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속의 호랑이 / 최정례
나는 지금 두 손 들고 서있는 거라
뜨거운 폭탄을 안고 있는 거라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머리가 지글거리고 돌밭이 지글거리고, 호랑이 눈깔 타들어가다 못해 슬몃 뒤돌아 가버렸던 거라, 그래
전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할머니 눈물 돌밭에 굴러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러다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호랑이를 만난 것이라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이젠 없다 없다 없다는데도
나는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해도
――머리통 염통 콩팥 다 내놓으시지
――내장도 마저 꺼내 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와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빨강 신호등 앞에서 정지해 있는 2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금 전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를 생각하거나
이제 곧 만날 모임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건너편 신호등의 빨강불을 보며 호랑이 눈을 떠올리고
호랑이로부터 송아지를 지켰던 할머니의 전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왜 초조한 걸까요?
용감했던 할머니의 증손녀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여차하면 급출발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속페달에 올려놓은 발을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한마디에 내려놓고,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팔도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묵직한 저음 한 방에 제압당하고 맙니다.
이제 더는 내어줄 것도 없다며 통사정 하는데도
머리통 염통 콩팥 내장까지 마저 꺼내 놓으라고 협박하는데
아마 시인은 갈 길은 멀리 있고 꽉 막힌 도로에서
애간장이 다 녹아 내렸던 모양입니다.
신호등을 보면서 호랑이 눈을 연상한 시인의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개 / 조동범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
붉게 걸린 신호등이 개의 눈동자에 담기는
평화로운 오후 부풀어 오른 개의 동공 위로 물결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를 담은 개의 눈동자는 이승의 마지막 모퉁이를 더듬고 있다.
개의 눈 속으로 건너려고 했던 저편
막다른 골목의 끝이 담긴다.
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감는다.
골목의 끝이 개의 눈 속으로 사라진다.
출렁이는 어둠 속으로 물결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납작하게 사라지는 개의 죽음 속으로
길을 건너려던 개는 아마도 빨강 신호등을 무시했나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개의 눈이 서서히 감기는데
그 눈 속으로 풍경들이 담겼다가 사라집니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말이지요.
신호등에 관련된 시 두 편을 공부하면서
기다림이란 말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호가 바꿔지는 데는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흘러가야 하지만
늘 우리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초조감은 더 늘어났고 급해졌습니다.
그냥 가도 되는 푸른 신호등은 글감이 되지 않지만
멈춰서 기다려야 하는 빨강 신호등은 글감이 됩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 모습, 행위 등을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박래순샘이 맛있는 시루떡을 간식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아마도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컴백 기념인 것 같네요.
전 50권 중 거꾸로 읽기 시작하여 이제 제42권을 읽었습니다.
이인성, 장정일, 최수철, 이승우, 박상우, 정찬의 쉽지 않은 소설들이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치밀하고 꽉 짜여져 있으며
비유와 은유, 사유가 가득한 단편들을 통해
우리도 깊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달라질 우리 사색의 장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입니다.
이 비가 그치면 그 곱던 벚꽃도 서서히 사라지겠지요?
차분한 마음으로 4월의 중순을 맞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