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수필도 흰 그늘이 있어야 합니다.(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5-07-20 19:47    조회 : 5,299

나의 누이, 나의 어머니였던 당신에게_팽나무에 부쳐_이재무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 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 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 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시인이 직접 고른 성장시입니다.

 

시간도 공간에 의해 총량과 성질이 결정되는 시대입니다.

서울에서의 한 시간과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몽골 초원 혹은 티베트 고원에서의 한 시간은

길이와 넓이와 깊이에서뿐만 아니라

성질에서도 큰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당신과 더불어 살던 수십 년 전의

무시간(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워낭소리처럼 느리고 살갑게 오고 가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면서 팽나무와의 추억을

한 편의 수필로 만들었습니다.

공간 이동을 하면 시간이 달라집니다.

공간 이동을 빙자한 시간 이동이 여행입니다.

우리는 서울의 광속에서 벗어나 완만히 흐르는

근대 이전의 시간을 맛보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나는 당신의 품 안에서 자랐습니다.

그 시절 당신은 나의 누이였고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들어서자,

나도 여느 청년들처럼 당신을 떠나 대처로 나갔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더 이상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을 우리도 배워야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예의 팽나무를 소재로 세 편의 시를 썼다.

회초리가 되어 내 유년의 종아리를 아프게 다녀간 그에 대한

푸른 추억과 다 늙어 내부를 텅 비운 채 시름시름 앓던 그에게서 얻은

생의 성찰과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화수지풍(火水地風)으로 돌아간

그에 대한 회한의 정을 시의 형식으로 담아냈던 것이다.

위 편지 형식의 글은 그에 대한 이러한 나의 총체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우리도 유년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나무 하나를 정해서

그 나무에게 우정어린 형식의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용필에게는 그늘이 있다.

판소리 창법에서 최고로 치는 소리의 그늘이 있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절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명산대천을 반 년 가까이 돌아다니며 피를 토한 끝에

진성에 탁상을 겸한 득음의 경지에 오른 후

그는 서늘한 그늘의 노래를 통해 세상의 그늘을 지워나갔다.“

조용필, 그는 노래로 세상 그늘을 지워 나갔다

스승님 글 중 일부분입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빼어난 서정시와도 같은 노랫말을

부를 수 있는 가수 조용필.

판소리에 그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수필 또한 흰 그늘이 있어야 합니다.

서늘한 슬픔으로 신파나 멜로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행복한 사람은 좋은 글을 쓰기 힘들다고들 하지요.

슬픔을 지니었지만 그 슬픔을 슬픔으로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

우리가 깨우쳐야 할 화두가 아닐런지요.

 

아구첨벙에서 아구찜을 맛있게 먹고 라운지에서

스승님과 속 깊은 담소도 나누며

도자기를 깨는 도공들처럼

프로일수록 버리는 작품이 많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일 년에 고작 몇 편을 쓴다면 당연히 애착이 가서 버릴 수가 없겠지요.

일단은 많이 써야 한다는 스승님의 충고를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글쓰기의 관성을 잊지 마세요!

 


진미경   15-07-20 20:24
    
오랜만의 회식 후 선생님과의 담소와 오늘의 강의^^
좋았습니다.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오니 일산반으로의 공간이동이
뿌듯하네요.
 
나의 20대는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있어 외롭지않았습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단언하건대 최고입니다.
흰 그늘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슬픈 영화. 그늘진 작품과 대면할때 역설이지만 그늘을 벗어남을
배웠습니다.
이재무 샘의 수필이 오래도록 마음을 두드리네요.
반장님의 꽉찬 후기도 고맙습니다.

장마로 인해 후덥지근합니다.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삼아 후기 댓글답니다.
내일 잘 다녀오세요.^^
     
한지황   15-07-21 00:19
    
가왕 조용필의 노래는  나오는 대로 거의 히트했죠.
전 개인적으로 그 겨울의 찻집을 좋아해요.
경쾌한 음악보다 슬픈 가락을 좋아하는 취향은 어릴 적부터 변함이 없답니다.
슬픔은 인간이 느낄 수있는 감정 중 가장  차분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하며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고 여겨져요.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은 예외이고요.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말은 사치일 뿐이죠.
미경샘이랑 강촌세미나 못가서 섭섭해요.
다음을 기약하며...
김선희   15-07-20 20:47
    
요즘은 비만 오면 무조건 좋아요
하도 가물어서 마당에 물주다보니 수도요금 폭탄이라 ㅠㅠ
오늘 일산반 님들과 점심 함께해서 좋았는데 비까지 살짝 와서 더 좋았어요
'글쓰기의 관성'이라는 이재무 샘의 이야기 잊혀지지 않네요
무조건 앉아서 쓰는 시간을 일정하게 가져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모두 행복한 저녁 되세요~~
     
한지황   15-07-21 00:25
    
가뭄에 누구보다도  속이 타들어갔을선희샘!
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 이해합니다.
사십년 만의 가뭄이라니 누군들 애타지 않았을까요?
비오는 날의 낭만도 점점 자취를 감추나 봅니다.
이번 주엔  비가 많이 온다니 기대를 해봐야지요.
선희샘의 파란 잔디가 생생해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요!
최영자   15-07-21 08:50
    
강촌으로의 공간이동 준비를  마치고  잠시 들어왔습니다.
시간 이동이든 공간 이동이든  일상 탈출은 늘 기대와 설렘이 있네요.
오늘  강촌은  나를 위해  무엇을 보여줄까? ㅎ ㅎ

수필에도  하얀 그늘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새롭습니다.
수업을 못 들은 저는  하얀그늘은 독자를 위한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반장님의 세세한 후기로 수업 보충을 하며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지황   15-07-22 07:44
    
영자샘의 첫 작품 일탈이 떠오릅니다.
누구보다도  공간이동을 즐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때 이미 간파했었지요.ㅎ
어제  강촌세미나로의 이동은 즐거우셨겠지요?
분홍빛 블라우스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데......
김혜정   15-07-23 10:15
    
만들고 부수며
나름의 완성품을 기다리는 도공이 부럽습니다.
저는
찌그러진 막사발도 도저히 버리지 못 할 것 같거든요.

조용필의 "들꽃" 을 좋아하는 아줌마 올림
     
한지황   15-07-24 23:57
    
들꽃을 좋아하시는군요.
가창력이 가수 뺨치시는 김반장님!
가을 세미나에서도 실력 발휘하시길
그래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주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