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의 수필은 뛰어나지 않은 구성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문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일반 수필에서는 맛보기 힘든 감칠맛이 있기에 탁월하지요.
우리는 시의 장점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괜스레 어려운 시를 읽으며 고문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쉽게 읽히는 도종환, 나희덕, 손택수, 안도현
특히 우리 이재무 시인님의 시를 읽는 게 좋습니다.
가장 좋은 수필은 남을 울리게 하는 수필입니다.
진솔감이 들어가야 울릴 수 있는데 쉽지 않지요.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역사란 무엇인가?>에는
이집트 왕 프삼메니투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삼메니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지고 포로가 됩니다.
페르시아 왕은 이 포로에게 최대의 굴욕을 주기 위해
페르시아 군대가 승리 행진을 하는 길가에 그를 세워두었습니다.
프삼메니투스는 자기 딸이 노예가 되어 물항아리를 들고
우물로 끌려가는 장면을 보아야 하고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도 자기 눈으로 목격해야 했습니다.
잡혀온 이집트인들은 대성통곡했지만
프삼메니투스는 돌처럼 꼼짝 않고 서서 동요하지 않았지요.
그러던 그였지만 나이 많은 시종 하나가
남루한 모습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프삼메니투스는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딸과 아들의 굴욕 앞에 미동도 않던 왕이 어째서
늙은 시종의 운명 앞에서는 무너졌을까요?
헤로도투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몽테뉴는 자기 시대 추기경 실화로 그 이유를 추측했습니다.
추기경의 친동생이 강도의 칼에 찔려 죽고 형도 비명횡사해도 울지 않던 그가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는 통곡을 했습니다.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유추를 했지요.
첫째, 저수지의 수위에 비유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저수지가 반쯤 찬 것은 딸에 대한 슬픔,
꽉 찬 것은 아들에 대한 슬픔을 비유합니다.
그러나 빗물이 조금 더 오면 둑은 결국 무너지지요.
참다 참다 마지막 슬픔이 찾아오면
작은 것일지언정 무너지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 무대의 힘입니다.
무대화되어서 즉 연극, 영화, 드라마로 객관화가 되면
관객은 더 슬픔에 빠진다는 논리입니다.
실제 경험할 때보다 우리는 무대화되었을 때
더 눈물을 흘리거나 열광합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봤을 때 모두 눈물을 흘린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입니다.
내가 쓴 글에 주석, 설명,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친 감정개입은 생명성이 없어서 독자가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몇 천 년을 살아남는 이야기란 헤로도투스처럼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신문기사는 정보 목적만 달성되면 다시 읽지 않지만
유명한 문학작품은 두고두고 읽힙니다.
비유가 있는 글이 오랫동안 읽히는 글이 됩니다.
비유를 보면 작가 전부를 알 수 있습니다.
개성적인 비유를 쓰세요.
‘여름이 되면 살구씨처럼 단단해진 고요’라고 스승님은 쓰셨지요.
비유는 작가만의 경험에서 나와야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스승님은 ‘에머랄드처럼 반짝인다’가 아닌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다’는 비유를 써야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플로베르는 ‘일물일어론’을 역설했지요.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단어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 하나의 단어를 찾기 위해 골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소설가도 이럴진대 짧은 수필을 쓰는 우리는 더 명심해야 할 말이 아닐까요?
아마추어일수록 자신에게 너그럽습니다.
잘 쓴 것 같은데..... 고칠 게 어디 있다고..... 하며 뿌듯해 하기보다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퇴고를 해야 좋은 글이 나옵니다.
여름학기 첫날은 6월의 첫날과 동시에 시작해서 더 산뜻했습니다.
5월부터 시작된 폭염에 올여름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더위가 힘들게 느껴질수록 수필공부에 매진한다면
여름의 끝자락에선 뿌듯함의 미소를 띄울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들수록 나를 더 매진시켜보는 것.
서유럽 여행을 다녀오신 인영샘이 달콤 쌉싸르한 초콜렛과 함께 오셔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정미 총무님도 여행에서 돌아오셔서 다음 주 간식을 책임지시기로......
우리 모두 여름학기도 변함없이 잘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