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 이재무
폭우가 길 위에 걸어놓은
명경 속으로
갓 태어난 새털구름 세 마리
들어와 한첨을 첨벙대다 떠난 뒤
자잘한 풀꽃들 하나, 둘, 다섯
열 스물 몸단장에 지칠 줄 모르고
언덕 위 키 큰 느티나무
더벅머리 흔들어 물방울 털며
길게 휘파람 불어대더니
다음 날 다시 가보았을 때
명경 놓인 자리 흔적 없고
문수 다른 발자국들 똬리 튼
별들처럼 서로를 물고 할퀴고 있네
여름에 갑자기 소나기 쏟아지면 웅덩이가 생깁니다.
그 후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마치 거울처럼 맑은 물이 생기지요.
폭우가 길 위에 명경을 놓아놨더니
사물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물이 마르기 시작하고 명경은 깨져 파경이 됩니다.
그리곤 마른 땅에 발자국이 생깁니다.
이렇게 시인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멋진 시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은 여객선이 지나간 자리와 같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지나갈 때는 진흙이 패이지만 지나고 나면 흔적이 사라지듯
아무리 가슴 아픈 역사도 지나면 무덤덤해집니다.
현실만이 고통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시간의 풍화 작용을 겪으면
모든 아픔과 고통도 추상화되기 마련이니까요.
캄캄한 황홀/ 이재무
강풍에 나부끼는 활엽수들
산발한 채 달려드는 빗줄기
불빛의 혀로 감싸 안는 가등들
불어난 물살에
떠밀려가는 냇가의 돌들
갑작스런 방문에 부산스러운 것들
캄캄한 황홀의 소용돌이
가라앉은 뒤
낱알 뱉어낸 푹 꺼진 자루로 남아
오래 허전하고 아픈 영혼들
역설적인 제목의 시입니다.
강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며
갑자기 찾아온 비바람에 허둥대는 것처럼
갑작스레 미친 듯 찾아온 사랑을 떠올립니다.
이성적 통제가 안되는 사랑말입니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사랑처럼...
이렇게 비를 대상으로 시를 쓴다면
어떻게 비를 인식할 것인가 발견을 한 후에 써야 합니다.
가는 비의 종류
안개비 : 안개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비
는개비 : 안개비보다 빗방울이 조금 굵은비
이슬비 : 는개비보다 더 굵게 내리는 비
보슬비 : 보슬보슬 물방울이 끊어져서 내리는 비
부슬비 : 보슬비보다 좀더 물방울이 굵은 비
가루비 : 가루처럼 내리는 비
가랑비 : 보슬비와 이슬비가 같이 내리는 비
실비 : 실처럼 가늘고 길게 선을 그으며 내리는 비
먼지잼 : 먼지나 잠재울 정도의 약한 비
굵은 비의 종류
발 비 : 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
장대비 : 장대처럼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
채찍비 : 채찍을 치듯 세차게 내리는 비
달구비 : 달구로 누르듯 세게 내리는 비 (달구-쇳덩이,둥근 나무토막)
소나기 : 갑자기 세차게 내리다가 급방 그치는 비
억수(악수) : 물을 퍼붓듯 내리는 비
계절&날씨 비의 종류
일 비 : 봄비, 봄엔 일할것이 많아 비가와도 일을 해야함을 의미
잠 비 : 여름비, 여름엔 바쁜일이 없어 낮잠자도 좋다는 의미
떡 비 : 가을비, 가을이 와 떡을 해먹으며 여유롭게 쉴수있다는 의미
술 비 : 겨울비, 농한기라 술 마시며 논다는 의미
이른비 : 비 내릴 시기보다 이르게 내리는 비
늦은비 : 비 내릴 시기보다 늦게 내리는 비
마른비 : 지면에 닿기도 전에 증발하는 비
건들장마 : 초가을에 비가 내렸다, 갰다 반복하는 장마
그 외 비의 종류
여우비 : 맑은날 살짝 내리는 비
도둑비 : 예기치 못하게 밤에 살짝 내린 비
누리비 : 우박
꿀비 : 농사짓기에 좋을만큼 내리는 비
단비 : 필요한 시기에 내리는 비
약비 : 요긴할때 내리는 비
개부심 : 홍수 이후에 잠잠했다 다시 내려 진흙 등을 씻겨내는 비
비라는 일반적인 대상보다는 구체적 대상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위에 열거한 다양한 비들 중에서 특수한 비 하나를 정해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비의 종류가 엄청나지요?
스승님이 수십 가지 있다고 하셔서 조사를 해보았는데
참고해 보세요.
이슬비는 가을에, 보슬비는 봄에 온다는 것도 몰랐던 우리들에게
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셨네요.
비/ 이재무
해 종일 욕설 쏟아져 내린다
어머니 생전에 내게 퍼붓던 욕
급살맞을 놈, 호랭이 물려가 뒈질 놈,
환장할 놈, 가랑이 찢어 죽일 놈, 염병할 놈,
죽은 연년생 동생과 함께 밥보다 많이 먹은 욕
쏟아져내려 먼지 푸석이는 생이 젖는다
그리운 얼굴들 쏟아져 내린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욕설이었다
병을 앓으며 생각의 키가 자랐고
집과 멀어질수록 마음의 뜰 넓어졌다
거리에 분주한 바지氏, 치마氏들아
귀 열어 욕설 담아보아라,
모처럼 정겹지 않느냐,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는 살뜰한 것들이여,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 간절한 것들이여,
불쑥 찾아와 얼룩의 생 닦아내는 지혜의 물걸레여,
줄기차게 잔소리 쏟아져 내린다
살가운 추억, 떠나버린 애인들
오후 강의도 작파해 버리고
에라, 욕에나 젖어 비에 젖어 술에나
젖어 사랑에 젖어
10년 전 여름 장대비는 쏟아져 내리고 지방대로 강의를 가야하는 시인은
가기가 싫어서 낮술을 마셨답니다.
장대비 쏟아지는 것이 마치 욕설이 퍼붓는 듯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더이상 욕을 해주는 사람은 없고 욕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욕도 문학적으로 수사가 있으면 기막힌 표현이 됩니다.
욕 하나가 빠졌다며 ‘벼락맞아 죽을 놈’이 들어가야 한다는
초엽샘의 말씀에 스승님은 다음번 개정 때는 꼭 넣겠다고
비에 걸맞는 욕인데 빠졌다고 고마워하셨지요.
오랜만에 나오신 초엽샘!
역시 우리 반에 꼭 필요하신 분 맞습니다.
후원금도 내주셔서 회비가 굳었다고 총무님이 제일 기뻐했지요.ㅎ
스승님과 함께 비빔밥, 불고기를 먹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11월의 첫 주를 시작했습니다.
아메리카노 밖에 모르신다던 스승님이 시럽을 넣은 카페라떼를 드시더니
부드럽고 고급스런 맛이 난다고 한 잔을 더 드셨어요.
다방 커피만을 고수하시던 스승님에게도 슬슬 변화가 찾아오나 봅니다.
일산반 비문이 많이 줄어 기분이 좋으시다는 스승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해온 보람을 느낍니다.
아울러 스승님의 가르침에 새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