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의 휴식이 너무 길지 않았나요?
이재무 교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랬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주를 또 쉬니
리듬도 깨지는 듯 긴장도 풀리는 듯....
이런 게으름에 익숙해지지는 않을까
슬그머니 염려도 되었지요.
현대 백화점 야외 옥상에 도착하여 이미 자리를 잡고 계신 래순샘을 뵙는 순간
모든 우려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이윽고 저 멀리서 인영님이 배시시 웃으며 나타나고
정미 총무님, 영자샘, 한나샘이 등장했습니다.
래순샘이 가져오신 모시 송편과 한나샘이 쪄오신 땅콩을 까먹으며 열띤 독서모임을 했지요.
음식이 거의 떨어져갈 무렵 나타난 미경샘과 인숙샘!
절대 지각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미경샘의 말에 모두들 웃었지요.
까딱하다간 맛난 송편과 땅콩을 못 먹을 뻔했다나요.
인영샘이 가져오신 쿠키는 수업 시간을 위해 아껴두었다가
성희샘이 가져오신 떡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일산반의 풍경이 그려지지 않나요?
응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이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메시지를 주고받던 시인은 자신이 보낸 문자 "응"이라는 글자를 통해
글자의 언어 체위를 상상했나 봅니다.
긍정적으로 "응"이라는 문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지요.
아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이라는 문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여
멋진 시를 쓴 시인의 기발한 착상이 놀랍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은
아버지가 돈을 아끼느라 같이 안 간다고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아버지 등에 있는 지게 자국을 보고서야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자식의 검열이 두려운 아버지.
등과 관련된 일화만을 썼기에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비유의 원리에 의해 쓴 시입니다.
서로 다른 대상 기리의 유사성 즉
소주병과 아버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썼습니다.
소주병이 수퍼 진열대 위에 있을 때는 대우를 받지요.
그러나 빈병이 되면 굴러다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자식이란 ‘잔’에 자신의 생을 따라주었기에
빈병의 울음소리는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실제로 유산을 넘겨주는 순간 아버지는 빈병이 됩니다.
우렁이 / 이재무
구불덩 구불덩 논둑길 타면
뒷덜미를 치는 한숨
뒤돌아보면
찬바람만 아득하고나
무심히 발목에 차여 뒹구는
아버지의 맨가슴 같은
우렁껍질 속
몇 점 휘날리는 눈발이 녹고
눈물 넘치는 논바닥에는
밤마다 별꽃이 뜨네
내디딘 구두 밑창에
별 그림자 찌그러지는데
가위 눌리는 신음 소리는
북풍에 실려 어디로 가나
논둑길에 뒹구는 우렁이 하나
다 파먹힌 우렁이를 보며 늙으신 아버지를 떠올린 시입니다.
이밖에 여러 사물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력거, 자전거, 리어카가 고물상으로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며
한 때는 엄마도 나도 실어 날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깊은 눈 / 이재무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 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빛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잔치집에, 떡방앗간에, 예식장에, 초상집에,
공판장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은 만취한 주인 싣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돌아보면 파란 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이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들 달디단 가을 볕
쪽쪽 빨아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시인은 사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연상을 하여
이렇게 가슴을 적시는 시를 지었고
우리는 이 시들을 읽고 공부하며
수필 또한 이렇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가을 하늘이 한층 파랗고 높아졌습니다.
가을엔 멋진 수필 한 편 써보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