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오늘은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정겨운 밥상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총무님께 듣자하니 동국대 예술대학원 석사논문을 교수님께 헌정하러 오신
박소현 선생님께서 점심을 사셨다는 따뜻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답니다.
무더운 초복을 이겨낼 자그마한 파티를 열어주신 박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교시 명작반 제5강 인간의 운명
-소포클레스의 비극-
*페리클레스: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로 군인, 평의회, 민중재판소, 민회에 실권을 가지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해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외교상으로는 강국과는 평화를 유지했고 델로스동맹의 지배를 강화했다. 페리클레스의 시대는 아테네 최고의 전성기였으며 장기간 민주주의의 독무대였고 문화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소포클레스: 서구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극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과 희곡 문학에 관심이 있는 그 어느 누구라도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중요한 작품이고, 동양과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어느 독자에게나 감명을 줄 수 있는 수작이다. 아테네 교외의 콜로노스 출생으로 아버지가 부유한 무기 상인이었으므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타고났고 집안이 기사(騎士)신분에 속하였으므로 작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명예로운 일생을 보냈다. 음악을 란푸로스에게, 비극을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 사사하였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축제 때는 하프를 연주하면서 무용단을 선도하였다고 한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며, BC 443∼BC 442년 델로스 동맹 재무장관에 임명되어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인의 지휘관직에 선출되었다. 또한 BC 413∼BC 411년의 아테네 내정의 동요기에는 국가의 최고위원 10인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국가에 공헌하였다. 신앙심도 두터워 의학의 신 아스클레오피스의 신전을 자기 저택 내에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BC 468년, 28세 때 비극 경연대회에 응모하여 스승인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첫 우승한 이후로, 123편의 작품을 씀으로써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다. 자기 후배인 에우리피데스가 사망하였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배우와 합창대의 관(冠)을 벗게 하고 자기 자신도 상복으로 갈아입어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외국의 초청도 거절하고 평생을 아테네에 살았는데 이러한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온 시민의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비극 작법은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는 아이스킬로스풍의 장중 화려한 작풍이고 중기는 엄밀한 기교주의이며 후기는 원숙기로서 등장 인물의 성격과 일치하는 문체로 씌어 있다. 현존하는 7편을 연대 순으로 보면 《아이아스 Aias》 《안티고네 Antigone》 《오이디푸스왕 Oidipous Tyrannos》 《엘렉트라 Elektrai》 《트라키스의 여인 Tr?chiniai》 《필로크테테스 Philoktetes》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 Oidipous epi Kol?n?i》인데,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는 원숙기에 속하는 것이지만 《아이아스》와 《안티고네》만은 중기의 특징을 남기고 있다.
이 밖에 사티로스극(劇) 《추적자》 외에 많은 단편이 남아 있다. 한편 배경화를 고안하기도 하고 소도구를 채용하는 등 상연 형식도 연구하였으며, 합창단을 종전의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또 배우도 종전의 2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 3명의 배우의 대화를 통하여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그들의 성격이 서로 충돌하고, 보복하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복선(伏線)을 교묘하게 배치해 가면서 비극적인 긴박감으로 끌어올려 기막히게 묘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포클레스 [Sophocles] (두산백과) 참조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와 함께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으로 테베의 저주받은 한 왕가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의 힘을 초월해있는 운명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그리스의 테베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다. 수많은 백성들이 죽는 것을 보고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였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였으나 마녀 스핑크스를 죽이고 그 공에 의하여 공석중이던 왕위에 올랐고 선왕 라이오스의 왕비였던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신하 크리온이 등장하여 이 괴로움을 구하는 길은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추방하는 길 밖에 없다고 알리는 것이었다. 그 말에 따라 오이디푸스는 범인을 찾으려 했으나 좀처럼 그 범인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이상스러운 불안에 사로잡힌 오이디푸스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신을 괴롭혀온 불길한 예언을 생각해 냈다. 그 예언이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운명이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따져 보니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에게도 자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으리라는 신탁(?託)이 있어 그들은 그 아이를 카타이론 산에 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수수께끼는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첫째, 자기는 코린토스의 왕자가 아닌가? 그런데도 오이디푸스는 고민했다. 다행히 라이오스 왕 살해 당시의 목격자가 살아 있어서 그를 찾아 물어보면 자연히 수수께끼는 풀릴 일이었다. 거기에 뜻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의 말에 의하면 코린토스 왕이 돌아가셨으며 오이디푸스가 그 후계자로 등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사자는 놀랄 만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오이디푸스는 원래 코린토스 사람이 아니요 테베 태생이라는 것, 더구나 라이오스의 자식으로서 갓난아이 때 산에 버린 것을 데려다 길렀다는 것이었다. 곧 선왕 라이오스의 최후 목격자가 등장하여 막이 내려진다. 오이디푸스가 범인이었다. 즉, 그 자신이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절망과 비탄으로 인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는 이오카스테, 자신의 무지를 분노하고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 자신의 두 분을 찔러버리는 오이디푸스, 이렇게 비극은 그 막을 내린다.
이 작품에는 인간은 항상 운명에 순종해야 하며 운명을 피하려고 할수록 더욱 거기에 얽매일 수 있다는 것이 시사되어 있을 뿐 왜 오이디푸스에게 그렇게도 가혹한 운명이 주어졌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테베에 창궐하는 역병은 신이 내린 벌로서 간주되고 신들을 달래기 위해 오이디푸스가 테베로부터 추방되지만 아무도 신들이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왜 그렇게 정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인간에게 내려진 부당한 재난조차도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신이 주관하는 우주 질서의 일부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러한 힘이 인간의 노력이나 이성의 영역 밖에서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는 불안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인간 존재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2교시 수필반
허순애님의 <지금>
일찌감치 에세이문학을 통해 등단하시고 10년 가까이 문학 강의를 통해 단련되신 허순애 선생님의 첫
작품으로 문장의 구성과 짜임새가 예사롭지 않고 매우 정확한 글이라는 호평이 내려진 글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손녀에게 뜻 깊은 첫 돌 선물이 되시기를 모두들 기원합니다.
신선숙님의 <돈과 딸>
재미있는 소재의 글로 중복되는 부분의 정리와 주제의 사회화 과정이 첨가된다면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글이 되겠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조선근님의 <노르망디 바랑주빌 성 발레리성당>
지구촌 나그네에 포커스를 맞춰 10 여년 만에 집필하셨다는 기행문으로 좋은 문장력과 표현이 뛰어나지만 글의 흐름을 조금 다듬어 주신다면 더 빛나는 글이 되겠다는 관심어린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3교시 티타임
오늘의 티타임은 성필선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따뜻한 뱅쇼와 츄러스를 푸짐하게 안겨 주셨습니다. 부실한 점심식사를 하고 오신 반장님께서 어찌나 맛있게 츄러스를 드시던지요^^*
1교시에 댁에서 직접 수확하신 천연 무공해 복숭아를 골고루 나눠주신 허순애 선생님께도 늦게나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태풍 찬홈이 몰고온 후끈한 주말을 보내고 맞은 오늘 수업이 마침 초복이었지요?
이제부터 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 올 것 같은데 모쪼록 건강관리에 유념하시어 힘겹지 않은 여름을 모두들
보내셨으면 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시고 담 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