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가을에 꾸어 쓸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꾸어다 쓰세요.    
글쓴이 : 한지황    14-10-14 00:00    조회 : 4,137

여러분은 가을을 타나요? 수업은 스승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을의 하늘이 정말 높고 파래서, 청량한 바람이 상큼해서,

뜻하지 않게 햇살이 화창해서 올 가을은 센티메탈해지기보다는

경쾌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

그러나 가을은 약간 쓸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일조량이 급감해서 신체적으로

한해가 마무리된다는 느낌에 정서적으로 가을을 탄다고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되었다는군요.

 

가을은 오랑캐처럼 쳐들어와 나를 폐허로 만들어버리는구나.

그러나 나는, 추억의 부장품마저 마구 파헤쳐대는

무례한 가을의 만행 앞에서

무장해제 당한 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마는

서러운 정서의 부족이로다.

 

이재무 교수님이 수업하러 오시는 길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나요?

속절없이 가을 앞에서 무너지는 여린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스승님이

왜 이리도 정겨울까요?

 

 

歸休 / 문태준

 

돌아와 나흘을 매어놓고 싶다

 

구불구불한 산길에게 자꾸 빠져들다

 

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

 

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

 

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

 

해질 무렵까지 말뚝에 묶어놓고 나를 풀밭을 염소에게 맡기다

 

울 아래 분꽃 곁에 벌을 데려오다

 

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

 

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 웃다

 

이들과 주민이 되어 살다

 

한국산문 10월호 권두시입니다.

잠시 동안 고향에 와서 자연의 사물들과의 즐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흘을 매어놓고 싶다

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

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

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

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

위 다섯 행이 뛰어난 시적 표현입니다.

 

나흘을 매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가축으로 여겨서

고향집에 자신을 매어 놓고 집밖에도 안나간다는 뜻이지요.

마당은 닭이 주인이므로 꾸어쓴다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말뚝에 묶어놓는 것은 원래 염소이지만

나의 마음을 묶어놓는다고 썼습니다.

묶인 줄만큼만 자유를 허용받는 염소를 바라보는 시선도 따스합니다.

배를 땅에 깔고 살아가는 존재인 뱀은 태생적으로 슬픈 존재이며

시인은 뱀 같은 존재에게도 연민을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에 꾸어 쓸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꾸어다 쓰세요.

단풍나무도 좋고 젊은 날 맡겨놓았던 보랏빛 추억도 좋습니다.

그래야만 시적 표현이 들어간 시나 수필이 되기 때문이지요.

예쁘게 옷을 입는 것이 내 만족을 넘어서 타인을 위한 것처럼

글도 독자들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김주영 소설가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재담가입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글이 될 정도입니다.

그의 권두 에세이 고통과 갈등과 비통함의 먼지들을 읽어보면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관성적, 기계적인 사람입니다.

축생과 다름없지요.

소설가 김주영은 문학을 마룻바닥을 닦다만 걸레에 비유했습니다.

문학이 원관념, 걸레가 보조관념이지요.

닦으면 걸레는 더러워지지만 타인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문학을 하면 나는 고통에 찌들고 망가지지만

독자는 그 문학 덕분에 행복해집니다.

문학, 걸레 모두 이타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문학은 누군가를 울게하는 문학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글을 써보시길 바랍니다.

 

긴 영국 여행을 끝내고 오신 문정혜샘이 초콜렛과 밤을 선물로 가져오셨습니다.

한달간의 휴식을 끝내고 한명숙샘도 나오셔서 무척 반가웠지요.

오늘은 모든 회원이 출석하여 뿌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면학 분위기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최영자   14-10-14 16:05
    
반장님, 꼼꼼한 후기로 복습 잘 했습니다.

 어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쌀쌀합니다.  곡식도 과일도  영글고 익었으니 더 이상 뜨거운 태양을 꾸어다 쓰지 않아도  한 겨울 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달려가는  가을이 아쉽네요.  명주실 끝에  매달아  붙들고 싶습니다.
하늘높이 올라간 연을  다시 잡아당기듯이 가을을 때때로 불러 와 추억과 함께 푹 안기고 싶어요.
     
