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가을을 타나요? 수업은 스승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을의 하늘이 정말 높고 파래서, 청량한 바람이 상큼해서,
뜻하지 않게 햇살이 화창해서 올 가을은 센티메탈해지기보다는
경쾌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
그러나 가을은 약간 쓸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일조량이 급감해서 신체적으로
한해가 마무리된다는 느낌에 정서적으로 가을을 탄다고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되었다는군요.
가을은 오랑캐처럼 쳐들어와 나를 폐허로 만들어버리는구나.
그러나 나는, 추억의 부장품마저 마구 파헤쳐대는
무례한 가을의 만행 앞에서
무장해제 당한 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마는
서러운 정서의 부족이로다.
이재무 교수님이 수업하러 오시는 길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나요?
속절없이 가을 앞에서 무너지는 여린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스승님이
왜 이리도 정겨울까요?
歸休 / 문태준
돌아와 나흘을 매어놓고 싶다
구불구불한 산길에게 자꾸 빠져들다
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
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
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
해질 무렵까지 말뚝에 묶어놓고 나를 풀밭을 염소에게 맡기다
울 아래 분꽃 곁에 벌을 데려오다
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
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 웃다
이들과 주민이 되어 살다
한국산문 10월호 권두시입니다.
잠시 동안 고향에 와서 자연의 사물들과의 즐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흘을 매어놓고 싶다
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
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
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
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
위 다섯 행이 뛰어난 시적 표현입니다.
나흘을 매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가축으로 여겨서
고향집에 자신을 매어 놓고 집밖에도 안나간다는 뜻이지요.
마당은 닭이 주인이므로 꾸어쓴다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말뚝에 묶어놓는 것은 원래 염소이지만
나의 마음을 묶어놓는다고 썼습니다.
묶인 줄만큼만 자유를 허용받는 염소를 바라보는 시선도 따스합니다.
배를 땅에 깔고 살아가는 존재인 뱀은 태생적으로 슬픈 존재이며
시인은 뱀 같은 존재에게도 연민을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에 꾸어 쓸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꾸어다 쓰세요.
단풍나무도 좋고 젊은 날 맡겨놓았던 보랏빛 추억도 좋습니다.
그래야만 시적 표현이 들어간 시나 수필이 되기 때문이지요.
예쁘게 옷을 입는 것이 내 만족을 넘어서 타인을 위한 것처럼
글도 독자들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김주영 소설가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재담가입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글이 될 정도입니다.
그의 권두 에세이 ‘고통과 갈등과 비통함의 먼지들’을 읽어보면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관성적, 기계적인 사람입니다.
축생과 다름없지요.
소설가 김주영은 문학을 마룻바닥을 닦다만 걸레에 비유했습니다.
문학이 원관념, 걸레가 보조관념이지요.
닦으면 걸레는 더러워지지만 타인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문학을 하면 나는 고통에 찌들고 망가지지만
독자는 그 문학 덕분에 행복해집니다.
문학, 걸레 모두 이타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문학은 누군가를 울게하는 문학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글을 써보시길 바랍니다.
긴 영국 여행을 끝내고 오신 문정혜샘이 초콜렛과 밤을 선물로 가져오셨습니다.
한달간의 휴식을 끝내고 한명숙샘도 나오셔서 무척 반가웠지요.
오늘은 모든 회원이 출석하여 뿌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면학 분위기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