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이재무 교수님을 모시고 해물찜을 먹었습니다.
오후 늦게 시작하는 수업 때문에 매주 점심 식사가 여의치 않기에
더 소중한 회식 시간일 수밖에 없었지요.
즐거운 대화는 현대 백화점 하늘 공원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때늦은 더위로 28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와는 상관없이
그늘이 있는 하늘공원은 시원하기만 했고
원두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한시라도 시 얘기를 놓치고는 지나갈 수 없는 교수님이신지라
시 <혹>을 읽어 보았지요.
혹 / 이재무
난쟁이의 등에 난 혹을
사람들은 흉측하게 여겨
떼어냈으면 하는 발칙한 생각도
하는 모양이더라만 아서라,
혹을 캐내면 그는 죽은 목숨
뿌리는 그의 몸 전체에 뻗어 있다
누구나 존재의 혹을 지니고 산다
다혈질인 나도 내성적인
혹은 인간이 지닌 본질이자 자신을 옭아매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한계를 없애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없어지면
‘나’라는 존재가치가 없어집니다.
누구는 그 혹을 인정해주고 나의 개성이라 좋아해 주지만
누구는 그 혹을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성자나 사깃꾼일 수 밖에 없지요.
성자는 한 시대에 하나나 나올까 말까입니다.
성자가 많은 시대는 역설적으로 불행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타인에 대한 시선도
또한 나를 향한 마음도 너그러워질 것 같아요.
윤한나샘의 <무의도>는 ‘이른 새벽부터 그 소리를 모아 가만히 키질한다’는
명문장이 나와서 스승님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일관성이 없는 게 흠이었지만
이 문장을 살려 짧게 줄이니 시 한편이 나왔지요.
무의도라는 뜻을 알고 그 내용이 들어가면 더 좋은 시가 됩니다.
옷이 춤추는 산이란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을 쓸 때는 단어의 뜻을 꼭 찾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단어의 뜻을 풀면서 상상력이 생기니까요.
속리산은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산입구가 길지요.
경쾌한 유랑 / 이재무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참새 무리를 만나다
저들은 떼 지어 다니면서 대오 짓지 않고
따로 놀며 생업에 분주하다
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다
저, 경쾌한 유랑의 족속들은
농업 부족의 일원으로 살았던
텃새 시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가는 발목 튀는 공처럼 맨땅 뛰어다니며
금세 휘발되는 음표 통통통 마구 찍어대는
저 가볍고 날렵한 동작들은
잠 다 빠져나가지 못한 부은 몸을,
순간 들것이 되어 가볍게 들어 올린다
수다의 꽃피우며 검은 부리로 쉴 새 없이
일용할 양식 쪼아대는,
근면한 황족의 회백과 다갈색 빛깔 속에는
푸른 피가 유전하고 있을 것이다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만난,
발랄 상쾌한 살림 어질고 환하고 눈부시다
시인은 참새를 보면서 이 시를 구상하였고
참새에 대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공부한 다음에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새의 색깔이 황백색이라는 것도 알았다고 하지요.
사리암을 찾아서 / 이재무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서 분가한 듯한
산 중턱에 자리한 조그만 암자 찾아
경사 육십도가 넘는 산길 오른다
절로 허리 꺾이고 더운 숲 목에 가득
아무렴, 부처 만나는 일 수월해서야 쓰겠는가
죄와 이별하는 값 헐해서야
투덜대는 무릎과 허리달래며 오른다
실면서 지은 죄 많아 내 몸은 죽죽,
팥죽 같은 땀 흘린다
이렇게 몸 속에서 솟아나는 죄 죄다 덜어내면
죽은 뒤 한줌 재로 남은 내 몸에서
단 한 알의 사리 얻기는 얻을 것인가
어림없는 공상에도 젖어보면서
사리암 찾아가는 길
오래 전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
불볕더위는 수백 수천 개의 불화살이 되어
내 몸의 표적에 와서 꽂힌다
시인은 사리암이라는 단어가 사악하다는 ‘사’와 이별의 ‘리’
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시를 썼습니다.
사악함과 이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사리암에 비유해 표현했습니다.
술, 담배와 같은 사악함과 끊는다는 것은 무척 힘들지만
끊으면 사리가 생기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간절/ 이재무
삶에서 '간절'이 빠져 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먹어 치웠나
'간절'이 빠져 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달아 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고 쓴 4연은
간절에 대한 사전적 해석입니다.
시인은 간절이란 단어를 찾아보고 시를 쓴 것이지요.
사전의 뜻은 누구의 것이 아니므로 인용 표시가 필요없습니다.
단어의 뜻을 찾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됩니다.
시월의 첫째 주는 야외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월의 푸르른 날에 하는 야외 수업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