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란 시인이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직접 독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사물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소설이 주로 서사의 기법을 활용하는 것에 반해
시란 한 순간에 있어서 세계 혹은 인간에 대한 인식 혹은 인상을 기술하는
이미지의 문학입니다.
한순간에 파악하기 때문에 현대 과거의 시차가 없습니다.
시간 절차를 따지지 않지요.
오늘도 스승님은 강의를 하러 오시면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도정 전의 볍씨들이 까칠한 것과 같다’라는 인식이 불현듯 들어서
페이스북에 짤막한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갈대들 / 이재무
강변에 줄지어 서 있는 갈대들
불어오는 바람
세차게 몸 흔들어대도 갈 데가 없다
갈대라고 해서 왜 가고 싶은 곳이 없겠는가
깊숙이 내린 뿌리 악착같이 움켜쥔
진흙 터전 차마 떠날 수 없어
흐르는 강물에 제 그림자 드리우고
달빛 사무쳐도 별빛 영롱해도
제 몸 안에 고인 갈 빛 울음
밤새 퍼 올려 허공에 뿌리고 있다
가출 충동이 있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시인은
갈대라는 사물을 통하여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갈대는 시인의 감정을 대신하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슬프다, 외롭다 등등의 감정적 진술이 아닌
감정환기적 진술로 쓰면 깊고 풍부해집니다.
설명하지 않았기에 독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감정환기적 진술의 장점입니다.
묘사는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로 나뉩니다.
객관적 묘사는 기술적, 사전적 묘사와 같습니다.
미메시스라고도 하는데 실제를 있는 그대로 기술함을 뜻합니다.
주관적 묘사는 암시적, 비유적 묘사로
화자의 순간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나 인상을 떠올린 것을
그대로 그리는 방식이지요.
시인에게 시적 대상은 세 가지 즉 자연, 사물, 의식뿐입니다.
인간도 넓은 의미에서 사물에 포함됩니다.
인간의 행위나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서술의 대상이 되며
인간 그 자체를 직접 지시할 때는 묘사의 대상이 됩니다.
묘사가 어떤 특정한 주관적 관점에서 대상을 그려 보여주는 기술방식이라면
그것은 이미지에 의한 대상의 형상화라는 말이 됩니다.
이 형상화가 바로 그림입니다.
내 내면을 표현할 때 그림을 그려서 구도를 만드세요.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처럼 말입니다.
이미지와 비유는 세 가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서술적 이미지’로 비유되지는 않고 오직 이미지만 있는 경우입니다.
산도화 /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이 시에는 비유어가 없습니다.
시인은 오직 객관적 대상인 사슴과 상황을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지요.
만월/ 김춘수
강물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숨이 차서 이제는 울지 않는 새
울다가 멎어 버린 입을 벌리고
눈감으면
발가락 사이 모래톱은 하염 없이
무너지고 있다. 퍼석퍼석 소리내며
무너지고 있다
이 시는 주관의 어떤 메시지를 비유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한순간에 떠오르는 의식의 어떤 영상들을
여과 없이 그저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둘째, 비유적인 이미지로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비유가 되는 경우입니다.
욕심/ 공광규
뒤꼍 대추나무
약한 바람에 허리가 뚝 꺾였다
사람들이 지나며 아깝다고 혀를 찼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
과거에 남 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샜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너무 많은 열매를
나무는 달고 있었다.
나무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욕심이 많으면 부러진다는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독자들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탐욕스러운 자.
대추 열매는 그가 축적한 부(富)의 비유어들로
감각성과 비유어가 결함된 비유적 이미지로 형상화된 시입니다.
셋째, 서술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가 혼용된 경우입니다.
부흥이 우는 밤 / 이준관
돌이끼 푸른 성터를
끼고 돌아
호랑거미 거미줄 타고 내려오고
달빛에 주동이 흐늘히 젖어
부흥이 우는 밤이 있었다.
개들이 짖어 대면 별이 떨어졌다
개의 귀에 대고 무슨 소리가 들려 올까
들어 보면 나의 귓속엔 푸른 별들이
가득 찼다.
아랫녘 마을의 불빛들은 도토리 열매처럼 열려,
깨물면 떫은 맛이 들었다.
기다림은,
나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늙은 노새처럼 슬픈 눈을 가졌다.
기다림에 지친
성터의 돌들을 주워
손에 쥐면 그대로 소리 없이 바스라져 버렸다.
꽃 속에 숨은 두근거리는 천둥의 심장
죄 지은 듯 그 꽃잎 따먹고
나는 그리움을 지녔다.
서러운 해오라기의 긴 모가지를......
이 시는 대부분 서술적 이미지들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짖음’은 ‘푸른 별’로
‘기다림’을 ‘마을 불빛’과 ‘도토리 열매’ 등으로
‘우물’을 ‘늙은 노새의 슬픈 눈망울’로
‘심장의 맥박’을 ‘천둥소리’로 비유했기 때문에
서술적 이미지에 비유적 이미지를 더해서 시적 형상화에 성공했습니다.
동화적 상상력이 뛰어나며
특히 ‘깨물면 떫은 맛이 들었다“
“우물은 늙은 노새처럼 슬픈 눈을 가졌다‘는 훌륭한 표현입니다.
‘꽃 속에 숨은 두근거리는 천둥의 심장’은
상상력이 비약적으로 고도화되었습니다.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내 마음을 대변해줄 사물을 찾아
그림을 그리듯이 구도를 잡아 묘사하는 것.
시와 수필이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내 마음을 대신해서 표현해 줄 고마운 사물을 찾아서...
달콤하면서도 고운 주홍빛의 홍시쥬스를 만들어 오신
총무님은 번번이 애쓴다는 찬사에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겸손의 말씀뿐입니다.
총무님, 한나샘, 미경샘이 가져오신 고구마와 인숙샘이 가져오신 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독서모임이었지요.
맛난 것 먹기 위해서라도 꼭 나와야겠다는 문정혜샘의 말씀에 모두들 까르르...
배부르고 재미나고....바로 우리 일산반의 현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