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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 수필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후기    
글쓴이 : 이용훈    15-04-06 12:51    조회 : 5,149
서강 수필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후기
 
 이용훈
 
  서강 문우들은 4월 9일(목)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관람하고 봄꽃 맞이 남산 공원을 산책하기로 계획하였는데, 학교 측에서 부활절로 인해 4월 2일은 휴강한다는 연락이 왔다. 4월 9일 계획을 수업이 없는 4월 2일로 앞당기자고 긴급 공지를 띄웠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시간에 봄나들이 핑계로 역사탐방 가자고 제안한 것이 눈치가 보였는데 수업시간을 빼먹지 않고도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1970년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남산공원에 세워졌다. 40년이 지나 낡고 규모가 작아 순국 100주년인 2010년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금에 의해 재건축하여 최우수 건축상을 받은 기념관이다. 입구에는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감옥에서 쓰신 유묵 내용을 오석烏石에 음각으로 새긴 비석 군이 있었다. 문우들은 안중근 의사와 악수를 하려는 듯 단지한 손도장에 자기의 손을 포갠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안중근 의사의 약 2층 높이의 거대한 좌상 앞에는 순국 105주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하얀 조화가 시들어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맞이한다. 안중근의사와 순국선열들에 묵념을 하는 문우들의 모습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기념관의 정하철 상무와 김지형 큐레이터의 세련된 설명과 동영상으로 약 2시간에 걸쳐 살펴보았다. 문우들의 반응은 “안중근 의사는 교육가이고 사상가이며 전략가이다. 행동하는 지성인이며 평화론 자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안 의사 순국 후 입을 수의를 한 땀 한 땀 공들여 지으신 어머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지”, 문우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역사를 같은 감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단다. 현금자 선생님은 모임의 친구들을 데리고 기념관에 다시 오시겠단다.
  조정희 문우의 솔직한 소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안중근 의사의 나이 31세에 어떻게 그런 큰 뜻을 품을 수 있었는지”, “윤봉길 의사가 25살에 순국하였다는······,, “구한말 역사와 안중근 의사의 손가락이 왜 짧은지,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는 것이 미안하다.” 17년간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였기에 이해하는데도 연신 ‘미안하다’고 되뇌는 것은 애국심의 발로發露이다.
  어느 언론 매체가 명동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안중근 의사義士를 아느냐?“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응답자 중 80%가 ”의사(Doctor 醫師)냐?”고 되물었단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사형 선고한 날이기도 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이 사형선고한 날이 뭐 중요하냐”며 “안중근을 너무 띄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니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중략~”는 가르침을 두 동생을 통하여 전언傳言 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국제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내린 일본에 항소 하지 않은 의미를 우리의 식어진 가슴에 뜨겁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기억은 찰나의 매 순간을 잘 찍은 필름처럼 저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억과 망각이라는 선택이 작용한다. 우리는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조국의 국경일과 기념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하는가보다 무엇을 쉽게 잊고 애써 덮으려 하는가 하는 선택에 따라 사람의 인격과 사회의 성격이 갈린다.“라고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은 말한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이념과 종교로 이용되거나 잊혀 지면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정신을 되새김질 하는 문우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어려운 조국의 현실을 감안 할 때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경계를 아는 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만 한 곳이 없다.
  기념관을 돌아 나오며 봄꽃의 유혹은 다 잊은 채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의 희생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미안하고 빚을 진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념관 방문을 주선한 이로써 괜한 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봄비에 씻겨 내린다.
 
  추신; 하늘도 긴 가뭄에 지친 시름을 덜어내라는 듯 비를 뿌리고, 강정자 선생의 4월 등단 축하파티와 현금자·제기영 선생의 생일 축하 케이크 자르던 날이기도 한 풍성한 하루였다.
 
좌로부터 심혜자 총무, 제기영, 강진후 반장, 현금자, 강정자, 배경애, 김창식 교수, 김순자, 조정희,  박도원, 이용훈(사진 찍느라 ㅋ~) 존칭 생략하였으니 양해 바랍니다.
 


 

 

 

 


제기영   15-04-06 14:56
    
이회장님, 그 날의 감동이 생생히 떠 오를 정도로 후기 정리가 실감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제가 예전에 이문열의 '불멸'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념관 상무님께 확인했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그러셔서
간략히 요약합니다: 김구가 수천명의 동학군을 이끄는 접주로서 다른 동학군 부대와 함께 해주성을
공격할 때에, 안중근과 아버지인 안태훈은 관군의 지원군으로서 동학군 토벌에 참가 하게 됩니다. 다행히
공격과 수비하는 성문이 달라 마주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동학군이 패하고 김구가 쫒기는 신세가
되었는데, 안중근의 아버지인 안태훈이 김구를 자신의 집에서 몇달간 피신을 시켜주었다는군요.
이 몇개월간 김구와 안중근은 한집에서 머물게 되었지만, 집이 너무 커서 그런지 두 사람간의
교류는 크게 없었다고 합니다. 안중근의사 의거후 안중근의 동생들은 중국으로 가 김구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되고, 김구의 아들과 안정근(안중근의 동생)의 딸이 혼인하는 관계까지 맺었다고
하네요. 참, 대단한 인연이지요.
이용훈   15-04-06 15:05
    
