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이재무
스프링의 힘은 반동, 밀도의 크기는 속도에 비례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몸속에 스프링을 지니고 있다
만발하는 꽃들도 줄기와 가지 속 샘물이 피운 것이다.
갓 태어난 스프링이 뿜어내던 싱싱한 탄력은 얼마나 눈부셨든가
누르는 힘 크면 클수록 되받아 솟구쳐 오르는
쾌감으로 무거운 세상 경쾌하게 들어 올렸지
그러나 영원한 반동을 사는 스프링은 없다
탄력의 숨 놓아야 할 때가 온다
새로운 봄으로 태어나기 위해 태초의
자연, 캄캄한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스프링은 봄, 탄력, 생명을 의미합니다.
탄력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지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의 스프링이 죽어가는 것.
늙어가면서 우리 몸의 이음새인 관절이 느슨해집니다.
육체뿐이 아니지요.
마음의 탄력 또한 소실되어 갑니다.
모든 꽃들은 젊습니다. 심지어 고목에 피는 꽃들조차도 그렇지요.
그늘 또한 날마다 태어나기에 싱싱합니다.
꽃, 그늘, 잎은 욕망입니다.
사람의 몸은 늙어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은 늙지 않기 때문이지요.
잃어가는 몸의 탄력을 위하여 사람들은
보톡스, 필러 등 시술을 받아 젊음을 유지하려하지만
마음의 탄력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몸은 삼십대이지만 고루한 사고방식으로
마음의 탄력을 잃은 애늙은이가 많은 사회는 늙은 사회입니다,
마음의 탄력을 회복할 때 관계의 탄력도 옵니다.
권태기란 사람 사이의 탄력을 잃은 것을 뜻합니다.
시골길을 걸으면 바람이 내 몸으로 들어와
공처럼 통통 튕기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는 잃었던 탄력이 찾아오니까요.
이재무 스승님의 수필 <아버지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내게 가난과 다혈질을 물려주신 아버지’,
‘온 몸을 필기도구 삼아 뜨겁게, 미완의 두꺼운 책을 쓰다 가신 아버지’
등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통해 거인과도 같은 아버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새끼줄로 묶은 고등어 한 손을 들고 노래 부르며 오시는 아버지를 보고
‘언제나 노래가 먼저 아버지보다 길을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달밤 가락이 비틀비틀 서너 발짝 먼저 걸어오면
아버지의 팔자걸음이 가락의 안내를 받아 따라오는
그 기이한 풍경이라니!‘라는 시적 표현으로 묘사했습니다.
‘달빛이 그려내는 수묵화와 아버지의 옛 노래 가락은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내고 있었다.’는 문장도 아름답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는 어머니에 대한 글입니다.
부모의 이른 죽음이 애닯아
‘부모는 자식들이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살아줄 의무가 있다‘는 명언을 쓰신 스승님은 조문을 갈 때마다
고인의 나이를 알아본다고 합니다.
이 글에서도 ‘할머니의 헛기침 소리가 방문을 빠져나와 낡은 마루를 서성거렸다‘,
’비의 이빨들이 크게 물었다‘,
‘물속으로 날아든 돌처럼 마을이 밤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으면
내 마음을 무등 태운 그 소리가, 어둠의 색깔과 대비되어
또렷해진 하얀 모습으로 사립을 나선다.‘ 등등의 시적 표현이 눈에 띕니다.
글쟁이는 잔인합니다.
자신의 환부를 다 드러내는 글쟁이는 자신의 상처를 팔아먹는 존재입니다.
정서적 체험, 가상 체험, 상상 체험도 체험입니다.
몸으로 느낀 체험이 아니더라도 내가 느끼면 절실합니다.
경험이 없다고 포기하기보다 절절한 상상을 해보는 것도 글쓰기 자세의 하나가 아닐런지요.
봄 학기가 오늘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열강을 멈추지 않으신 스승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여름 학기가 시작되는 6월엔 또 어떤 신입분들이 오실지 기대해 봅니다.
한 주 쉬고 다시 뵐 때까지 다들 건강하시고
탄력이 가득한 통통 튕기는 모습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