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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에 관한 시 두 편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5-04-13 22:49    조회 : 4,629


햇빛속의 호랑이 / 최정례

    

나는 지금 두 손 들고 서있는 거라

뜨거운 폭탄을 안고 있는 거라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머리가 지글거리고 돌밭이 지글거리고, 호랑이 눈깔 타들어가다 못해 슬몃 뒤돌아 가버렸던 거라, 그래

전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할머니 눈물 돌밭에 굴러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러다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호랑이를 만난 것이라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이젠 없다 없다 없다는데도

나는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해도

 

――머리통 염통 콩팥 다 내놓으시지

――내장도 마저 꺼내 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와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빨강 신호등 앞에서 정지해 있는 2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금 전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를 생각하거나

이제 곧 만날 모임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건너편 신호등의 빨강불을 보며 호랑이 눈을 떠올리고

호랑이로부터 송아지를 지켰던 할머니의 전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왜 초조한 걸까요?

용감했던 할머니의 증손녀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여차하면 급출발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속페달에 올려놓은 발을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한마디에 내려놓고,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팔도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묵직한 저음 한 방에 제압당하고 맙니다.

이제 더는 내어줄 것도 없다며 통사정 하는데도

머리통 염통 콩팥 내장까지 마저 꺼내 놓으라고 협박하는데

아마 시인은 갈 길은 멀리 있고 꽉 막힌 도로에서

애간장이 다 녹아 내렸던 모양입니다.

신호등을 보면서 호랑이 눈을 연상한 시인의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 조동범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

붉게 걸린 신호등이 개의 눈동자에 담기는

평화로운 오후 부풀어 오른 개의 동공 위로 물결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를 담은 개의 눈동자는 이승의 마지막 모퉁이를 더듬고 있다.

개의 눈 속으로 건너려고 했던 저편

막다른 골목의 끝이 담긴다.

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감는다.

골목의 끝이 개의 눈 속으로 사라진다.

출렁이는 어둠 속으로 물결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납작하게 사라지는 개의 죽음 속으로



길을 건너려던 개는 아마도 빨강 신호등을 무시했나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개의 눈이 서서히 감기는데

그 눈 속으로 풍경들이 담겼다가 사라집니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말이지요.

 

 

신호등에 관련된 시 두 편을 공부하면서

기다림이란 말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호가 바꿔지는 데는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흘러가야 하지만

늘 우리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초조감은 더 늘어났고 급해졌습니다.

그냥 가도 되는 푸른 신호등은 글감이 되지 않지만

멈춰서 기다려야 하는 빨강 신호등은 글감이 됩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 모습, 행위 등을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박래순샘이 맛있는 시루떡을 간식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아마도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컴백 기념인 것 같네요.

50권 중 거꾸로 읽기 시작하여 이제 제42권을 읽었습니다.

이인성, 장정일, 최수철, 이승우, 박상우, 정찬의 쉽지 않은 소설들이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치밀하고 꽉 짜여져 있으며

비유와 은유, 사유가 가득한 단편들을 통해

우리도 깊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달라질 우리 사색의 장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입니다.

이 비가 그치면 그 곱던 벚꽃도 서서히 사라지겠지요?

차분한 마음으로 4월의 중순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최영자   15-04-13 23:56
    
이 비를 데리고 오느라고 오전에 바람이 그렇게 불었나봅니다.
만개한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바람이 멈추는 곳곳에 분홍빛 꽃눈이 소복이 쌓이더군요. 

봄이 왔다고, 마른 가지에 꽃망울이 피었다고, 드디어 만개 했다고  오고가는 길에 경이로운 눈길을 주었는데...
바닥에 나뒹긴 목련, 벚꽃을 보며 봄이 소리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네요.

단비가 내려 반갑습니다.
지난 주말에 남편과 아버님은 땅을 파서  밭두렁을 다듬고 , 나와 어머니는 깨씨를 뿌렸지요.
이 비 그치면 무거운 흙을 비집고 움틀거리며 올라올 새싹들이 눈에 그려집니다.

