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의 시각화’ 하면 이재무 시인의 <종소리>를 떠올리세요.
공감각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시입니다.
수필에서도 감각을 자주 인용하는 게 좋습니다.
많이 소개했던 <종소리> 대신 다른 시 두 편을 옮겨봅니다.
마포 산동네 /이재무
늦잠 자던 가로등
투덜대며 눈을 뜨고
건넛집 옥상 위
개운하게 팔다리를 흔들며
옥수수 잎새
낮 동안 이고 있던 햇살을 턴다
놀이에 지친 아이들 잠들고
한강을 건너온 달빛
젖은 얼굴로
불 꺼진 창들만 골라
기웃거린다 안간힘으로 구름을 밀며
바람이 불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도의 사투리들
거리를 가득 메운다
하나 둘 창마다 불이 켜지고
소스라쳐 빨개진 얼굴로
달빛 뒷걸음질친다
비로소 가는 비 맞은 풀잎처럼
생기가 돈다, 마포 산동네
산동네 슬라브집 옥상에는 흙을 부어놓고 농사를 짓곤 했지요.
한낮엔 할 일이 없던 가로등은 어둑해지면 불을 켜고
저녁이 되어서야 산동네에는 활기를 띱니다.
한강을 건너왔기에 젖은 달빛이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방에 불빛이 없어야 달빛이 잘 보이지요.
불이 켜지면 달빛도 도망을 갑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잘 담은 시입니다.
옥상이 논다 / 이정록
평상이 없다
예비군복과 기저귀가 없다
새댁의 나이아가라 파마가 없다
상추와 풋고추가 없다 줄넘기 소리가 없다
쌍절봉이 없다 시멘트 역기와 통기타가 없다
골목길 멀리 내뱉던 수박씨가 없다
항아리가 없다 항아리 뚜껑 위에 감꽃이 없다
모기장이 없다 모기를 잡던 박수 소리가 없다
모기장을 묶어 매던 돌덩어리 네 개가 없다
고무신이 없다 고무신 속 빗물 한 모금이 없다
안테나가 없다 안테나를 돌리던 작은 손이 없다
잘 나와? 잘 나오냐고? 안마당에 내려놓던 고함소리가 없다
우리 집은 잘 나오는디, 염장을 지르던 옆집 아저씨의
늘어진 런닝구가 없다 런닝구 속 마른 가슴팍에 수박씨가 없다
근데, 이 많은 것들이 언제 내 머리 속에 처박혔나?
이마는 어느새 평상처럼 넓어졌나? 가슴 속
잡것들은 다시 옥상에 기어 올라가려고
울끈불끈, 내 런닝구는 누가 이리도 잡아당겼나?
어떤 싸가지가 수박씨 날리는 거야?
고개들어 텅 빈 옥상을 두리번두리번,
지금은 사라진 옥상을 잘 그려낸 시입니다.
옥상에는 늘 빨랫줄이 있고 서민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빨래들이 널려 있었지요.
골목길이 사라지면 거기에 관련된 많은 풍습도 사라집니다.
비록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가슴 속에는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는 사막도 바다도 심지어 우주까지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상상력의 힘입니다.
달빛/ 박현수
달빛은
백설에 스며들다 이내 넘쳐
낙숫물처럼
축대에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월세방 부엌
흩어진 신발에
가득 고이기도 하고
뱀처럼 젖무덤 새로 흘러들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꿈마다
방울져 떨어지기도 하고
핏속의
상감(象嵌) 무늬
소리조차 푸른 발자국
전경화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인 아낙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넣었습니다.
수필에서도 꼭 필요한 기법입니다.
가난한 아낙의 꿈속에까지 들어간 달빛을 노래했습니다.
스며들 수 있는 것이 물뿐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달빛도 스며든다고 표현한 것이 돋보입니다.
그늘이 고여 있다거나 평상에서 그늘을 덮고 잤다는 등의 표현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비유의 원리는 서로 다른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찾는 것입니다.
유사성은 형태나 내용으로 나뉩니다.
하늘의 별이 흩어진 튀밥 같다는 유사성은 형태가
생활은 촛불 같다는 유사성은 내용이 닮았지요.
사물의 상징적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대의 눈은 호수같다는 말이 더 이상 칭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호수는 오염이 되었으니까요.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게으르고 뚱뚱한 노숙자로 비유될 수도 있듯이 말입니다.
위대한 비유는 아주 이질적인 데서 유사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이며 글쓰기의 능력입니다.
사랑은 본능입니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면 불안해지지요.
그 불안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에서
반대 감정 즉 증오감을 나타내는 것이 방위기제입니다.
소월의 <진달래 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시적 화자 즉 주인공과 시인이 일치를 하면 개성적인 시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몰개성적인 시입니다.
<진달래꽃>의 화자는 여자이지만
시인인 소월은 남자이므로 이 시는 몰개성적인 시입니다.
감자꽃/이재무
차라리 피지나 말 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너 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 앓고 있는데
불임의 女子, 내 길고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내 女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 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화자는 여자이지만
시인은 남자이므로 이 시 또한 몰개성적인 시입니다.
애를 안 낳는 것은 불행이 아니지만 못 낳는 것은 불행입니다.
자발적 가난은 불행이 아니지만 원하지 않는 가난은 불행입니다.
감자꽃은 꽃이 필 때 꽃을 잘라줘야 열매가 굵어지기 때문에
슬픈 운명을 가진 꽃입니다.
꽃에서 열매를 맺는 대부분의 식물들과 다르게
꽃 따로 열매 따로 생장하는 감자꽃은 처음부터
꽃과 열매의 슬픈 이별이 전제되어 있지요.
그래서 차라리 피지나 말 걸, 꽃피어 더욱 서러운 여자라고 읊었습니다.
오늘 간식은 서울서 매 주 오시는 김선희샘이
자연발효 치아바타를 준비해 오셔서
담백한 빵맛을 음미하며 먹었습니다.
유난히 결석이 많았던 날이었어요.
2월 첫날에는 모두 뵈옵게 되기를 바라며
청양해 첫 달 마지막 수업을 마칩니다.
다들 첫 단추를 잘 끼셨겠지요?
두 번 째 달 반가운 얼굴들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