한지황   14-10-14 22:14
    
영자샘의 시적 표현은 멈출 수가 없는 바퀴처럼 오늘도 씽씽 달리고 있네요.
명주실에 매달린 가을이라...
정말 멋진 표현이어요.
연을 당기듯이 그리울 때마다 당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을은 힘들더라도 우리벗들은 명주실로 꽁꽁  묶어 보고플 때마다 서로 당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어요.
정정미   14-10-14 21:27
    
진정  간절한 소망이 있었나하고  반성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시간 내내도 그랬고,  반장님후기를 읽는 이순간에도
묻고 물어보지만 자신있게 확답할수 없음만이  되돌아오는 답.
어린아이의 막무가내한 보챔이라도, 
철없는 아이의 유치한 열정이라도,
지금 나의 간절함을 치솟게만 할수있다면
유년으로 돌아가 가장 절실했던 심정을 꺽어 올텐데....
아찔하군요.....간절함이 없다면 관성적, 기계적인 사람이 되어갈거고
급기야는  축생과 다름없다니..... 으악!  정신이 번쩍들어요.
전 사람입니다.ㅎㅎ
가을을 명주실 끝에 매달아  연을 당기듯  때때로  샘곁에 데려와 안기고 싶은 영자샘 마음....
당장 우리반 샘들의 넘치는 간절을 꾸어오던지 뺏어오던지  해얄까봐요.
어느날  갑자기  사는게 무의미하다 느껴지신다면, 
샘들의 간절을  어떤 여자가  빌려 간줄 아시고
곧 돌려 드릴테니 걱정은 마세요.....양심있는 여자 올림!
     
한지황   14-10-14 22:24
    
ㅎㅎ 예쁜 도둑이 되고픈 정미 총무님! 
눈치 못채게  살짝 훔쳐다가 또 살짝 가져오세요.
얼마든지 빌려드릴께요.
그만큼의 간절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재치넘치는 편지가 정겹네요.
양심있는 여자란 표현도 재미있어요.혹 허무해질 때가 있으면 총무님께 즉각 물어볼께요.
혹시 내 간절 거기 있냐하고요.
진미경   14-10-15 09:08
    
ㅎㅎㅎ 예쁜 도둑이 되어도 멋있는 가을^^  목석인 남자도 이 계절엔 감상적이 되어버릴걸요~~
아파트 담장엔 가을 장미가 꽃망울을 터트렸어요. 길을 걷다가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에 흐뭇한 미소가....
어제 후기를 달다가 손가락의 오작동으로 긴 문장을 모두 날려버렸어요.
억울해하다가 창밖으로 내다 본 아파트의 풍경이 그림같아서 멍때리고 앉아있었네요.
해마다 돌아오는 이 가을이 주는 선물에 행복합니다.
한국산문으로 공부하니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결석하신 분 없이 꽉 찬 강의실이 좋았답니다.
꼼꼼하게 후기로 올려주셔서 복습이 수월하니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뵌 명숙샘! 따님의 결혼식 축하드리고요.
발에 깁스를 하고도 수업에 나와주신 막내 지연샘 ! 어서 나으시길 빕니다.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을 맘껏 즐기시고요.
진미경   14-10-15 11:33
    
가을에 꾸어다 쓸 수 있는 것으로 수필을 써보라는 이재무 스승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있습니다....음 음 .....
청송에 가면 객주문학관이 있다. 조간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주왕산을 칭송하던 반장님의 상기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기대의 설레임으로 더 젊게 시간을 살아내는 멋진 여자!
수묵화같은 울창한 산길이 달콤한 문학의 향기까지 얻었으니....
실로 자연이 주는 선물은 인간을 더 깊게 더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것 ! 아닌가요?
문우님들 잘 다녀오소서^^
     
한지황   14-10-15 12:12
    
저도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동인문학상 심사도 객주문학관에서 했다고 하지요.
올해 수상자는 전업작가 구효서가 받았고요.
창비에서 읽었던 그의 단편들이 떠올랐어요.
<시계가 있던 자리>와 <깡통따개가 없는마을 > 등등..
전업작가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지요.이번  수상작은 <별명의 달인>이라고 하네요.
재미있을 것같은 제목이지요?
그동안  독토 덕분에 많은 작가들을알게되어 감사해요.
청송  객주 문학관 잘 다녀올께요.
공인영   14-10-15 17:28
    
벌써 수요일, 분리수거가 있는 날이었지요...
희뿌여한 새벽을 열고 분리수거물 내보내는 매 주 오늘이면
그참에 이기와 허욕 따위도 몰래 좀 내놓기 희망하는데, 빈 바구니 챙겨 들어와 보면
꼭 집구석 어딘가에 문고리에 매달려 안나가는 놈들 두엇 있단 말씀이죠 아직도....-_-;; 
히!........ 머 그랬단 말씀.

