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 이재무
저녁이 오면 도시는 냄새의 감옥이 된다
인사동이나 청진동, 충무로, 신림동,
청량리, 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
저녁의 통로를 걸어가보라
떼지어 몰려오고 떼지어 몰려가는
냄새의 폭주족
그들의 성정 몹시 사나워서
날선 입과 손톱으로
행인의 얼굴 할퀴고 공복을 차고
목덜미 물었다 뱉는다
냄새는 홀로 있을 때 은근하여
향기도 맛도 그윽해지는 것을,
냄새가 냄새를 만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다보면
때로 치명적인 독
저녁 6시, 나는 마비된 감각으로
냄새의 숲 사이 비틀비틀 걸어간다
냄새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시로 의인화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향기 나는 냄새는 번진다, 스며든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악취는 망치, 송곳이 되어 때리고 햘퀴고 멱살을 잡는다고 할 수 있지요.
냄새의 종류에 따라 묘사가 달라집니다.
이런 묘사를 해야지만 재미가 더해집니다.
알피니스트들/ 이재무
수압 높은 심해가 심해어의 터전이듯
가파른 벽이 생활의 문門인 이들이 있다
수직 움켜쥐고 기어오르며 한 땀,
한 땀 목숨 수놓는,
여름 한낮 들끓는 고요 속
지상의 낙지 족들은
한 방향에의 고집
등로에 충실할 뿐
애써 등정 고집하지 않는다
매순간 오르는 일이 아프고
아름다운 결실이므로 저, 필사의
몸짓들은 꿈의 실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해마다 마침표 없는 순환의
문장들 뜨겁게 써가고 있는,
바닥에서 기신하여 도정에서 마감하는,
시지프스 후예들이 쓴,
미완의 푸른 책 열어 숨차게 읽는다
하루하루의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시입니다.
소재는 수직의 벽을 한 땀 한 땀 올라가는 담쟁이입니다.
등정이 목표인 산악인들은 피곤합니다.
목표 지향성인 삶은 주변을 못 보고 앞만 봅니다.
그러나 담쟁이는 오르는 순간에 충실합니다.
그들에겐 등로가 중요합니다.
우리도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최종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평생에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대나무는 죽어서
바구니, 소쿠리, 퉁소가 되어 다시 태어납니다.
속이 비어있는 대나무는 언제나 절조의 표상입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절제와 정조가 약하기 때문이지요.
대나무는 집단으로 서식해서 뿌리가 얽히어 강해 보이지만
홀로 있으면 참새가 한 마리만 앉아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을 버렸기에 가능했습니다.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면 진실이 안 보입니다.
소는 살아 있을 때 노동력을 제공하고
죽어서도 부위별로 팔려나가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가죽은 북이 되어 죽어서도 맞으며 웁니다.
구두가 되어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때마다 일을 합니다.
대나무의 삶과 다르지 않지요
소음은 나의 노래/ 유홍준
소음은 나의 노래
소음은 나의 자장가
소음 없이 난 이제 하루도 못 살아!
도시로 나와 이십여 년, 소음굴 속에서만 살았다
소음 중독자가 되었다
태양인에서소음인으로 마침내 소음인으로 나의 체질은 바뀌었다
24시간 연중무휴 제지기계가 되어
고속으로 돌아가는 종이공장에서
소음 없이는 못 사는 이제
소음 없이는 못 자는 소음인
얼마 전에 고향에 갔다가 알았다
소음을 견디는 것보다
적막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소음 없는 고향은 견딜 수 없어
소음 없는 고향에선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어
하룻밤도 못 자고 나는 도망쳐 왔다
매음굴보다 더 지독한
나의 정든 소음굴 속으로
저 봄 언덕에 꽃이 피거나 말거나
저 가을 들판에 벼가 익거나 말거나
너 없이는 못 살아 정든 소음아
시끄러운 도시 생활이 싫어서 절간에 가서 쉬고 싶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막상 절에 가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감에 도리어 힘이 듭니다.
도시인은 이미 소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 시 역시 소음은 나쁜 것이라고만 여겨왔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린 시입니다.
고정관념 없애기는 글쓰기에서 작가가 꼭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굳어진 사고가 아닌 삐딱한 시선으로 보아야만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지요.
지하철 안에서도 늘 발견을 하시는 스승님은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놓으신다지요.
처음에는 유치했던 그 메모들이 여러 권의 시집으로 탄생하고
스승님은 다작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영자샘이 가져오신 한라봉의 향긋한 내음이 가득했던 강의실은
오늘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박인숙 샘과 김지연 샘만 가족 병간호로 빠지셨지요.
병간호로 애쓰시는 두 분께 응원을 보냅니다.
봄의 환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일산반님들 마음도 봄날처럼 밝고 따스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