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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하늘을 쓸더니 죽어 땅을 쓰는 수수빗자루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5-05-11 19:23    조회 : 4,022

삼십세 /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 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아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

 

 

여자는 생물학적인 삼십 세를 기점으로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바뀐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많은 시인들이 삼십 세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그 유명한 최영미의 <서른살 잔치는 끝났다>도 있지요.

예술가의 DNA는 절망적, 부정적입니다.

보통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되지요.

문학은 불행을 먹고 사는 행위라 했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서 문학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문학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불행해져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에

글을 못 쓰더라도 차라리 행복하겠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지요.

그러나 크기만 다를 뿐 이미 고해라는 삶에 빠진 우리들

누가 감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여자는 삼십 살 이전에는 실존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였지만

결혼 후 삼십 세가 넘으면 어머니, 아내의 의무로 살아야 하기에 자기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삼십 세가 되면 죽는다고 외칩니다.

인간만이 실존적 고독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자의식적인 존재로 자신을 타자화하여 성찰의 기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죠.

순수와 이별을 뜻하는 흰색이 이 시에서는 죽음을 뜻합니다.

행복행복 하다가 항복이 나오는 것은 역설입니다.

마지막 줄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

기쁘다 구주오셨네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반면 남자들에게는 사십 대가 분기점이 됩니다.

남자에게 마흔은 집도 장만하고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적막감이 밀려오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주변을 돌아보며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지며 동창회에 나가게 됩니다.

 

마흔 /이재무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40은 불혹, 50은 지천명, 60은 이순, 70은 종신이라고

공자는 말씀하셨지만

모두 반어법입니다.

40에야말로 유혹이 많으며

나이가 들수록 하늘의 소리를 듣거나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불통이 되기 쉽지요,

이를 경계하라고 공자님은 반어법을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종교에서 오체투지 등과 같은 행동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은 신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몸이 편하면 정신은 탁해집니다.

노동자층이 더 도덕적인 이유입니다.

중산층은 한가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타락하기가 더 쉽습니다.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려치는 번개여

 

모든 무생물들조차도 그리움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리움 때문에 새가 날고

번개가 내리칩니다.

백석은 <나타샤와 당나귀>에서 내가 그리워 하니 눈이 온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이 오니 그리움이 솟구친다고 하지요.

바로 이것이 시인의 오만함입니다.

시인의 특권이기도 하지요.

 

함민복은 수필에서 울음이 휘었다’,‘옻이 몸에 들어와 보름을 머문다’,

잠도 끊겼다등등의 시적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등등의 상상력도 마음껏 펼쳤습니다.

다 우리가 배워야할 표현들이지요.

 

천둥소리 / 함민복

 

소리에 어른이신 저 큰 말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그래 살아있네

 

소리 중 제일 크기 때문에 천둥소리를 소리의 어른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별들이 켜졌다는 등의 표현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빗소리만 따 모아서 양동이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라만으로 얼굴, 몸을 닦을 수 있어야 하고요.

벌레 소리를 따 모아서 술을 빚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청량한 벌레소리로 담근 술맛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 하늘을 쓸더니 죽어 땅을 쓰는 수수빗자루,

내 몸도 쓸어 주어, 내 몸이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

 

같은 시인으로서도 스승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함민복 시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수수모가지는 빗자루 같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쓸더니

죽어서는 정말 빗자루가 되어 땅을 쓰는 수수를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요?

억새꽃과 붓꽃은 붓같이 생겼지요.

가을 들녂에는 수만 자루의 붓이 허공을 백지삼아 일필휘지를 합니다.

새들이 읽고 똥을 싸 덩달아 부호를 씁니다.

! 시인의 상상력은 무죄입니다.

가정의 달 오월은 아직 한창이고 강의실은 빈 자리로 호젓했습니다.

인영샘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총무님도 다음 주는 여행을 가신답니다.

다음 주면 오월은 종강이지요.

그동안 결석했던 모든 분들과 함께 종강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김지연   15-05-11 19:55
    
외로워야 글이 써진다!
뭘 선택해야 할까요....
     
한지황   15-05-11 21:53
    
글쟁이의 딜레마? ㅎ
삶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진미경   15-05-11 19:58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수업 시간이 흐르는 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교수님의 열강덕분입니다.

인간만이 자신을 타자화시켜서 성찰의 기제로 삼을 줄 안다고 배웠습니다.
매일 깨어나 사유의 목록이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문우님의 빈 자리가 많았습니다.
담 주에는 모두 뵈었으면 합니다.
반장님이 가져오신 스페인 초콜릿은 유독 달콤쌉싸름했습니다.
댕큐 베리마치입니다.
     
한지황   15-05-11 22:02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드디어 울음을 떠뜨리고
요가를 하러가는 도중 튼튼한 우산까지도
뒤집어지는 불상사가 있었지요.
우리 인생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함께 우산을 쓰고 갈 벗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김선희   15-05-11 20:08
    
제가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의 시들  완전 감동 ~~
5월엔 이래저래 빠질날이 많아 미안한 맘이에요
반장님 후기로 공부할수 있어서 조아요
수고에 감사^^
담주엔 모두들 뵐수 있길 바랍니다
     
한지황   15-05-11 22:06
    
태생적으로 착한 유전인자를 지닌 시인이어서일까요?
함민복시인의 시와 수필은 따스함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감동적이지요.
우리 스승님도 울게 했다는 수필로 공부하니 시간이 더 잘 가는 것 같았어요.
담주엔 선희샘의  모습이 강의실을 환하게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정정미   15-05-12 13:30
    
반장님이 오시니 참 좋네요.
독토모임도 열리고 커피와 쵸콜릿까지...다 맛있었어요. 감사!
어제 빗소리가 오늘은 바람소리로 윙윙거리는 게  봄이 맞나 싶어요.
이런 날 하늘과 땅을 쓰는 수숫대를 떠올리며 함민복 수필집을 읽으면 딱이겠어요.
     
한지황   15-05-12 19:45
    
저도 따스한 일산반으로 복귀하니  참 좋아요.
초록의 자켓을 입은 총무님이  푸릇 푸릇  영글어져가는 신록을 보는 듯 눈에 확 띄었지요.
가족들과 미국여행 질 하고 오세요.
 따님의 졸업도 축하합니다.
최영자   15-05-12 16:59
    
날씨가 다시 추워졌어요.
빨아서 들여 놓을려고 했던 스웨터를 다시 꺼내 입었네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몰아낸  노을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내 몸은 변하는 기온에 적응을 못해 옷으로 감싸기에 급급하구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푸른 잎들이 차가운 기온과 저 세찬 바람을 잘 견뎌내길 바라는 맘입니다.
이 시련이 끝나면 푸르게 푸르게 잘 자라겠지요.

반장님. 후기로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지황   15-05-12 19:57
    
요즘은 사계절 옷들을 디 끼고 살아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부지런히 옷 정리를 하기엔 날씨 변덕이 너무 심하니까요.
내일은 따스한 햇살이 온누리를 어루만져주기를.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도 환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영자샘의 옷차림도 하늘하늘 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