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오늘은 신선숙 선생님의 등단파티가 화려하게 열린 날이었습니다.
불고기 브라더스에서 영양 만점 맛도 만점 불고기 전골을 도란도란 나누어 먹으며 들었던
신선숙 선생님의 감개무량한 등단소감이 또렷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진희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발을 들여놓으신 이 곳이 최고의 노후대비였다는 말씀에 모두들 공감하며 무릎을 치고 말았지요. 교수님의 축사처럼 생활수필의 대가로 거듭나시어 저희 용산반의 어른으로 듬직하게 뿌리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려봅니다. 오늘 입고 오신 초록색 블라우스와 화사한 꽃모양의 코사지 정말 잘 어울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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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명작반 : 제8강 성자의 탄생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 BC 469?~ BC 399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세계 4대 성인중 하나.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 출생. 조각가인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Sophroniskos)와 조산원(助産員)인 어머니 파이나레테(Phainarete) 사이에서 태어나 처음엔 아버지를 따라 조각을 하면서 다른 청년들처럼 기하학ㆍ철학ㆍ천문학 등을 배웠고, 중장보병(重裝步兵)에 편입되어 세 번이나 전투에 참가, 용명을 떨쳤다. B.C. 406년에 5백 명 공회의 일원이 되어 1년간 정치에 참여한 일이 있고, 40세 이후엔 교육자로 자각, 청년들의 교화를 결심하였다. 자연 철학을 수득했으나 그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다. 그때는 아테네의 몰락기였으므로 보수적ㆍ귀족적인 정신과 진보적ㆍ개인주의적ㆍ비판적 정신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였고 그도 이러한 상반된 경향을 지니게 되었으나 당시의 소피스트들처럼 궤변(詭辯)을 능하여 진리를 상대적ㆍ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단연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ㆍ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아무런 저서도 남긴 바 없어 확실한 사상을 알기는 어려우나 아리스토텔레스ㆍ디오게네스 라이르티우스ㆍ크세노폰 특히 플라톤의 저서 등에 언급된 것을 보면 그는 델피(Delphi)의 신탁을 믿어 "너 자신을 알라 Gnothi Seauton"고 주창하였다. 그 방법으로 제논의 변증법을 활용하여 논변을 진행시키는 사이에 잘못된 판단의 모순을 깨우치고 다시금 옳은 판단으로 유도시켰는데 이것이 유명한 산파술(産婆術)이었다. 그는 합리주의자였으나 때로는 초경험적인 내심의 소리, 즉 다이몬(Daimon)의 소리를 경청하고,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일주야를 요지부동하면서 내심에 침잠하는 선정(禪定)의 경지에 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지혜(智慧 : Sophia)를 사랑(愛 : Philos)하는 마음으로 정의ㆍ절제ㆍ용기ㆍ경건 등을 청년들에게 가르침으로써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화를 끼쳤으나, 공포 정치 시대의 참주(?主)였던 크리티아스(Kritias) 등의 출현이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神)을 믿지 않는 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되고,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 40표로 이 노애국자(老愛國者)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는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투철한 준법 정신에 의해서 태연히 독배(毒杯)를 들어 마시면서 제자들에게 빌린 닭 한마리를 갚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의 사상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메가라(Megara) 학파ㆍ키니코스(Kynikos) 학파ㆍ키레네(Kyrene) 학파 등을 이루고 특히 수제자인 플라톤의 관념주의로서 피어나 그 뒤의 서양 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은 그에 대하여 "우리들이 만나 본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정의(正義)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플라톤: 플라톤(BC 427~ BC 347)은 기원전 427년에 아테네의 명문 귀족의 집에서 출생하여 20세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정치가를 희망했지만, 혼란에 빠진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위해 희생된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망을 목격한 후 뜻을 바꾸어 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철학자로서 플라톤의 노력은 아테네의 운명에 불길함을 던져준 소크라테스의 실패를 연구하고 그것을 시정할 방법을 찾는데 모아졌다. 스승의 처형 후 잠시 메가라에 피난갔다가 아테네로 돌아와서 약간의 대화편을 집필했다. 그 후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등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으며, 기원전 387년 아테네의 서북쪽에 아카데메이아(Akademeia)라는 학교를 창립했다.
