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2주간의 길었던 방학을 마치고 신기소에서 회덮밥과 메밀세트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적당한 점심식사를 오랜만에 함께 하였습니다. 아이파크 몰의 풍성한 식당가를 순회하며 함께하는 용산반의 점심식사는 매주 12시 30분까지 문화센터 입구에 도착하시면 함께 하실 수 있으니 0교시의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고 함께 하셔요~
1교시 명작반: 제1강: 루소의 <<에밀>>과 유아 교육법
*장 자크 루소: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계제조업자이고 어머니는 시계제조업자의 딸이었다. 어머니가 루소를 낳다가 죽자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10세 때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숙부에게 맡겨졌으며, 공작소 주인의 심부름 따위를 하면서 소년기를 보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루소에게 도제생활은 하나의 감옥이었고, 루소는 드디어 1728년 16세 때 제네바를 떠나 청년기를 방랑생활로 보냈다. 이 기간에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은 관계를 맺고, 집사로 일하면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10여 년 간의 독학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는 데 매진한다. 1742년 파리로 나와 디드로 등과 친교를 맺고, 진행 중인 『백과전서』의 간행에도 협력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줄 일이 생긴다. 우연히 본 잡지의 디종 아카데미가 내건 현상 논문의 제목에서 섬광과 같은 영감을 받고 응모하게 된다. 현상 공모의 제목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도덕적 순화에 기여했는가?』였다. 1749년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당선한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고』을 출판하여 루소는 사상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그 후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주요저작인 『인간불평등기원론』(1755) 역시 1753년에 공모한 현상논문으로 제출하기 위해 썼지만 이미 당대 명망 있는 철학자인 그가 수상을 목표로 해서 썼다기 보다는 현상주제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을 지닌 루소는 『정치 경제론』(1755), 『언어기원론』(사후 간행) 등을 쓰면서 디드로를 비롯하여 진보를 기치로 내세우는 백과전서파 철학자나 볼테르 등과 다른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다. 특히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1758) 이후 디드로와의 사이는 절교상태가 되었고, 두 사람은 극한적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서간체 연애소설 『신(新) 엘로이즈』(1761),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논한 『사회계약론』(1762), 소설 형식의 교육론 『에밀』(1762) 등의 대작을 차례로 출판했다. 이들 각각은 연애소설, 정치이론서, 교육이론서라 볼 수 있다. 당대의 철학자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은 루소는 그러나 『에밀』에 쓰여진 종교적 내용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된다. 파리 대학 신학부가 이를 고발, 파리 고등법원은 루소에 대하여 유죄를 논고함과 동시에 체포령을 내려 루소는 스위스 ·영국 등으로 도피하였다. 영국에서는 흄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각지를 전전하게 된다. 이때 자기변론적인 전기 『고백록』을 집필한다.
1768년 1745년 이래 함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결혼하였으며 1770년 다시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고 그 후 『루소, 장자크를 재판한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 자기고백적인 작품을 주로 집필한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집필하는 중 1778년 파리 북쪽 에르므농빌에서 사망한다. 그가 죽은 지 11년 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의 자유민권 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1794년 사람들에 의해 유해가 파리의 팡테옹으로 이장되어 볼테르와 나란히 묻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참조
*<<에밀>>: 1762년에 출판된, 프랑스의 사상가 쟝 자크 루소의 교육서이다. 주제는 교육이지만, 동시에 루소의 인간론이며 종교론이기도 하다. 특히,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적 자질이 풍부한 루소의 풍부한 문학성을 보여준다. 부제는 〈교육에 대해서〉(1762)이다. 전편을 5부로 나누어, 에밀이라는 고아가 요람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가정교사의 용의주도한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이 적절히 묘사되면서 논술되어, 문학적인 매력과 교양 소설의 흥미를 갖추고 있다. “조물주의 손에서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라고 하는 유명한 서두의 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안점은 외적 환경(사회·가족)이나 습관·편견의 나쁜 영향에서 어린이를 보호해서, 그의 이른바 ‘자연’의 싹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롭고 크게 뻗어나가게 하자는 데 있다. 이러한 취지는 영·유아에게 포대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젖을 먹이도록 권하며, 어린이를 어린이로서 처우하라는 주장으로 나타난다. 또한, 유아에게는 신체 단체 및 감각 훈련, 소년에게는 직업 지적 교육을 주로 하여, 적극적인 도덕관념이나 진리를 가르치지 말고 이성에의 준비를 행하는데 그치도록 권하였으며, 이것을 소극교육이라고 불러, 가장 중요한 교육단계로 간주하였다. 서적이나 언어에 의한 교육을 피하고 어디까지나 경험을 존중해서, 소년기의 지적교육 분야에서도 실물교육을 주로 하고, 감정육성·직업적 기술·수공업 기능의 수득을 주장하였다. 특히, 제4부의 16∼18세에 이르는 청년기 도덕교육을 위해서 쓴 자연종교 이론 ‘사보와인 부사제의 신앙고백’은 그의 합리성, 비종문성, 정열, 관용성 때문에 민중의 마음에 강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루소가 주장한 것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즉 당시 보편적으로 행하여졌던 주입식의 지육에 편중된 교육에 반대하고, 전인교육(이를테면 체육·품성 등의 교육)을 중시하며, 인간 중에서 가장 순수하게 자연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린이에게 그 본래의 자연과 자유를 되돌려 줄 것을 주장한 것이다. 《에밀》은 I.칸트, J.H.페스탈로치 등을 통해서, 교육사상사·철학사상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2교시 수필반
수필 작법의 기본과 자세에 대한 이론을 훑어보고 되새기면서 시작한 이번 학기에는 새로 오시거나 다시 강의실을 찾아주신 분들이 많아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수업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교시와 더불어 2교시 수업까지 함께 하시게 된 정진희 회장님, 목동 반에서 저희 반으로 전학을 오신 김은희 교수님, 나름의 개인사정으로 잠시 쉬시다가 다시 교실을 찾아주신 김설옥 선생님, 김민균 선생님, 박은지 선생님, 송경호 선생님, 꽃밭이던 저희 용산반을 그득히 메워주실 전효택 선생님, 신재우 선생님, 낯설고 어색해 하셨지만 곧 저희반의 매력에 푹 빠지시게 될 고영희 선생님, 황현주 선생님, 수요반에서 전학 오신 진연후 선생님까지...선생님들이 함께 해 주셔서 더 행복한 월요일이었습니다.
3교시 티타임
권정희 선생님께서 열어주신 티타임에서 새로 오시거나 다시 나오신 선생님들과 풍성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 질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오늘 등단 기념으로 뜨끈한 콩설기 시루떡과 영양만점 사과를 한 아름 안겨주신 신선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지금 선생님께서 주신 사과 베어 물면서 수업후기 쓰고 있어요 샘^^*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겼지만 인성교육의 진원지가 된 자연주의 교육서 <<에밀>>을 집필한 루소에게서 심한 모순을 느끼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지요? “가난한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그를 면제 시켜줄 수 없다. 독자들이여, 그 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도 좋다.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자에게 예언하건대,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쏟게 될 것이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차라리 루소의 속죄의 고백처럼 들리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