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그 해 여름은 뜨거웠네    
글쓴이 : 박서영    14-08-13 23:19    조회 : 4,213
1교시-교수님과 함께 오찬을
 
한 동안 쉬었던 교수님과의 점심식사 자리에 많은 분들이 결석 하긴 했지만
나름 오순도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살며시 카운터로 가신 흑장미분 덕분에
더 비싼 메뉴를 시키지 않음을 후회하며 한 바탕 웃었네요.
양푼 들고 인증샷 남기신 임교수님 사진은 어디에 올리실 건가요? 총무님? ㅎㅎ
가을학기의 오찬회동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시어서 자리를 빛내 주시길 바랍니다.
 
2교시- 이광수의 시베리아 여행
 
*11세때 고아가 됨.
천도교 장학금으로 일본 유학.
귀국후 이승훈이 설립 한 오산학교교사가 됨.
신민회 사건으로 이승훈이 구속 되자 교장대행.
재정난으로 오산학교는 기독교 학교가 됨.
 
*닭싸움을 보고 국제정세에 비유.
학교 강의로 활용.
기독교 비판- 똥구더기 같은 놈들이라고 함.
 
1.애정 전선의 이상
2.학교에서의 입지 불안
3.일부 제자와 기독교 교장과의 관계도 껄끄러워 짐
등의 이유로 191311월 무작정 여행을 떠남.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상해에서 1개월 보름 체재하면서 신채호, 조소앙, 홍명희, 문일평,김규식등 만남.
가장 도움을 준 건 신정(신규식).
 
1914년 이동녕, 홍범도등 만남.
대한제국 육군 참령을 지낸(을사늑약으로 사임 후 국권 회복 운동에 투신) 추정 이갑을 만남.
이갑을 모델로 소설 <무명씨>연재.
 
미주이민 1호인 오산 이강을 만남.-치타에서 신문<정교보> 발행
춘원이 <정교보> 주필
 
 :namespace prefix = o />
19148월 치타를 떠남(1차 대전, 러시아 총동원령).
 
*수양동우회- 안창호가 1923년 베이징으로 춘원을 초청.
서울의 수양동맹회와 평양의 동우구락부를 합칠 것을 종용(흥사단 운동을 위해)
안창호의 제 1비서는 최남선
2비서는 이광수
1932429일 윤봉길 의사 의거로 안창호 피체. 19383월 병사.
안창호의 사망으로 이광수는 절망에 빠짐.-정신적 기둥이 무너짐-변심.
 
*1917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무정연재.
동경에서 2,8독립선언 초고 작성.
상해에서 독립신문 주필 됨.- 돌아온 뒤 친일 행적을 보임.
 
*1933년 조선일보에<유정> 연재.
11쪽의 오류로 짐작 하건대 이광수는 바이칼을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바이칼스코에’ ‘이르쿠우츠크’....
여름학기 종강 기념으로 유정다시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정임의 아버지는 이광수가 여행중 만났던 사람들의 조합.
인정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함.
 
하르빈-F-바이칼 호반을 따라가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았던 춘원을 만나고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선인들과 이름없는 민초들의 흔적을 따라 가 보는 잊지 못 할 문학기행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3교시-수필반 풍경
 
1,박재연<좌석 버스에서 안전벨트 매는 방법>
2,이경숙<식신생재>
3,김영환<빈 페트물병>
4,우중<父子, 군대 가서 보물 캐다>
5,김계원<예술의 섬 나오시마>
 
이상의 합평이 있었습니다.
1-1.현장을 모르는 책상머리 행정에 대한 풍자.- 시행제도에 대한 팩트확인요망
2-1.다시 다듬어 오신 착한(?) 부자친구분의 선행.-독자에게 감동할 여지를 줘라. 너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무방. 통과하셨습니다.
3-1.부부동반 여행길에서의 에피소드.-작가만큼의 재미가 독자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4-1.군대에서의 시간이 아버지는 작가로 아들은 통역사로.- 이리 운이 좋을 수 있나요?(교수 님 표현)
5-1. 친구들 얘기를 분리하니 멋진 기행문이 되었습니다.-사진을 첨부해서 지구촌 나그네에
싣기로..( 사진이 별로 없다 하시니 사진 찍으러 한번 더 다녀오시라고 하셔서 하하!)
 
