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수필바운스(11. 19, 목)
- 우리 수필, 무엇이 문제인가?
1. 우리 수필의 문제점
가. 읽히지 않는다!
왜 수필이 읽히지 않는 것일까? 한 마디로 재미가 없어서이다! 장르적 재미(선정적, 말초적, 자극적인, 그로테스크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상상력의 부재 2)흥미 없는 소재의 채택 3)주제의식 결여(사유와 지적 깊이 미흡) 4)상투적 표현 방식(뻔한 전개와 결말) 5)문장력 부족(정확하지 않은 문장, 논리의 어긋남), 그밖에 교훈적 논조, 혼란스러운 미사여구와 수식어 사용이 서로 얽혀 읽어도 남는 것이 없고 감동이 없으니 누가 수필을 읽겠는가? 그렇게 된 연유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처방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시리즈로 공부해보자!(오늘은 상상력 부족에 대해서만)
나. 상상력의 미흡
- 우선 ‘숨김없이 진실 되게 있는 그대로 써야한다’는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있는 그대로’ 슬 수도 없다. 쓰려고 하는 모든 내용은 펜을 잡는 순간(좌판에 앉는 순간) 과거의 일이 된다. 즉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모호하고 자의적인 것이다. 기억은 습작되기도 하고 휘발되기도 한다. 게다가 기억(생각이나 체험)을 표출하는 수단과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언어(문자) 자체가 불완전하다.
-어차피 내가 보여주려는 모든 내용은 재구성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발생한 실제의 일이나 느낌, 관점을 정확히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시’나 ‘소설’처럼 전적인 허구에 의존하면 작위적인 느낌을 주어 석연치 않을 뿐더러 수필 장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 그러면 어떻게?
- ‘상상력의 도입’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허구(Fiction)나 왜곡(Manipulation)과 수필의 상상력(Imagination)은 어떻게 다른가? 수필에서는 ‘나와 관련된, 내가 개입하는’ 사건의 재구성(Reconstruction), 문학적 진실(감동) 추구를 위한 선의의 조정(Goodwill Adjustment)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느 선까지 상상이 허용되며 실제 사례는 어떠한가? 또 상상력은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 걸까?(다음 기회에 다룸)
2. 회원 글 합평
가. 연줄(박도원)
잘 수정된 글이다. 야사에서 소재를 취해 현 세태와 연결한 점이 좋다. 인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관계로 연줄을 댄다고 하는 의미가 연을 날리는 연줄 값 대기에서 왔음을 알게 하는 지식 정보의 전달도 새롭다. 황진이의 가야금 연주를 인용하여 악기의 줄이 화음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매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작가가 우연한 기회에 불사(佛事)이 참여하여 알게 된 문수동자상 일화 역시 인연의 관계로 엮이는 연맥일 가능성을 작가의 그림 그리기와 결부시켜 의미를 강화 시켰다. 마지막 문장은 독자의 몫으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 아버지의 가을(강진후)
생일 날 봉투에 든 ‘헐벗은’ 닭 한 마리를 사들고 새벽에 불쑥 찾아온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며칠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 고마움을 전하지 못함이 회한으로 남아 텅 빈 허공만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녹아있다. 폴 앵카(Paul Anka)의 <파파(Papa)>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절절함을 느끼게 한다.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곁에 계실 것 같았지만 이제는 안 계신 아버지. 안해영님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파파> 노래에 서강반원들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으래. 또 다른 노래 <크레이즈 러브>는 흐름과 동떨어져 몰입을 방해하니 삭제 요망.
다. 선물(신현순)
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우수한 ‘이야기+사유’ 수필이다. 장애 아들을 둔 할머니에게 노인대학에서 해오던 대로 대접해 드린 것뿐이었는데 부산을 떠날 때 할머니가 건네 준 꼬깃꼬깃 접은 삼만 원의 선물에 얽힌 글이다. 현대인에게 실종된 배려의 중요성이 경험에서 우러난 가치로 독자를 끌어 들인다. ‘도회 빛으로 변하는 마음에 실개천 하나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나, ‘간이역 같은 부산에서 새벽을 느끼게 한 할머니의 정’ 같은 섬세한 표현이 깊은 사유와 정감을 느끼게 한다. 겹치는 수식어와 아들의 ‘mp3 사건’은 수정,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서강반 동정
깊은 사유의 글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계절 때문은 아니겠지요? 우리 서강반 샘들의 치열한 향학열 덕분에 부쩍 글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수업 후 뒤풀이 마당은 늘 화기애애하다. 세 분 ‘젊은 어르신’(누구요?)이 있어 든든함을 더한다. 연탄불에 익어가는 안주보다 회원들과 교수님 간의 깊어가는 대화가 깃든 뒤풀이자리다. 거리엔 노란 은행잎이 이리저리 뒤척이고 화덕에서 지글 거리는 안주의 구수함은 입맛을 붙잡는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더 좋은 글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