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교실
제10강 링컨과 남북전쟁
1.결혼까지의 링컨
소년시절 온갖 잡역. 9세때 어머니여윔. 계모와의 사이 좋음.
190cm의 장신에 힘도 셈. 점원하면서 출세. 손님에게 맞춤 상담.
계산착오는 퇴근후 찾아가서 바로 잡음. 지역에서 인심 얻음.
지역주민들이 보안관이나 관리보다 청년 링컨을 더 신뢰함.
빠른출세-> 25세에 주의회 당선->내리4선.
일리노이시절 여인숙집 딸 앤 러틀리지가 공식적인 첫사랑.
모든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미모의 부잣집 딸 매리 토드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
“만일 앤 러틀리지와 결혼했다면 십중팔구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2.노예문제의 전면부상
링컨은 변호사로 4선의 주의회 의원. 노예제에 인도주의적 원칙. 투사 아닌 온건파.
흑인 노예 스코트-자신이 자유인임을 인정해 달라 소송 제기.
연방 대법원-‘노예는 시민이 아니다’ 판결--그간의 모든 타협과 법률을 무시 한 것.
링컨이 먼저 제안해 일으킨 7차에 걸친 거물 더글러스와의 논쟁은 미국 정 치사의 주요 화제.
더글러스-링컨에게 과격한 색깔을 덧씌우기 위해 ‘흑인과 백인간 난혼“을 지지하는 과격파로 몰아 붙임. 일리노이 상원의원에 더글러스 당선. 링컨 패 배. 그러나 링컨은 노회한 더글러스와의 논쟁으로 명성을 얻어 공화당 대통 령 후보가 됨.
3. 링컨 대통령 당선
제16대 대통령 당선. 취임식도 하기전에 나라 분열 조짐. 뷰캐넌 대통령의 책임이 큼. (줄이은 연방정부 탈퇴, 조정이나 통합 전혀 못시킴. 탈퇴주끼리 남부 연합 결성)
대통령 취임사-“우리는 적이 아니고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감정은 비록 긴장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들 사랑의 유대가 끊겨서는 안됩니다”
4.남북전쟁 개전
1861.4.12.-13 남북전쟁 개시 알린 섬터요새 공격 명령.
갓 취임한 링컨이 보급품만 보내겠다고 하자 남부는 거절. 남북간 정치인들이 몇몇 타협안을 제기 했으나 실패. 전쟁 개시.
게티스버그 전투- 북과 남의 격전으로 남북전쟁의 전환
남부군 마지막 총사령관 로버트 에드워드 리장군의 대패.
5.게티스버그 연설
1863.11.19. 목요일 오후 국립묘지봉헌 링컨 연설. 300단어의 2-3분 스피치로 명연설.( 통치 역사 철학이 있다)
에버렛의 연설-2시간에 걸친 13607단어사용(해박한 지식에 할말이 너무 많음).
민주당- 혹평(멍청하고 평범한 일용잡부들이나 할 만한 연설)
공화당- “완벽한 보석”이라며 호평 일색.
6.남군 항복
7.링컨 재선과 죽음
1864. 링컨 대통령 재선.--이듬해 3.4 취임식-- 4.14 포드극장에서 피격.
범인은 카톨릭교도 배우 부스(유명배우집안의 둘째 아들)
--> 친 남부동맹 ‘골든 서클 기사단’활동.
누가 암살범인가--“부스는 예수회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의 심령을 부패시키고 그의 영혼을 파멸시킨후 그의 팔을 움직인자는 로마이다”(찰스 치니퀴의 주장)
수필반 풍경
이승종(수캐와 암코양이) 김혜자(마음의 감기) 문영일( 목욕탕에서)
송인자( 아들아 있어 보인다)를 합평했습니다.
글을 쓸 때 시비거리는 가능한 피해라.
경험은 소재,글감이다.
주제를 제대로 잡으면 군말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