다사다난했던 여름학기가 끝났습니다. (담주는 특강이닌까요)
갑자기 일꾼들이 바뀌고 가끔 천둥도 치고 번개도 번쩍하고...
,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해 여름은 참 뜨거웠네라고 기억 될
그런 여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54편의 열매들이 나왔구요. 이우중샘의 개미 선장이 출간되었네요.
축하 하고 감사할 일이지요.
 
무엇이든 한다면 하는 분당반님들 건강한 모습으로 가을에 만나시게요~~~
저도 자작나무 숲에 여름의 찌꺼기들 털어버리고 오겠습니다.

이여헌   14-08-14 10:06
    
오호!! 쭉쭉 뻗은 자작나무 숲을 ...
수고 많으신 박 반장 몸과 마음 릴렉스한 여행되시길 빕니다.
     
박서영   14-08-15 22:07
    
만년소녀. 이여헌샘  여름 막바지 잘 보내시고 스카프 휘날리며 가을에 만나시게요.
  최석의 흔적도 찾아보고 올께요. 감사요.
공해진   14-08-14 15:21
    
조선의 천재 작가.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애긍의 인물인가.
교묘하게 이용당했던 그는 허물어가던 암흑기의 문약한 글쟁이인가.
아무튼
세상은 오히려 간단한 거
삘기로 물방울 쌈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큰 물방울은 작은 물방을
낚아채듯 송두리째 빼앗으니까요.
평형추를 잃으면서 순간적으로 무너졌으리라.

울 쌤,
뜨거운 여름은 지났습니다.
건강 잘 지키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화용   14-08-15 07:43
    
쌤,  "평형추를 잃으면서 순간적으로 무너졌으리라." 
이 말이 참 서럽네요.
하지만 무너져버리는 것도 용기일지 몰라요.
때로 힘겨운 것을 안간힘을 다해 꼭 움켜쥐는 것이 더 안스럽지요.
그 무너짐에서 춘원의 문학이 나왔겠지요.
이화용   14-08-15 07:35
    
뜨거운 여름이 다 지났다, 이 말이
마치 떠나보내기 싫은 벗이 가버렸듯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정수리를 달구던 열기가 좀 더 계속되고 여름이 가야 합니다.
그것은 그 열기로 익혀야 할 것들이 아직 날 것 그대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친일 문인이라는 낙인 그리고 신여성 허영숙과의 연애가
춘원의 문학적 업적을 가려버린 것은 우리의 왜곡된 눈이기도 하겠지요.
너무 어렸을 때 춘원의 작품들을 그저 건성건성 이야기로만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원도 많이 가난했네요.
돈이 궁해 이리저리 기웃대며 타국땅에서 방도를 모색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월급도 못 받았다는데 어찌 살았는지,
잠은 어디서 잤을까? 찜질방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추위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할텐데....
이래저래 그에게 적잖은 부채감을 느낍니다.
     
공해진   14-08-15 13:18
    
화용쌤,
그의 삶을 정말 모릅니다.
제가 평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구요.
뼛속 삶은 더욱 그렇고요.
다만, 단애의 시절에
그 흔하디흔한 한바가지 물로는 삶의 허기를 채우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해봅니다.
”어찌 살았는지,“
     
박서영   14-08-15 22:15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선인들에 대한 부채감.
오늘 늦둥이 조카와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에서도 숙연하게 느꼈던 부분이네요.
 그곳에서 춘원에게도 도움을 주웠던 이 강선생의 함자가 왜 그리 반갑던지요.
 안중근 의사께도 영향과 도움을 주셨더라구요.
딴나라 문학도 재미.유익하지만 중,고시절 건성으로 배웠던 우리 문학사를 깊이 다시 공부하고픈 희망사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