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온 천지는 봄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자연을 소재로 글쓰기 좋은 계절이지요.
전경화의 법칙에 의거하여 감각적인 묘사를 쓰면 됩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들은 큰일을 합니다.
여의도의 윤중로만 하더라도 만개한 벚꽃 축제로
생계에 허덕이는 상인들의 반년 치 먹거리를 제공하니까요.
이런 발상이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폭포/ 손택수
벚꽃이 진다 피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이 절벽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아버린 자들, 가지마다 층층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린다
안에서 바깥으로 화르르
자신을 무너뜨리는 나무,
자신을 무너뜨린 뒤에야
절벽을 하얗게 쓰다듬으며 떨어져 내리는
저 소리없는 폭포
벚꽃나무 아래 들어
귀가 얼얼하도록 매를 맞는다
폭포수 아래 득음을 꿈꾸던 옛자객처럼
머리를 짜개버릴 듯 쏟아져내리는
꽃의 낙차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벚꽃을 소재로 재미있는 시를 썼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뛰어내린다는 의인화와 함께
하얀 색깔의 벚꽃이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마치 물이 쏟아지는 폭포에 비유를 했지요.
나비/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나비의 날개짓을 째크나이프에 비유한 것이 놀랍습니다.
빠르고 순간적인 모습을 통해
사물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비유를 했지요.
나비와 강철은 전혀 다르지만
대단한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여유만만하지만 잡히지 않는 나비에게서
도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유히 흘러다닌다는 표현은
물이 흐르듯 한다는 기막힌 시적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감각성입니다.
시를 다독하면 언어의 감각성이 개발됩니다.
우리에게는 천재로 보이는 시인님도
처음부터 능숙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니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시를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마지막 행의 지갑은 꿀을 비유한 것으로
역시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꽃들의 등급 / 이재무
어떤 꽃들은,
영화처럼 관람 등급 매겨야 하지 않을까
불온한 생각 불쑥 들게 할 때가 있다
백합 장미 칸나 아카시아 목련 같은
꽃들은 확실히 풍기 문란 혐의 같은 게 있다
가령 볕 좋은 유월 한낮
공중으로 번지는 향기 파문에
향 보라 일으키며 질주해온 한 떼의 벌들
거침없이, 아카시아
속치마 속 파고드는 행위를 보라
사행 부추기고 조장하는 관능들
철철 흘러넘쳐 하도 아찔해서
마음 발갛게 발기시킬뿐더러
몰두하는 현재의 일 무용하다는 것
일순간 환하게 드러낸 뒤
맹목의 벼랑으로 몸 부추겨 몰아가는 것을!
그러나 나는 이미 지천명을 넘긴 사내
꽃과의 싸움에서 매번 불행하게도
아슬아슬 고비 넘겨 가까스로 이기는 것은
감성 쪽이 아니다
지루한 평화가 날마다 폐지처럼 쌓여간다
영화처럼 꽃에도 등급을 매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인의 발상이 재미있습니다.
아카시아는 19등급이라지요?
풍기문란한들 어떻습니까?
활짝 핀 꽃들로 세상은 아름다워지는 것을...
청보리밭 / 박이화
도루코 면도날이 지나간 자리처럼
잘 다듬어진 잔디밭은
내 발길을 머뭇거리게 하거나 돌려세우고 만다
거울 속 면도하는 남자처럼
그만의 얼굴에 빠져 있는 듯한 잔디밭은
어쩐지 다가서기도 건드리기도 불안하다
그러나 몇 날 며칠 깎지 않은 수염처럼
거칠고 꺼끌꺼끌한 보리밭을 지날 때면
옛 남자를 본 듯 반갑고 가슴뛴다
쓰다듬을 때마다 손바닥 따금따금 찌르는 수염은
그가 키운 억센 야성의 그리움 같아
와이셔츠 단추를 풀듯
개망초꽃 하나 둘 풀어헤치고
등에 풀물 베이도록 와락,그를 안고 싶어진다
그럴 때 바람은 거품같은 구름을 풀어
비탈 전체를 밀어버릴 듯 지나가겠지만
그럴수록 보리는 거웃처럼 무성하게 다시 일어설 테지
고랑마다 더 비리고 축축한 청보리 냄새 풍길 테지
예나 지금이나 짐승의 피를 나눈 것들은
이토록 후안무치해서
멀리 둥근 눈을 가진 새들마저
몰카처럼 찰칵찰칵 날아간다
무인모텔, 그 청보리밭 비탈에선
잔디밭은 깔끔한 남자와 같습니다.
그만의 얼굴에 빠져있음은 나르시즘으로 이 또한 깔끔함을 뜻합니다.
몇 날 며칠 깎지 않은 수염은 시인을 말합니다.
여름에 추수하는 보리는 겨울에 밟아야 잘 자라지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보리는 야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성적인 일반적 식물과는 다릅니다.
음의 식물인 보리는 여름에 먹어야 좋습니다.
무인 모텔은 절묘한 표현입니다.
무인 모텔의 원조인 보리밭은 4월이 최상이지요.
두부에 관하여 / 이재무
두부의 형상은 왜 둥그런 원이 아니고
각이 진 네모일까
네모가 아니라면 형태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
그러므로 저 흔한 네모는 의지가 아니다
물러터진 속성을 감추기 위한 허세다
언제든 흐물흐물 무너질 수 있는 네모
너무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네모
가까스로 네모를 유지한 채
행여 깨질까 조심스러운 네모
우스꽝스런 네모 장난 같은 네모
지가 진짜 네모인 줄 아는 네모
언제든 처참하게 으깨어질 수 있는 네모
둘러보면 그런 두부 같은 네모가 얼마나 많은가
네모진 것은 단단합니다.
동그라면 형태가 안 되기에 두부는 네모이지만
네모답지 않습니다.
콩깍지 시절, 콩 형제들은 꿈이 있었지요.
늘 콩깍지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튀어나와 봤자 가마솥에 넣어져서 한
몸으로 뭉개져 두부로 태어났습니다.
농촌 출신 시인도 서울에 올라와서 잘난 척을 하지만
결국은 동그란 콩에 불과합니다.
네모가 되어도 모질지 못해 물러터진 네모입니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 볼 틈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 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은 열흘 이상 필 수 없지요.
때 이르게 핀 것은 벌써 낙화입니다.
영원한 인생의 절정은 없습니다.
꽃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작년 봄엔 꽃들이 시차 없이 한꺼번에 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염려했었지요.
꽃들이 미리 보이는 징조가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후 세월호 참사는 일어났고 재앙을 암시한 콫들이 일제히 떨어지듯
꽃다운 청춘들도 한 번에 떠나갔습니다.
미신적인 요소가 있지만 시인은 꽃을 통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봄에 관한 시들을 공부라면서
의인화적 세계관을 가지면 글쓰기가 편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문체의 확장, 깊이, 아름다움은 시집 읽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시집을 끼고 살아야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많은 회원분들이 결석을 했습니다.
감기몸살과 여러 이유 등등으로 절반이 결석한 강의실은
바깥의 날씨처럼 썰렁한 듯 하였으나
다음 주 야외수업 때는 전원이 참석하여 단합의 힘을 북돋아보길 기대합니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