그렇습니다. 서양 역사에도  해박하시고 배울 점이 많은 제선생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 3개월간인가 김구선생을 안중근 의사 아버지이신 안태훈선생이 숨겨 주었습니다. 효장 공원의 안중근 의사 가묘도 김구선생이 추진 하였답니다.
심혜자   15-04-06 15:31
    
그날 참 가슴이 먹먹했지요.
역사를 너무 모르고 감사하게 생각 하지 않고 살아왔던 날들을 반성 해보기도 하구요.
안중근의사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역시 위대한 어머니가 계시기에 위대한 아들이 있구나 생각해 보며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지..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등 많은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많을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심혜자   15-04-06 15:32
    
저에게 회장님 계신 사진 있었는데..
게으름 피운다고 사진을 전하지 못하였어요~ㅎ
조정희   15-04-06 15:37
    
위 사진 속 안중근 의사 동상 뒤에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도 소나무들이 있습니다.  남산에는 소나무가 참  많습니다.  소나무는 비바람 강추위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그 푸르른 절개와 충절을 잃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성삼문이 단종 복위를 꾀하려다 실패하고 죽임을 당할 때 읊은 시조 " 낙락장송 되었다가  ~  독야청청하리라"를 아시나요?  세상이 다 세조를 섬기더라도 자신만은 남산 위에 우뚝 솟은 소나무처럼 단종만을 받들어 절개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남산에 독립운동가 동상이 특히 많습니다.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이시영 선생등 일제강점기에 조선신궁이 있던 곳으로서,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애국가 2절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남산의 소나무는 그냥 소나무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이 나라를 지킨 나무 의사 입니다.

제가 지금 쓰고있는 글이 '소나무와 아버지' 입니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글 속에 조금이라도 넣게되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생일을 기억하려고  소책자 '안중근의사의 삶과 나라사랑 이야기' 살펴보니 생일이 다르게 적혀있습니다.  책커버에는 1879년 9월 2일 이고 페이지 15에는 1879년 7월 16일로 되어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는 9월 2일로 적혀있었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달력에 서강문우들의 생일과 함께 마크해두었다가 그 날 하루라도 기념하게요.
신현순   15-04-06 16:07
    
회장님, 제선생님' 모두 어마무시한 분들이네요~ 역사에 무지함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래된 과거에서도 찾는다고 합니다.
두 분을 통해 역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회장님~ 후기를 통해 흩어진 기억 다시 정비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용훈   15-04-07 17:36
    
댓글 달아 주시는 분들이 애국자이십니다. 안중근 의사 생신은 음력 1879년 9월2일입니다. 안응칠 자서전에 양력으로 7월16일인데 당시에는 음력으로 사용되어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는 음력9월2일에 기념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약 150~200여명이 매년 9월 첫째주 토요일에 생신일을 기념 하고 있어 한국에서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서강반에서도 하시겠다니 큰 힘이 됩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답사를 다닌지 30여년, 대동아 전쟁시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하려고 상처낸  소나무들이 아직도 아물지 못한채  조국의 산천을 물끄러니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애환을 같이 한 소나무 한그루에도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강진후   15-04-09 04:36
    
그날따라서 오전 일과가 있었던 관계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불은색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저를 부끄럽게 하네요. 안중근선생님 어머님의 그 말씀에 가슴이 찡하고 울컥 했습니다. 이용훈 회장님 덕분에 서강 문우님들과 함께 애국심을 고취할수있는 시간을 갖어본것에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역사 없는 민족이 없다.고 하듯이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현장 체험 학습으로 정규 수업 시간으로 교육할수있는 프로그램이 짜여진다면 좀 더 역사에 관심을 심어 줄 수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요즘 저도 초등학교 3~4학년 대상으로 은평구에 대한 역사문화 해설수업을 현장으로 직접 돌면서 눈과 귀로 자료집을 나누어주고 하는 시간을 어린이들 오전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도 반복해서 물어보고 주입시켜 하나라도 정확하게 알고 보낼때 보람을 느낌니다.
  안중근 의사의 삶에서 그렇듯 젊은 나이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민족의 갈림길의 전부였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가슴 찡하고 의미 깊은 역사 탐방과 강정자선생님의 등단축하와 제선생님 현선생님의 생신 축하 파티까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김혜자   15-04-10 22:58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탐방하셨네요.

이용훈선생님
사진만 잘 찍으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신인작가상 소감과 각오가 남달라 감명을 받았는데,
소나무 한 그루에 대한 관심에도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이 참 고맙습니다.

강진후선생님
지난 해 객주문학관에서의 선생님의 노래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사 없는 민족이 없다'
초등학생들에게  역사문화 해설 하시나봐요. 그 일에 보람을 느낀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역사박물관 도슨트와 경복궁 길라잡이 하고 있거든요.

서강대반 모두 같이 우리 역사를 알아가는 모습이
부럽고 보기 좋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용훈   15-04-14 11:32
    
김혜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에게는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 있습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서강반 문우님들은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다름을 알 수 있는 탐방이었습니다. 다음에 정기적으로 가자는 건의가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속하신 반에서도 한번 시도해보십시오.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우리의 민족 문화와 정신이 일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지만 되찾아 가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 됩니다.  김혜자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있어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