처음 어머니 따라 깨씨를 뿌리던 날,
얘야, 한구멍에 서너개씩만 넣어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에 대답은 시원스레 했는데.
1주일 뒤 밭에 나갔다가  한웅큼씩 솟아 오른 새싹들을 보며 어찌나 당황 했던지~ (서너개가 아니라 열넷개씩 집어 넣었던 것)
그 때 깨달았지요.  씨는 뿌린 만큼 거두는 거구나. ㅎㅎ

반장님. 후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한지황   15-04-14 09:28
    
어제부터 내린 비는 오늘도 변함없이 대지를 적시고 있네요.   
그동안의 가뭄이 이번 비로 해갈되겠지요?
여전히 영자샘은 자연 속에서 세월을 엮어 가시는군요.
봄이 오면 어김없이 씨를 뿌리고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 그 작은 씨가 푸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도 몸소 체험으로 터득하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성취감도 느끼고......
건강하고 부지런하신 시부모님도 정겹습니다.
아름다운 패밀리의 씨뿌리는 모습이 밀레의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김선희   15-04-14 17:29
    
후기들이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오는 마당을 보며 청량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내려주는 비님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반장님 후기 쓰시느라 늘 고생이 많으십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어제박래순샘의  맛있는 시루떡도 감사드리구요.
좋은 글 많이 읽고 시도 감상하고 늘 그렇듯 재밌는 분위기였어요.
일산반 샘들의 글도 단비처럼 계속 쏟아졌으면 합니다.^^
     
한지황   15-04-14 22:37
    
온종일 내리는 빗속을 걸었습니다.
적당히 내리는 비는 우산을 든 채 걷는 나에게 아직 생명이 남아있는 벚꽃감상을 더 운치있게 해주었지요.
아래를 내려다보는 낮은 가지들에 매달린 벚꽃은 우리들과 이야기를 하고싶어하는 것 같아 얼굴을  가까이 대보았습니다.
비록 짧은 생명으로 살다가지만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가는 꽃들에게 내 사랑도 전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연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하는 헤이리 선희샘이 그래서 더욱 행복해 보입니다.
진미경   15-04-15 23:41
    
신호등에 관한 시 두 편을 복습으로 다시 읽으니 더 생생합니다.
특히 최정례 시인의 상상력은 남다르네요. 전설의 증조 할머니와는 다르게
운전대를 잡은 그녀는 초초합니다. 2분 안에 빨간 신호등이 호랑이 눈으로 다가왔네요.
작년 봄에 본 영화 레바논 감정은 최정례 시인의 시집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해요.
삶의 의지를 잃은 남자와 살고자 몸부림치는 여자 , 그리고 이들을 쫓는 의문의 남자가
얽히고 설키면서 불안정,공포,슬픔이 흐릅니다.
레바논은 어떤 곳인가?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슬픔, 분노, 공포를 통해 어떻게 사느냐의
해답을 찾아갑니다.
두 시간 내내 강원도의 눈덮힌 풍경이 화면 가득해서 인상적이었고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해서 죽어가는 개의 눈 ....
슬로우비디오처럼 비극이 처리되네요.

다음 주가 기다려집니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틈을 내어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 순간이 참 좋습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한지황   15-04-16 06:55
    
레바논 감정을 보면서 제목의 의미가무엇일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정례 시인의  시집제목었네요.
늘  탐색하고 정보를 공유해주는 미경샘 덕분에 또 배웁니다.
독토 덕분에 무조건 책을 읽어가다보니 우리가 함께 읽은 책들이  많아졌어요.
차곡차곡 쌓아가면 그  높이가 어디까지 갈지 상상만 해도 신이 납니다.
일산 김선희   15-04-16 21:25
    
'토지' 읽기를 끝내고 20세기 한국소설 42권을 접했을때 좀 난감했었읍니다
이인성 작가의  '길, 한 이십 년'을 읽는데 도대체 책장이 넘어가지를 않더군요
몸살이 나서 집중이 안돼 그러겠지 생각하고 며칠 후 다시 시도 했으나 마찮가지 ㅠ
근데 저만 그런건 아니란 걸 알고 다행이다 싶었읍니다

요즘 짬짬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월요일 정든 샘님들과의 독토시간도 기다려집니다
이렇게 매주 올려주시는 반장님의 후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남은 주말 가족과 봄을 만끽하시고 월요일 화사해진 모습으로 다시 뵈요
     
한지황   15-04-16 22:26
    
장편소설 토지와는 또 다른 매력의 창비 20세기 한국 단편들  중  하필 가장 어렵다는 이인성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으니 선희샘의 당혹감이  상상됩니다.
우리 스승님까지도 인정하신 난해한 소설!
그 밖의 작품은 그나마 좀 나아서 열심히 읽어왔으니 앞으로도 큰 무리는없을거에요.ㅎ
다양한 작가들의 색다른 시선과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단편  읽기 도전!
그만큼 나눌 이야기도 많겠지요.
점점 독토가 재미나고 기다려지는 까닭이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