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 /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 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아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
여자는 생물학적인 삼십 세를 기점으로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바뀐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많은 시인들이 삼십 세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그 유명한 최영미의 <서른살 잔치는 끝났다>도 있지요.
예술가의 DNA는 절망적, 부정적입니다.
보통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되지요.
문학은 불행을 먹고 사는 행위라 했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서 문학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문학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불행해져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에
글을 못 쓰더라도 차라리 행복하겠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지요.
그러나 크기만 다를 뿐 이미 고해라는 삶에 빠진 우리들
누가 감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여자는 삼십 살 이전에는 실존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였지만
결혼 후 삼십 세가 넘으면 어머니, 아내의 의무로 살아야 하기에 자기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삼십 세가 되면 죽는다고 외칩니다.
인간만이 실존적 고독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자의식적인 존재로 자신을 타자화하여 성찰의 기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죠.
순수와 이별을 뜻하는 흰색이 이 시에서는 죽음을 뜻합니다.
행복행복 하다가 항복이 나오는 것은 역설입니다.
마지막 줄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는
‘기쁘다 구주오셨네’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반면 남자들에게는 사십 대가 분기점이 됩니다.
남자에게 마흔은 집도 장만하고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적막감이 밀려오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주변을 돌아보며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지며 동창회에 나가게 됩니다.
마흔 /이재무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40은 불혹, 50은 지천명, 60은 이순, 70은 종신이라고
공자는 말씀하셨지만
모두 반어법입니다.
40에야말로 유혹이 많으며
나이가 들수록 하늘의 소리를 듣거나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불통이 되기 쉽지요,
이를 경계하라고 공자님은 반어법을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종교에서 오체투지 등과 같은 행동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은 신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몸이 편하면 정신은 탁해집니다.
노동자층이 더 도덕적인 이유입니다.
중산층은 한가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타락하기가 더 쉽습니다.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려치는 번개여
모든 무생물들조차도 그리움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리움 때문에 새가 날고
번개가 내리칩니다.
백석은 <나타샤와 당나귀>에서 내가 그리워 하니 눈이 온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이 오니 그리움이 솟구친다고 하지요.
바로 이것이 시인의 오만함입니다.
시인의 특권이기도 하지요.
함민복은 수필에서 ‘울음이 휘었다’,‘옻이 몸에 들어와 보름을 머문다’,
’잠도 끊겼다‘등등의 시적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등등의 상상력도 마음껏 펼쳤습니다.
다 우리가 배워야할 표현들이지요.
천둥소리 / 함민복
소리에 어른이신 저 큰 말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그래 살아있네
소리 중 제일 크기 때문에 천둥소리를 소리의 어른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별들이 켜졌다는 등의 표현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빗소리만 따 모아서 양동이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라만으로 얼굴, 몸을 닦을 수 있어야 하고요.
벌레 소리를 따 모아서 술을 빚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청량한 벌레소리로 담근 술맛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 하늘을 쓸더니 죽어 땅을 쓰는 수수빗자루,
내 몸도 쓸어 주어, 내 몸이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
같은 시인으로서도 스승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함민복 시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수수모가지는 빗자루 같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쓸더니
죽어서는 정말 빗자루가 되어 땅을 쓰는 수수를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요?
억새꽃과 붓꽃은 붓같이 생겼지요.
가을 들녂에는 수만 자루의 붓이 허공을 백지삼아 일필휘지를 합니다.
새들이 읽고 똥을 싸 덩달아 부호를 씁니다.
아! 시인의 상상력은 무죄입니다.
가정의 달 오월은 아직 한창이고 강의실은 빈 자리로 호젓했습니다.
인영샘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총무님도 다음 주는 여행을 가신답니다.
다음 주면 오월은 종강이지요.
그동안 결석했던 모든 분들과 함께 종강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