수업이야 날마다 좋고 갈수록 더 재미지지만 그보다 더 보기 좋은 건
어느새 우리 벗들이 늘 진심을 다해 서로를 바라보고  품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을 수시로 돌아보고 벗들이 주는 조언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애쓴다는 점이지요.
그래서인지 제 눈엔 모두가 어여쁘고 순박하고 인간적인 분들로 자꾸만 마음에 들어와 앉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엔
벗들을 위한 작은 기도 한 자락 꼭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저 오늘처럼만, 지금 우리처럼만
잔잔히 흘러가며 우리 함께 행복하기를 두 손 모읍니다.

문학기행 가시는 벗들 안전하고 즐겁게 잘 다녀오시고
못 가신 분들은..... 가지 않고도 쓰는 기행 후기, 어떠실런지@_@ 킥.(넘했나?)
한국산문의 다른 반 모든 벗들과도 따뜻한 교류하시며
그간의 안부 많이 많이 묻고 나누고 오시길요.
오시는 길, 전 그저 곱게 물든 단풍잎 몇 개 주워오실 줄...그거나 기다리렵니다. 에효~~

우리 마스코트 지연씨는 빨리 나으시고
한명숙 샘, 뜻깊은 혼사를 그리 조용히 치르시다니 서운해라~~
늦었지만 신랑각시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축하 가득 보냅니다. 애쓰셨어요.
     
한지황   14-10-16 07:50
    
청소의 기본은 버리는 것이라더군요.
물건을 버리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아집과 교만도 버리는 거라고....
아동작가 누군가가 책에서 썼대요.
저장강박증에서 탈출하며 자유를 얻었나봐요.
소유하는 것이 많을수록 버겁다는 것을 나이거 들어가면서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일년동안 정말 물건을 안사고 꼭 필요한 것은 만들어 쓰면서 실험을 한
외국 가족이야기도  기억이 나요. 
심지어 치약까지 만들어 썼다고 하네요.
결론은 엄청난 저금을 할 수 있었다고.....
이젠 거느리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물건을 봐도 사고 싶은 욕구가 안생겨요.
그동안 사놓은 것 사용하기에도 바쁘니까요.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고운 단풍 몇 잎 인영샘 떠올리며 주워올께요.주왕산에서요.
문영일   14-10-16 05:16
    
일산반 님들 안뇽?

  이재무 선생님의 강의가 듣고 싶어
  여기, 창문밖에서 들여다 봅니다.
  선생님이 시인이시니
  그 제자들 또한  모두 시인이시네 !
  앞의 댓글, 답글들 보세요.

  모두 내려 놓아야 할 짐들이
  덕지덕지 온 몸을 휘감고 있으니
  결실이라는 계절에 더 궁핍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추운 겨울을 맞으려는 한 그루 나목이 되어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방화착'이라 했던가요
     
한지황   14-10-16 09:56
    
문영일샘!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찾아주셨네요.
지난번 이우중선생님 출판기념회에서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셔서 우리 모두 즐거웠어요.
파티의 꽃미남이셨어요.ㅎㅎ
저도 누구 못지 않게 자유를 꿈꾸는데 참 어려운것 같아요.
올 가을엔 다함께 진정한 자유를 향하여 ....
     
공인영   14-10-22 18:18
    
귀엽게 안부를 물어주시니 저도 별수 없이,
문영일 선생님 안뇽? ^__^

이재무 선생님의 시론을 배우는 일은
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인의 가난한 삶,
그 삶에서 번져나오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울그락 불그락 날마다 순수에서 나오는 피돌기의 에너지가
저희를 부끄럽게도, 감동하게도 하신답니다.
언제고 기회 되시면 꼭 함께 배움 나눌 수 있기를 빌어드려요.
방하착의 그 쉽고도 어려운 행위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시네요.
언제고 그럴 날 있을까요? ^^ 아니 그저 조금씩 그렇게 되어지길
노력할 뿐일 테지요.
모처럼 가을 길 밟고 오셨는데 차 한 잔 못드렸네요.
그건, 송년모임때 가서....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