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 문우들은 4월 9일(목)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관람하고 봄꽃 맞이 남산 공원을 산책하기로 계획하였는데, 학교 측에서 부활절로 인해 4월 2일은 휴강한다는 연락이 왔다. 4월 9일 계획을 수업이 없는 4월 2일로 앞당기자고 긴급 공지를 띄웠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시간에 봄나들이 핑계로 역사탐방 가자고 제안한 것이 눈치가 보였는데 수업시간을 빼먹지 않고도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1970년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남산공원에 세워졌다. 40년이 지나 낡고 규모가 작아 순국 100주년인 2010년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금에 의해 재건축하여 최우수 건축상을 받은 기념관이다. 입구에는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감옥에서 쓰신 유묵 내용을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새긴 비석 군이 있었다. 문우들은 안중근 의사와 악수를 하려는 듯 단지한 손도장에 자기의 손을 포갠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안중근 의사의 약 2층 높이의 거대한 좌상 앞에는 순국 105주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하얀 조화가 시들어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맞이한다. 안중근의사와 순국선열들에 묵념을 하는 문우들의 모습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기념관의 정하철 상무와 김지형 큐레이터의 세련된 설명과 동영상으로 약 2시간에 걸쳐 살펴보았다. 문우들의 반응은 “안중근 의사는 교육가이고 사상가이며 전략가이다. 행동하는 지성인이며 평화론 자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안 의사 순국 후 입을 수의를 한 땀 한 땀 공들여 지으신 어머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지”, 문우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역사를 같은 감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단다. 현금자 선생님은 모임의 친구들을 데리고 기념관에 다시 오시겠단다.
조정희 문우의 솔직한 소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안중근 의사의 나이 31세에 어떻게 그런 큰 뜻을 품을 수 있었는지”, “윤봉길 의사가 25살에 순국하였다는······,, “구한말 역사와 안중근 의사의 손가락이 왜 짧은지,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는 것이 미안하다.” 17년간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였기에 이해하는데도 연신 ‘미안하다’고 되뇌는 것은 애국심의 발로發露이다.
어느 언론 매체가 명동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안중근 의사義士를 아느냐?“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응답자 중 80%가 ”의사(Doctor 醫師)냐?”고 되물었단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사형 선고한 날이기도 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이 사형선고한 날이 뭐 중요하냐”며 “안중근을 너무 띄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니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중략~”는 가르침을 두 동생을 통하여 전언傳言 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국제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내린 일본에 항소 하지 않은 의미를 우리의 식어진 가슴에 뜨겁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기억은 찰나의 매 순간을 잘 찍은 필름처럼 저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억과 망각이라는 선택이 작용한다. 우리는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조국의 국경일과 기념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하는가보다 무엇을 쉽게 잊고 애써 덮으려 하는가 하는 선택에 따라 사람의 인격과 사회의 성격이 갈린다.“라고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은 말한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이념과 종교로 이용되거나 잊혀 지면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정신을 되새김질 하는 문우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어려운 조국의 현실을 감안 할 때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경계를 아는 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만 한 곳이 없다.
기념관을 돌아 나오며 봄꽃의 유혹은 다 잊은 채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의 희생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미안하고 빚을 진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념관 방문을 주선한 이로써 괜한 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봄비에 씻겨 내린다.
추신; 하늘도 긴 가뭄에 지친 시름을 덜어내라는 듯 비를 뿌리고, 강정자 선생의 4월 등단 축하파티와 현금자·제기영 선생의 생일 축하 케이크 자르던 날이기도 한 풍성한 하루였다.
좌로부터 심혜자 총무, 제기영, 강진후 반장, 현금자, 강정자, 배경애, 김창식 교수, 김순자, 조정희, 박도원, 이용훈(사진 찍느라 ㅋ~) 존칭 생략하였으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