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 학기 시작에 걸맞게 새로 세탁한 하얀 와이셔츠와
회색 자켓을 입고 오신 스승님이 더욱 돋보였습니다.
새해 첫 날, 첫 달, 새 학기는 시작하기가 무섭게
달아나 버린다는 스승님의 말씀처럼
벌써 3월입니다.
봄도 스승님의 열강과 함께 쏜살같이 가버릴 것을 감지합니다.
페이스북에 실린 <문장의 원칙>으로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한국일보 기자 시절부터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기자들의 우상이었던 김훈 작가의 <밥에 대한 단상>을 읽었습니다.
상식에 어긋나면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그는
수식을 배제한 간결한 문장으로 유명합니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 군중들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중략)
수식어나 감정개입이 철저하게 배제된 문장들로
냉정하게 밥 먹는 장면만을 쓰고 있지요.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듯이 글만 쓰고 빠져나와야 합니다.
판단은 독자가 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이를 독수리가 잡아먹으려고
매섭게 쏘아보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작가가 퓰리쳐상을 받았지만
일 년 후 자살을 했습니다.
아이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은 매정함에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객관성은 잔인한 것입니다.
수식어와 술어로만 된 문장이 가장 정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부사만 덜어내도 명확하고 세련된 문장이 가능합니다.
부사를 쓰는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일반적으로, 다소, 상당히, 빈번이 등의 부사는
내용이 흐리거나 도망갈 구멍을 만들 고 싶어 사용하는 부사입니다.
근거가 없거나 확신이 없을 때는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수동태나 피동형 문장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수동태는 객관적인 척 하면서 도망가는 문장입니다.
자신감이 결여되었을 때 쓰는 것으로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증가하는 경향이 발견됨’이라고 쓰지 말고
‘증가함’이라고 써야 합니다.
‘나의 첫 키스는 그녀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계기로써
나에게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대신에
‘그녀와 나의 사랑은 첫 키스로 시작됐다’고 쓰세요.
앞의 문장은 번역 문장과 같아 좋지 않고 나중 문장이 능동형입니다.
묘사 문장을 써야 합니다.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는 내용이 묘사이고
눈, 귀, 코 등을 이용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알 수 있는 내용이 설명입니다.
묘사가 설명보다 좋은 이유는
구체적이어서 독자가 받아들이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깔 대신에 녹색이라고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묘사하는 척하는 설명문장은 최악입니다.
‘편의성이 두드러지는 굴곡’말고
‘가장자리를 반원모양으로 깎은 굴곡’이나
‘30도의 경사진 굴곡’이라고 써야 합니다.
굴곡이라는 단어는 눈에 보이는 묘사이지만
‘편의성이 두드러진다’는 추상입니다.
가능한 한 문장은 짧게 쓰세요.
‘진주성에서 조선군사 오천이 죽었다.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짤막하게 썼기에
절망과 슬픔이 잘 전달되는 기가 막힌 문장이 되었습니다.
길었다면 진실된 감정전달이 잘 안되었겠지요.
혼자라는 단어는 부사이지만 고독감을 강조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어휘를 고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단어가 있지요.
사과에 해당하는 단어로 가치중립적 단어와
신사에 해당하는 단어로 이미 가치 평가적 단어입니다.
사과 앞에 신선한, 썩은, 맛있는 등등을 쓸 수 있지만
신사 앞에는 방탕한, 불친절한, 등을 쓸 수 없습니다.
글쓰기에서는 가급적 사과를 많이 쓰고 신사를 적게 쓰세요.
‘20% 비싼 단가’ 대신에 ‘20% 높은 단가’가 좋습니다.
비싸다는 것엔 이미 가치평가가 들어갔기 때문이지요.
신사에 해당되는 단어는 양념이 들어간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그것이, 이것이 등 지시어도 영어식 문장이므로 많이 쓰지 마세요.
접속 부사도, ‘~것이다’라는 서술어도 가급적 피하세요.
추상어인 감정적 표현 대신 구체적이고 묘사인 감정 환기적 표현을 쓰세요.
학기 첫 시간엔 늘 글쓰기 원론을 공부합니다.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셔야 하는 스승님은
혹시 우리가 지겨워 할까봐 걱정하셨는데
늘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을 보고 안심을 하신다지요.ㅎㅎ
오늘도 반복된 내용이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 잘 했습니다.
다리부상으로 한 학기를 쉬셨던 초엽샘이
맛있는 요거트를 한가득 가지고 오셨습니다.
정말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김포에서 새로 오신 박영희샘도 반갑습니다.
소설을 쓰다가 에세이에 관심이 생겨 오셨다니 기대가 됩니다.
인숙샘, 영자샘, 인영샘, 지연샘이 결석하셨는데도 강의실은 꽉 찼습니다.
껴서 앉더라도 문우들로 북적거리는 강의실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