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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의 입장만을 생각한다면 시가 아닙니다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5-08-10 19:47    조회 : 4,344

비 가는 소리/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 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60대 후반의 시인이 쓴 시입니다.

젊었다면 쓸 수 없는 시이지요.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젊었던 시절은 갔고

나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닙니다.

중심일 때는 가는 것 보다 오는 것이 눈에 띄었지만

지금은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사람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됩니다.

 

 

이재무 /구두

 

 

노점상에게서 일금 3만 원 주고 산 구두가 말썽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싸구려 주제에 당나귀 심줄을

 

삶아먹었는지 고집도 그런 고집이 없었다

 

제 틀만 고집하는 거며 도대체 남을 배려할 줄을

 

몰랐다 심통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주 투덜거리고

 

걸핏하면 발등을 물어뜯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써버린

 

돈이 아까워 나는 놈을 신고 친구 마누라 장례식에도 가고

 

술집이며 PC방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지방강의에도

 

가고 또 갔다 내가 놈을 신은 것인지 놈이 나를 신은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보름을 보내고 나니 저도 나도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발등의 신고가 여간 아니었던지

 

간장 종지만큼 부어 올랐다

 

태생이 다른 것들끼리 만나 살()과 살끼리 부딪히는 동안

 

이제 어지간히 서로에게 길들여지게 되었다

 

오늘은 모처럼 휴일이어서 나는 그간에 수고가 많았던

 

발등을 더운 물로 씻기고 양손으로 주물러주었다

 

신발장에서 함부로 널브러져 곤한 잠 자는 그를 깨워

 

먼지를 털어내고 약칠까지 해주었다

 

그 사이 그는 한결 성정이 순해져 있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고집은 때로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는

 

법이다 내일은 아주 먼 길을 나서야 한다

 

나는 다 닦은 구두를 한지에 싸서 신발장 깊숙이 들여놓았다

 

 

처음부터 편한 관계는 없습니다.

일방적인 관계도 없지요.

주인의 발만 아픈 게 아니라 구두 또한 아팠을 겁니다.

아무리 무생물이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본다면 말이지요.

급하게 흐르는 물속의 돌도 아프겠지만

흐르는 물도 아프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돌의 입장만을 생각한다면 시가 아닙니다.

 

인연은 관계의 발효입니다.

김치를 담그기 전 배추, 마늘, 젓갈, 파는

각자의 맛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버무려지면 화학반응에 의해 하나의 맛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관계도 이와 같지요.

세월이 사람관계에 발효를 일으켜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줍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으며 동일시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주인공에 된 듯한 착각에 그가 불행해지면 울고

행복해지면 덩달아 기뻐했지요.

문학을 가까이한 경험이 없으면 타자의 슬픔을 공유하기 힘이 듭니다.

공감 능력은 인문학적 경험을 통해 습득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멀리하게 되는 이유에는 인터넷, 게임 등의 매체 변화와

입시경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열광하는 대중예술의 뿌리는 문사철에 있어야 합니다.

당장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오늘날 풍조에서 인문학은 소외될 수밖에 없지요.

 

독서모임을 2년 넘게 꾸준히 해오면서

공감능력이 향상된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인문학이 등한시되는 세상에서

그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산반 문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휴가철이 아직인가요?

오늘도 빈자리가 많이 띄어서 얼른 정상궤도로 올라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신 분들,

더 활기찬 모습으로 다음 주에 뵈어요!

 


진미경   15-08-10 21:16
    
반장님의 명품후기 ! 반갑게 읽었습니다.
입추도 지났건만 여전히 무더운 하루를 보냈네요.
약을 먹어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않던 고약한 편두통이
저녁무렵이 되자 물러갔어요.
잠시 동거하던 그가 떠나자  밀린 집안일을 숙제삼아 끝내고,
읽는 강의내용이 보석처럼 빛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관계의 발효!
강한 양념들이 어우러져 맛있는 맛을 내듯이
사람사이의 발효도 그러하길 소망합니다.
인문학이 그 중심에서 효자노릇을 하겠지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으면해요.
향기나는 문장을 읽고 사람이 향기나지않는다면  그건 슬픈
일 같아요.

푹푹 찌는 막바지 여름과 전투 중인 여자 올림 ^^
     
한지황   15-08-10 22:15
    
고약한 편두통과의 동거가 끝났다니 저도 기쁘네요.
깨끗해진 머리로 후기를 읽고 댓글까지 달아주신 미경샘.
책을 다 읽고도 독토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다음 주에는  더욱 편안해진 몸과 마음으로  만나요!
조병옥   15-08-10 22:03
    
6.25....
    가난과 전쟁 사이를 바닥 난 신발짝 끌고 왼종일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그때의 실감을 만났읍니다.
    이재무 시인의 '구두'에서.
한지황   15-08-10 22:17
    
일초샘!
무더위에 건강하신지요?
늘 궁금해하면서도 이렇게 찾아주실 때만 안부를 여쭙네요.
오늘도 가슴 찡한 울림을 주시는군요. 보고 싶어요!
최영자   15-08-11 23:36
    
헐레벌떡 달려간 강의실에 꼭 거기에 앉아 있어야 할 미경샘이 안보여서 궁금했는데 , 두통으로 고생을 하셨다니  안타깝네요.  수업 중 추임새 넣는 미경샘이 없어  분위기 맞추느라 제가 몇마디 거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니함  만 못 하더라구요.  역시 하던 사람이 해야지 ~

반장님이 제출하신  `공범`을 읽으면서 나도 공범이라고 외치고 있었네요.
저도 연로한 시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속으로만 담고 있었는데 ...
요즘은 착한 척  사는 나 자신에 대해 때때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거든요.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싶어요. 때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더라도  누군가에게 들이대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에고  무서워라 ~~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한 반장님 대단해 보여요.  그런 내공이 어디에 숨어있나요? ㅎㅎ

총무님, 선희샘,인영샘, 혜영샘, 한나샘, 인숙샘, 초엽샘, 또  안나오신 분 누구 없나요? 담주에는 꼭 뵈요.
     
한지황   15-08-12 19:23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신 영자샘의 자상함에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영자샘이 거드신 말들이  얼마나 제게?힘이 되었는데요.제 글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는 말씀 말이어요.
자식은 부모에게 누구나 죄인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쓴 글이어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하지요.
개성있는 글을 좋아하다보니 가끔 튀지요.
아니. 항상 그런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