니다.
그런 글은 일기에 불과하니까요.
자기 구원의 명목이 다가 아닙니다.
독자들에게도 생각의 계기를 주어야 합니다.
관계 혹은 사랑 / 이재무
못 박는다 벽은 한사코, 들어오는
막무가내의 순애보 밀어내고 튕겨낸다
그러나 망치 잡은 두툼한 손의 고집
벽은 끝내 막을 수 없다
일자무식하게 꽝꽝 박을 때마다 진저리치는
벽, 아주 인색하게 몸 열어 관계 받아들인다
단단한 살 헤집어 가까스로 뿔내린 자의
저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보라
벽은 못 품고 살아간다
들어올 때 아퍼서 울던 울음 뒤
생긴 상처 아물면서
못은 비로소 벽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못은 벽 떠날 날 올지 모른다
그날의 벽은 이제 제 안에 깊숙이 박힌
사랑 내주지 않으려 끙끙 앓으며
또 한 번 검붉은 녹물의 설움 질질 짜낼 것이다
베니어판에 못을 박으면 쉽게 들어갑니다.
콘크리트 벽에는 못을 박기가 힘들지요.
쉽게 맺어지면 쉽게 헤어집니다.
어렵게 박힌 못은 벽이 쉽게 놓아주지 않지요.
연애시를 쓰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잘 쓰지 않으면 유치해지기 쉬우니까요.
.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에게 갇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의 뼈다귀에 애정의 파리 떼가 고이면
뼈다귀를 버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면 일시적으로 잊을 수 있으나
뼈다귀를 버리지 않는 한 파리 떼는 또 오니까요.
뼈다귀가 작으면 2~3년이 걸리고
크면 더 긴 시간이 걸리겠지요.
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 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배를 미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떠나보낸 후의 슬픔과 미련을 노래한 시입니다.
아무리 밀어도 배는 떠나가지 않듯이
떠나가는 사랑을 잊으려 해도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나려 해도
마음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연샘만 빼고 전원이 다 출석해서
교실이 꽉 차고 즐거움도 그만큼 가득했습니다.
미경샘이 제주도 농장에서 직접 날아온 귤을 가져와
교실은 온통 귤 내음으로 가득했지요.
지연샘이 급작스런 결석으로 약속했던 경주 황남빵을 못 먹게 되자
눈치 빠른 인숙샘이 쉬는 시간에 맛난 빵을 사오셔서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스승님이 파이를 얼마나 맛나게 드시던지
파이 부스러기가 마구 떨어졌지만
순진한 아이가 간식을 먹는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났어요.
소박한 우리 일산반은 그래서 스승님과 호흡이 잘 맞나 봅니다.
아직 남아 있는 단풍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다 가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11월입니다.
이제 두 번의 수업을 하고나면 가을 학기도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요.
남은 가을 학기 다 함께 보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