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학기 마지막 수업이 있었습니다. 한 학기의 마무리인데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는 언제나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배움의 길에서 결국엔 곁길을 떠올리며 진도를 나가면 된다는 선생님 말씀은 위로가 됩니다. 저 오늘 제대로 곁길로 빠졌다가 왔거든요. 수업 중에 말씀하신 ‘그 땅 그 하늘’ 이라는 시에 꽂혔지 뭡니까. 영풍문고와 교보문고로 발품을 팔았는데, 아쉽게도 <<진도 아리랑>> 이라는 시집은 재고가 없어서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리저리 헤매다 돌아 와서 후기를 쓴다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겨우 50점은 되는 건가요? 하하하! 50점이면 낙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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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줄이 사탕처럼 달콤하게 엮어져 나오던 작가들 ? 이정록, 한창훈, 유용주, 박영근, 이문구, 손택수, 전상국 -의 이야기는 곁길에서 즐기기에 충분히 재미있지 않았나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런 지나간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억하시는 걸까요? 새삼 궁금해집니다. 박상률 선생님처럼 저녁을 거르거나, 아니면 30년이상 한 이발소를 다니면 가능한 걸까요?
* 교사는 학생들의 재능을 발견해 주고, 상처를 안주는 것이라고 하셨죠.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참으로 객관적인 시각과 잣대를 갖기가 힘든 만큼, 학창시절 뿐 아니라 인생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 수필은 시와 소설의 경계에 있으므로 경계에서 꽃을 피우려면, 늘 강조하셨듯이 사건의 형상화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아닌 잡글이 된다니, 헉! 겁이 납니다.
* '죽음’과 같은 소재로 글을 쓸 경우에는 시간이 좀 흐른 뒤, 객관적 거리가 생겼을 때 돌아보며 글을 쓰게 된다는 말씀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여러 번 걸러진 후에는 맑은 것이 남을 테니까요.
* 작가는 잘 알기에 무심코 넘어가지만, 실상 독자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는 어디까지 얼마만큼 친절해야 하는 걸까요?
*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진실을 얘기하는 반면,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가공이 필요합니다. 가공을 통해 글이 살아나면 된다는 것이지요.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뿐이라 하셨지요. 그러니, 살아있는 오늘 ‘하루’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산문5월호를 마치느라, 작품 합평은 다음시간으로 넘어갑니다.
수업엔 못 오셨지만, 맛난 떡 보내주신 옥화재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12일간의 긴 여행에서 돌아오신 후, 3주만에 수업에 오신 이건형선생님께서 솜리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여주셨습니다. 긴 여행에 몸살을 앓느라 힘드셨지요? 한 주 방학하는 동안 기운을 회복하시길! 아자!!
일도 많아 늘 바쁘신 임미숙총무님께서 식사 후, 커피까지 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27일) 방학이고요, 6월 3일 수요일에 여름학기 첫 수업이 있습니다.
오늘 못 오신 분들, 건강한 방학 보내고 유월에 뵙겠습니다.
'쉰다'에 충실합시다!
배창희 작곡, 김진영이 노래했다는 박상률 선생님의 시 ‘그 땅 그 하늘’ 입니다.
그 땅 그 하늘
-박상률
물은 흘러가 버려도
땅은 떠나지 않고
바람은 불다 물러가도
하늘은 그대로 얹혀있네
그 땅 딛고 살던 고무신은
흰 코 앞세워 떠나고
그 하늘 이고 살던 보릿대 모자는
뒷꼭지 뚫린채 떠나지만
누구라서
그 땅 그 하늘
끝내 버릴 수 있으랴
떠나면 떠나 있는 그 곳에
남으면 앉아 있는 그 곳에
보배땅 숨소리
흙빛으로 보듬고
하늘 저 하늘
두루두루 이고 지고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랑 가락에
지친 몸을 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