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교시-교수님과 함께 오찬을
한 동안 쉬었던 교수님과의 점심식사 자리에 많은 분들이 결석 하긴 했지만
나름 오순도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살며시 카운터로 가신 흑장미분 덕분에
더 비싼 메뉴를 시키지 않음을 후회하며 한 바탕 웃었네요.
양푼 들고 인증샷 남기신 임교수님 사진은 어디에 올리실 건가요? 총무님? ㅎㅎ
가을학기의 오찬회동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시어서 자리를 빛내 주시길 바랍니다.
제 2교시- 이광수의 시베리아 여행
*11세때 고아가 됨.
천도교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
귀국후 이승훈이 설립 한 ‘오산학교’ 교사가 됨.
신민회 사건으로 이승훈이 구속 되자 교장대행.
재정난으로 ‘오산학교’는 기독교 학교가 됨.
*닭싸움을 보고 국제정세에 비유.
학교 강의로 활용.
기독교 비판- 똥구더기 같은 놈들이라고 함.
1.애정 전선의 이상
2.학교에서의 입지 불안
3.일부 제자와 기독교 교장과의 관계도 껄끄러워 짐
등의 이유로 1913년 11월 무작정 여행을 떠남.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상해에서 1개월 보름 체재하면서 신채호, 조소앙, 홍명희, 문일평,김규식등 만남.
가장 도움을 준 건 신정(신규식).
1914년 이동녕, 홍범도등 만남.
대한제국 육군 참령을 지낸(을사늑약으로 사임 후 국권 회복 운동에 투신) 추정 이갑을 만남.
이갑을 모델로 소설 <무명씨>연재.
미주이민 1호인 오산 이강을 만남.-치타에서 신문<정교보> 발행
춘원이 <정교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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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8월 치타를 떠남(1차 대전, 러시아 총동원령).
*수양동우회- 안창호가 1923년 베이징으로 춘원을 초청.
서울의 수양동맹회와 평양의 동우구락부를 합칠 것을 종용(흥사단 운동을 위해)
안창호의 제 1비서는 최남선
제 2비서는 이광수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로 안창호 피체. 1938년 3월 병사.
안창호의 사망으로 이광수는 절망에 빠짐.-정신적 기둥이 무너짐-변심.
*1917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무정’연재.
동경에서 2,8독립선언 초고 작성.
상해에서 독립신문 주필 됨.- 돌아온 뒤 친일 행적을 보임.
*1933년 조선일보에<유정> 연재.
11쪽의 오류로 짐작 하건대 이광수는 바이칼을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바이칼스코에’ ‘이르쿠우츠크’....
여름학기 종강 기념으로 ‘유정’ 다시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정임의 아버지는 이광수가 여행중 만났던 사람들의 조합.
‘인정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함.
하르빈-F역-바이칼 호반을 따라가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았던 춘원을 만나고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선인들과 이름없는 민초들의 흔적을 따라 가 보는 잊지 못 할 문학기행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 3교시-수필반 풍경
1,박재연<좌석 버스에서 안전벨트 매는 방법>
2,이경숙<식신생재>
3,김영환<빈 페트물병>
4,우중<父子, 군대 가서 보물 캐다>
5,김계원<예술의 섬 나오시마>
이상의 합평이 있었습니다.
1-1.현장을 모르는 책상머리 행정에 대한 풍자.- 시행제도에 대한 팩트확인요망
2-1.다시 다듬어 오신 착한(?) 부자친구분의 선행.-독자에게 감동할 여지를 줘라. 너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무방. 통과하셨습니다.
3-1.부부동반 여행길에서의 에피소드.-작가만큼의 재미가 독자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4-1.군대에서의 시간이 아버지는 작가로 아들은 통역사로.- 이리 운이 좋을 수 있나요?(교수 님 표현)
5-1. 친구들 얘기를 분리하니 멋진 기행문이 되었습니다.-사진을 첨부해서 지구촌 나그네에
싣기로..( 사진이 별로 없다 하시니 사진 찍으러 한번 더 다녀오시라고 하셔서 하하!)
다사다난했던 여름학기가 끝났습니다. (담주는 특강이닌까요)
갑자기 일꾼들이 바뀌고 가끔 천둥도 치고 번개도 번쩍하고...
아,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해 여름은 참 뜨거웠네’라고 기억 될
그런 여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54편의 열매들이 나왔구요. 이우중샘의 ‘개미 선장’이 출간되었네요.
축하 하고 감사할 일이지요.
무엇이든 한다면 하는 분당반님들 건강한 모습으로 가을에 만나시게요~~~
저도 자작나무 숲에 여름의 찌꺼기들 털어버리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