기원전 399~365년에 다시 시칠리아에 가서 젊은 군주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os Ⅱ ; 기원전 367~398집정)를 도와서 어느 정도 자기의 정치사상에 부합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기원전 361~360년 세 번째로 시칠리아에 가서 친구인 디온과 그의 조카 디오니시오스 2세와의 싸움을 조정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 후 기원전 347년 사망할 때까지 아카데메이아에서 강의와 저작의 집필에 전념하였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이 글은 소피스트로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와의 덕(德)에 관한 대화이다. 덕이란 무엇이며 과연 덕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가 음미된다. 소크라테스는 절제·경건·용기·정의·지혜라고 하는 여러 가지 덕이, 그것들이 정말로 덕이라고 할 수 있는 공통된 덕의 본질을 문답 형식으로 탐구해 나간다. 만약 이러한 여러 덕의 본질이 지식임을 안다면 덕은 가르쳐진다고 해도 좋으며, 덕은 지식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 한편 프로타고라스는 덕은 가르쳐지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덕이 지식이라는 점을 부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프로타고라스는 정의·용기·절제 등 여러 덕이 마치 얼굴 가운데서 코나 눈이나 입처럼 각각 다른 것이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경건한 태도를 갖지만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든지, 지혜롭지는 못하지만 사려가 깊다고 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덕이 황금의 일부분처럼 동일하다고 한다면 용기·절제·경건 등등으로 구별되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인가. 결론으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은 지식이지 않느냐, 그러므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암시가 전체를 통하여 풍기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여, 정의(定義)에 마음을 쏟았다"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 그 보편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지식이라 해도 좋다. 그가 말하는 지식이란 머리에서 생각만 하는 이론적인 지식은 아니다. 그것을 가지면 악을 저지를 수 없는 체득적(體得的) 지식이라 하겠다. 그러한 지식을 얻는 것이 덕이며 사람들의 행복으로 연결되어 간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이른바 "지(知)는 덕(德)"이며 "덕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윤리가 이 대화편에 암시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 이 대화편의 주제는 사랑(에로스)이다. 대화편의 전체 내용은 크게 세 부분(도입부, 찬양 연설, 마무리)으로 나뉜다. 도입부는 이야기의 보고자인 아폴로도로스가 오래 전에 아가톤의 집에서 있었던 향연에 대한 이야기를 아리스토데모스에게서 전해 듣게 된 사정과 향연에서 에로스 찬양 연설이 시작될 때까지의 과정이며,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찬양 연설 부분은 참석자들 가운데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의 연설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향연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향연 이야기가 종결된다.
*알키비아데스: (BC 450~ BC 404) 소크라테스가 30대 초반에 만난 새까만 후배로 정치적 수완과 현명함, 드높은 야망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엄청난 사치와 음주, 방탕, 오만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며 후일 소크라테스의 사형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크세노폰: (BC 430~ BC 354)소크라테스의 제자로 플라톤과 동문수학했으며 마키아벨리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업 군인이자 저술가로 소크라테스를 찬양하였고 그가
살았던 BC 4세기에 대한 역사와 소크라테스의 말, 고대 그리스의 생활사에 대한 기록을 남겨
유명하다.
2교시 수필반
홍성희님 <7번 아이언의 한계>
골프를 시작하시며 겪으셨던 에피소드와 감회를 다룬 글로 글의 소재를 전후좌우로 더 넓게
관찰하시면서 한 두 문장을 포인트 있게 표현하시면 더 좋은 글이 되겠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박승희님 <원리원칙 독일인, 순발력의 대가 한국인>
흥미로운 소재의 글로 장황하다 싶은 내용을 축약하되 자세히 표현해서 재미있는 부분은
살리는 재구성이 필요하겠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김미원님 <견딜 수 없네>
한때는 절실하고 애절했던 그것들을 모두 잊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쓴
글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기획기사의 소재로도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온 글이었습니다.
3교시 티타임
티타임은 저희들의 단골 츄러스집에서 등단파티를 하신 신선숙 선생님이 열어 주셨습니다.
연말 총회 반별 장기자랑은 저희반의 인원이 적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합창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반장님께서 10월 가을세미나 일정을 공지하셨습니다.
장영수 선생님께서는 2주 전쯤 있었던 교수님의 수필쓰기 이론에 대한 수업이 매우 좋았다고
하시면서 간간이 실기와 이론수업이 병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담 주 화욜 오후 4시 합정동 문학하다에서 열리는 북 콘서트에는 반장님의 권두시 낭송과
신인상을 수상하시는 신선숙 선생님께서 출연하시니 많은 참여 해주시면 뜻 깊은 시간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여름학기 수업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냉방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뜨거운 용산반의 열기를 넘치는 학구열로 잠재워주신 선생님들의 열정에 감사드리며 선선한 가을학기에도 반갑게 다시 뵐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마지막 더위 건강하게 잘 넘기시고 9월 학기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