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 주 강의실은 봄바람이 완연했습니다.
한결 화사해진 회원님들의 옷차림뿐이 아니라
박인숙님과 유정주님을 뺀 전원이 참석하여
왁자지껄 했지요.
늦게 온 지연님이 살짝 들어오려다 자리가 없는 듯하여
쉬는 시간까지 기다리겠다는 지연님의 카톡에
얼른 쉬는 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득한 학생들을 쳐다보며 스승님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고
어느 때보다도 활기 넘치는 시간이 이어어졌지요.
여러분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나요?
55세부터 65세 더 나아가서는 70세까지 확장된 신 중년들에게
꼭 필요한 과제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스승님은 해외여행을 뽑으셨습니다.
그동안 가까운 아시아쪽만 다니셨다는 스승님은
자비로 유럽 여행을 하시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바람은 시집을 더 내시는 것
그리고 특별한 요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음식에 관한 시를 꼽아보면 적지 않다는 스승님은
집으로 찾아온 손님에게 손수 만든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 하셨지요.
밥알/ 이재무
갓 지어 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이 짧은 시는
밥알을 통하여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요.처음 만나 잘 나갈 때는 서로 없어서는 못 살 것 같이 하다
힘없어지고 별 볼일 없게 되면 찬밥 신세가 되는
일상적 사람들의 서글픈 모습이 엿보입니다.
수제비 / 이재무
수제비 어찌나 칼칼, 얼얼한지
한 숟갈 퍼올릴 때마다
이마에 콧잔등에 송송 돋던 땀
한 양푼 다 비우고 난 뒤
옷섶 열어 설렁설렁 바람 들이면
몸도 마음도 산그늘처럼
서늘히 개운해지던 것을
살비듬 같은 진눈깨비 흩뿌려
까닭 없이 울컥, 옛날이 간절해지면
처마 낮은 집 찾아들어가 마주하는,
뽀얀 김 속 낮달처럼 우련한 얼굴
구시렁구시렁 들려오는
그날의 지청구에 장단 맞춰
야들야들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肉)
훌쩍훌쩍 삼키며 목메는 얼큰한 사랑
우련하다는 것은 보일 듯 말 듯 하다는 뜻입니다.
음식 소재로만 쓴 시집에 실을 시 청탁을 받은
시인은 칼국수를 더 좋아하여 그에 관한 시를 쓰려 했지만
이미 다른 시인이 썼다는 것을 알았지요.
수제비로 바꾼 시인은 사전부터 뒤적여 보았습니다.
칼국수는 여름에 수제비는 겨울에 어울리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은
진눈깨비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엄마의 눈물이 간이 되었던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수 / 이재무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꿇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아내가 집을 나가면 소소한 일상사가 그렇듯이 먹는 것이 제일 걱정이지요.
화가 나서 집을 나간 아내가 여행이나 외출 할 때처럼
밥상을 차려놓거나 밑반찬을 만들어놓지 않습니다.
아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아들과 겸상하여 국수를 먹는 시인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라면을 끓이다 / 이재무
늦은 밤 투덜대는 ,집요한 허기 달래기 위해
신경 가파른 아내의 눈치를 피해
주방에 간다 입 다움 사기그릇들
그러나 놈들의 침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자극보다 반응이 훨씬 더 큰 놈들이다
물을 끓인다 비정구직 노동자처럼 실업을
사는 날이 더 많은 헌 냄비는 자부가 가득한
표정이다 물 끓는 소리 요란하다
한여름 밤의 개구리소리 같다
모든 고요속에는 저렇듯 호들갑스런 소음이
숨어있다 어제 들린 숲 속 직립의 시간을 사는
침묵수행의 나무들도 기실은 제 안에
저도 모르는 소리를 감추고 있을 것이다
찬장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낸다
라면의 표정은 딱딱하고 작이 져 있다
그들이 짠 스크럼의 대오는 아주 견고하고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끓는 물 속에서
그들은 금세 표정을 바꿔
각자 따로 놀며 흐물흐물 녹아 내릴 것이다
저 급격한 표정변화는 우리시대의 슬픈 기표다
얼마 후 나는 저 비굴 한 사발로 허겁지겁
배를 채울 것이다
도마 위 양파 ,호박 ,파등을속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칼을 집는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자다 그의 눈빛은 매섭고
날카롭다 그는 세상을 나누기 위해 나타난 자인 것이다
놓여진 것들을 다 자르고도 성이 안찬 노여운 그는
늦은 밤을 이기지 못한 내 불결한 식욕을, 지난한
허기의 관성을 푹 찔러올는지 모른다
냄비 속 부글부글 끓는 것은 그러므로 라면만은 아닌
것이다
끓기 전과 끓고 난 후의 모양이 확연히 라면에 대한
묘사와 사색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기표와도 같은 라면을 두고 시인은
사이좋게 지내던 회사 동료들도 감원이라는 위기가 찾아오면
남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읊어냈습니다.
스승님의 버킷리스트가 꼭 실현되기를 빌어봅니다.
어느 날 스승님이 맛있게 끓여주신
따스한 국수 한 그릇을 먹어볼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드디어 토지 21권을 끝내고 팥시루떡으로 책거리를 했습니다.
헤이리 김선희님이 가져오신 한라봉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창비 현대소설 42권으로 이어집니다.
그동안 참여 못하시고 토지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분들의 합류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