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서 나는 글공부를 한다네.
지난 가을 계곡에서는 투명하면서도 서늘한 문장을 익혔지만
올 여름 계곡에서는 깊고 활달한 문체를 배운다네.
숲속상상 마당에서는 한참, 새들이 낭독회를 열고
흘러내리는 그늘로 더욱 파래진 못에서는 열목어, 버들치들이
지느러미 붓체로 시문을 짓고 있더군.
구름 서넛만이 유유자적하며 고개 끄덕이고 있더군.
내 미래의 문장은 계곡에서 탄생한다네.
이재무 스승님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시입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새들도 낭독을 하게하고
버들치들이 지느러미 붓체로 시도 짓게 합니다.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은 시가 아닙니다.
거짓 속의 진실이 시입니다.
이것이 문학의 속성이지요.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다큐영화도 사실은 감독에 의해 재구성되었습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 또한 사색적이고 연약한 이순신을 그렸기에
특별한 소설이 되었고 대박을 터뜨린 것이지요.
가장 사실에 가깝다는 수필도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상상력에서 촉발되는 시적 진실이 있어야만 문학이 됩니다.
‘빗소리에서 비는 놔두고 소리만 따서 양동이 또는 욕조에 넣어서 세수를 한다.’,
‘풀벌레 울음소리만 따서 유기농 화장품을 만든다.’ 등등의 상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논리, 체계가 없는 거짓말은 공상이지만
논리, 체계가 있는 거짓말은 상상입니다,
무서운 나이 / 이재무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내적 아이러니를 쓴 시입니다.
과거의 나는 시적 인간이었지요.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논리적 인간이 됩니다.
아이는 순수해서 잡초에도 물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력이 생겨서 꽃과 잡초를 가릅니다.
우리는 호사 취미 때문에 잡초를 뽑고 예쁜 꽃을 심습니다.
모든 역사가 이렇게 이어져왔습니다.
늘 가진 자, 힘센 민족이 힘없는 자, 약소민족을 침범하고 짓밟았지요.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여기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으로 분별하면 좋을 것 같지만
번개는 단순히 대기 중의 전류방전이라고만 생각하기보다
내 죄에 대한 벌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내 몸 속에는 / 이재무
두 마리 서로 다른
짐승과 동물이 산다
그러나 이들이 사이좋게
이웃하며 산 적은 없다
순종이 안에서 한가롭게 어슬렁대면
야만은 밖에서 갈 데 없이 배회를 하고
광기가 저 홀로 미쳐 날뛰면
복종은 천애 고아가 되어 눈치만 본다
개와 늑대
이 오랜 유전의 숙명을 어쩔 수 없다
사랑의 손길에 길들여진
순한 귀와 탐스런 꼬리
분노의 발길질에도 순응을 모르는
성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
내 낡은 집 속에는
도무지 양보를 모른 채 으르렁대는
두 마리 서로 다른
인내와 충동이 산다
짐승은 길들여 진 것이고
동물은 길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순종, 복종, 개, 인내는 짐승을
야만, 광기, 늑대, 충동은 동물을 말합니다.
내 낡은 집은 늙은 내 몸이지요.
훌륭한 시는 단일적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만으로 씌어져서는 안 됩니다.
양가적 감정들이 갈등과 긴장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지요.
역설과 아이러니를 쓰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모순되는 감정들의 대립을 잘 나타내는 것도 좋습니다.
항상 아름답고 긍정적인 정서로만 써서는 안 됩니다.
서정주의 시 <문둥이>는 혐오스런 감정이지만
시인의 정서적 반응을 형상화하여서 성공했습니다.
독자는 작가가 똑똑한 것을 싫어합니다.
작가의 무너진 모습과 상처를 보고 위로를 받고 공감을 하며
나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승리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읽히는 글이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모두 엄살쟁이입니다.
한주를 쉬고 만난 우리 일산반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무척 반가워했지요.
시론강의는 역시 열강이었고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하시는
스승님의 끊이지 않는 열망은 6시까지 계속 되었지요.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아는 우리들은
열심히 기억하고 연마하여 상상력이 깃들고 형상화가 잘 된 글을 써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학습에 의해서 굳어진 관념깨기가 필수이지요.
내일이 지나면 7월입니다.
여름이 깊어지는 새달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매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