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 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을 보내는 자리에서조차도
왁자지껄한 삶을 잘 묘사한 시입니다.
상가집에 모인 구두처럼 서로를 짓밟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죽음조차도 양극화되어 천차만별인 장례식장을 떠올려봅니다.
고인보다 유족들의 명분과 체면을 앞세우는 장례식장.
죽음마저 수단이나 도구가 되고
관계를 위한 사교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자끼리는 세를 과시하고 카르텔까지 형성합니다.
호화롭고 번잡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럽고 정이 메마른 장례식장에서 고인은 서러울 것 같습니다.
밀봉되지 않는 웃음/ 유홍준
봉투 하나에 식권 하나가 배당되는 결혼식처럼
봉투 하나에 도시락 하나가
주어지는 시골 상갓집
영정 앞의 상주와 엉거주춤 봉투 내민 문상객이 엎드려
마주보고 웃는 웃음, 봉투와 교환한 도시락처럼
뚜껑 열고 허옇게 웃어 보이는 웃음
설익은 고기를 씹으며
웃는 웃음, 설익은 고기가
씹히는 웃음
흰 봉투 들고 마당가에 서서 차례 기다리는
웃음, 謹弔의 웃음, 일렬횡대로 서서 쓸쓸하게
웃고 있는 근조 화환의 웃음
부의 봉투처럼 밀봉되지 않는 웃음, 액수를
확인하고 기록해두어야 하는
부의금처럼 접수해야 하는
웃음, 차곡차곡 쌓아가는
쌓여가는 웃음……
어색해 하는 상주와 문상객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시입니다.
부의금 속에는 슬픔만 있는 게 아닙니다.
"謹弔의 웃음"이 들어 있지요.
고인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기억하고자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유홍준
벤자민과 소철과 관음죽
송사리와 금붕어 올챙이와 개미와 방아깨비와 잠자리
장미와 안개꽃과 튤립과 국화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죽음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며
죽음을 신기해하는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의 처참함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아내는 화장술이 늘어가는 삼십대가 되었다
바람도 태양도 푸른 박테리아도
희망도 절망도 욕망도 끈질긴 유혹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별일 없나
별일 없어요
행복이란 이런 것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
죽음을 집안으로 잔뜩 끌어들이는 것
어머니도 예수님도
귀머거리 시인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역설과 반어법이 있는 시입니다.
우리 집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 나갔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단지 일상일 뿐이었지요.
하지만 시인은 그것과 마주쳤습니다.
능청스러운 삶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이면을 바라보며
삶을 관조합니다.
행복이란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
정말 그런 것 같지 않나요?
현대인들은 자기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이상 말이죠.
또한 현대인은 모래에서 태어나 모래 위를 걷고
결국 모래에서 죽는 낙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수많은 아파트는 모래로 만들어졌고
우리는 바로 사막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경마장 안에서 달리는 경주마와도 같은 운명입니다.
늘 반복되는 코스를 달려야 하는 일상.
가끔 해외여행으로 일탈을 하지만
열흘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 우리는
바로 경주마입니다.
오늘은 죽음에 관한 시들을 공부하며
죽음이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초상집은 잔치분위기였다고 하지요.
비명횡사만 아니면 말입니다.
죽음 하면 떠오르는 어두운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보는 계기가 되었던 수업이었습니다.
베트남을 다녀오신 인영샘이 달콤한 초콜렛을 듬뿍 가져오셔서
모두들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반갑기도 했고요.
식구들을 위해 병원에서 애쓰시는 인숙샘과 지연샘,
바쁜 일로 결석하신 영자샘과 정주샘도
다음 주에는 꼭 나오세요.
강풍이 몰아치고 내일은 기온이 뚝 떨어진다네요.
모두들 끝장 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