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누이, 나의 어머니였던 당신에게_팽나무에 부쳐_이재무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 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 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시인이 직접 고른 성장시입니다.
“시간도 공간에 의해 총량과 성질이 결정되는 시대입니다.
서울에서의 한 시간과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몽골 초원 혹은 티베트 고원에서의 한 시간은
길이와 넓이와 깊이에서뿐만 아니라
성질에서도 큰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당신과 더불어 살던 수십 년 전의
무시간(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워낭소리처럼 느리고 살갑게 오고 가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면서 팽나무와의 추억을
한 편의 수필로 만들었습니다.
공간 이동을 하면 시간이 달라집니다.
공간 이동을 빙자한 시간 이동이 여행입니다.
우리는 서울의 광속에서 벗어나 완만히 흐르는
근대 이전의 시간을 맛보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나는 당신의 품 안에서 자랐습니다.
그 시절 당신은 나의 누이였고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들어서자,
나도 여느 청년들처럼 당신을 떠나 대처로 나갔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더 이상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을 우리도 배워야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예의 ‘팽나무’를 소재로 세 편의 시를 썼다.
회초리가 되어 내 유년의 종아리를 아프게 다녀간 그에 대한
푸른 추억과 다 늙어 내부를 텅 비운 채 시름시름 앓던 그에게서 얻은
생의 성찰과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화수지풍(火水地風)으로 돌아간
그에 대한 회한의 정을 시의 형식으로 담아냈던 것이다.
위 편지 형식의 글은 그에 대한 이러한 나의 총체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우리도 유년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나무 하나를 정해서
그 나무에게 우정어린 형식의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용필에게는 그늘이 있다.
판소리 창법에서 최고로 치는 소리의 그늘이 있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명산대천을 반 년 가까이 돌아다니며 피를 토한 끝에
진성에 탁상을 겸한 득음의 경지에 오른 후
그는 서늘한 그늘의 노래를 통해 세상의 그늘을 지워나갔다.“
‘조용필, 그는 노래로 세상 그늘을 지워 나갔다’는
스승님 글 중 일부분입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빼어난 서정시와도 같은 노랫말을
부를 수 있는 가수 조용필.
판소리에 그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수필 또한 흰 그늘이 있어야 합니다.
서늘한 슬픔으로 신파나 멜로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행복한 사람은 좋은 글을 쓰기 힘들다고들 하지요.
슬픔을 지니었지만 그 슬픔을 슬픔으로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
우리가 깨우쳐야 할 화두가 아닐런지요.
아구첨벙에서 아구찜을 맛있게 먹고 라운지에서
스승님과 속 깊은 담소도 나누며
도자기를 깨는 도공들처럼
프로일수록 버리는 작품이 많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일 년에 고작 몇 편을 쓴다면 당연히 애착이 가서 버릴 수가 없겠지요.
일단은 많이 써야 한다는 스승님의 충고를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글쓰기의 관성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