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이번 주에도 신기소에서 또 다른 여행을 다녀오신 샘들과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매 주 문화센터 입구로 12시 30분까지 도착하시면 교수님과 함께 다양한 메뉴의 즐거운 식사를
함께 나누실 수 있어요^^*
1교시 : 명작반 제 7강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6.6-1955.8.12)-독일 고전주의의 괴테에 비견되는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주자인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독일 북부의 한자동맹 소속 도시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타계했다. 뤼베크의 참정의원을 지낸 아버지로부터는 냉철한 사고와 도덕적인 기질을 이어받았고, 독일인과 브라질인의 혼혈인 어머니로부터는 감각적이고 분방한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이것이 바로 ‘시민성’과 ‘예술성’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이원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안고 태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은 뮌헨으로 이주했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잠시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지내다가 뮌헨 대학에서 청강하면서 문학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청년 시절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였다. 1895년 7월 토마스 만은 당시 형 하인리히 만이 체류하던 이탈리아로 최초의 외국여행을 시도했다. 10월에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뮌헨 공과대학에서 역사, 미술사, 문학사 등을 청강하며 1년 뒤인 1896년 말 <짐플리치시무스>지(誌)에 실린 단편 <<행복에의 의지>>를 탈고했다. 1896년 10월 토마스 만은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우선 베니스에 들른 후 로마를 거쳐 나폴리를 여행했고 마지막에 로마에서 형 하인리히와 재회했다. 이때 토마스 만은 베를린의 피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한 잡지에 단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보냈다. 잡지사에서는 그 소설을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관하고 있는 다른 소설들 모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토마스 만은 <<환멸>> <<어릿광대>>, <<토비아스 민더니켈>> 등의 작품을 보내주었는데, 출판인 사무엘 피셔는 이 소설들에 무척 만족해했고 이제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토마스 만에게 권유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최초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토니오라는 한 혼혈아를 통해 시민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예술가의 숙명을 그린 단편 <<토니오 크뢰거』>>발표하고, 비슷한 시기에 그 주제 역시 시민성과 예술성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한 <<트리스탄>>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아이러니 수법이 특히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 단편이다. 1929년에는 “특히 세월의 흐름속에서 점점 더 확고히 고전적 작품으로 인정받은 장편소설 <<부덴부르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상을 수상한다. 괴테 서거 100주년인 1932년에 즈음하여 토마스 만은 <시민시대의 대표자로서의 괴테>, <작가로서의 괴테>라는 강연을 하면서 인류애의 고귀함을 역설한다. 이듬해 1월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자,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후 국외로 강연 여행을 떠나 그대로 망명한다. 스위스 취리히 호반에 거처를 정한 후, 당분간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른 망명 문학가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토마스 만은 독일문화에 깊숙이 뿌리박은 가장 독일적인 작가이면서도 미국으로 망명했고, 전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도 분단된 독일의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고 스위스에 안식처를 정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토니오 크뢰거>>-1902년 완성, 발표한 작품으로 작가 자신이 젊은 시절의 최우수작으로 평가하기도 한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영사의 아들이자 열네 살의 문학소년 토니오 크뢰거는 금발과 파란눈을 지닌 동급생 한스를 선망한다. 하지만 한스는 독특한 한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 16세가 된 토니오는 잉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도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시민적 삶을 대변하는 그들에 대한 토니오의 사랑에는 부러움뿐만 아니라 멸시의 감정이 담겨 있다. 평범한 시민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토니오는 탐미적 예술을 추구하던 습작기를 거쳐 작가가 된다. 창작의 외길만을 추구했지만 아직도 건강한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토니오는 여자 친구 리자베타와 대화를 나누다가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길을 잘못 든 시민으로 토니오를 생각하고 있는 리자베타는 그에게서 삶에 대한 열망을 읽어낸다. 낯설게 변해 버린 고향을 13년만에 방문한 토니오는 자신의 생가와 한스의 집을 방문하며 아련한 그리움에 잠긴다. 토니오는 발트해를 거쳐 덴마크의 올스고르로 해상 여행을 떠난다. 어느 바닷가 호텔에 투숙한 토니오는 그곳에서 축제의 저녁에 한스와 잉에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낯선 존재가 되어 있었다. 토니오는 정신과 예술에 사로잡혀 무감감해지고 황폐해진 자신을 새롭게 인식한다. 이러한 자기인식 과정을 거친 토니오는 리자베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을 가슴에 품고 창작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전체 9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구성면에서 소나타의 악장 구성과 바그너의 주도동기 기법에 기초하고 있다.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에 내맡기는 토니어 크뢰거의 유미주의적 정신과 한스 한젠과 잉에보르크 홀름의 세속을 향한 시민성이 서로 대립한다. 시민세계의 속물성에 대한 멸시와 평범하고 건강한 생활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동요하는 토니오는 길을 잘못 든 시민이자 길을 잃고 헤메는 시민이다. 냉확한 정신과 소모적인 관능의 양극단 사이에서 내면적 갈등에 시달리던 토니오는 마침내 시민적 사랑이라는 중도적 길을 표방한다.
2교시 : 수필반
이영실님의 <그 짦았던 동행>, <마지막 휴식 마지막 소임> 그리고 신재우님의 세 작품을 합평하였습니다. 수필이라고 해서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거나 틀에 박힌 글을 쓸 필요가 없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면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알려 주시면서 형상적 인식 (사실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에 개념이나 범주에 의존하지 않고 예술적 형상에 의하여 본질을 인식하는 일)을 통해 작품의 예술성을 돋보이게 하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3교시 : 티타임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지만 테라스에 앉아 첫 합평 받으신 신재우 샘께서 사주신 츄러스와 따뜻한 커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송년회 장기자랑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가 있었어요. 수업에 결석하신 샘들께서도
다음 주에 좋은 의견 내주시면 십분 반영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가을 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더니 외출할 때마다 자꾸만 장롱 속 모직코트를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싸늘해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어제 수술한 친구 병문안 하고 오느라 수업후기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신 샘들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