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달동네 밥상머리
오랜만에 발걸음 해주신 임정희샘께서 미용사 자격증 취득하신 기념이라며 푸짐한 점심식사를 선물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종종 안부도 전해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생활에 묻혀 무심했던 저희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고 챙겨주시는 샘의 따뜻한 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비지니스로 바쁘시긴
하지만 2교시 수필수업을 함께 하시겠다 하시니 반갑고 기대됩니다. 자주 뵈어요 샘~
1교시 제5강 고리키의 성장소설 3부작
*Maxim Gorky (1868.3.28-1936.6.18)
1868년 3월 16일 러시아 볼가강 연안의 도시인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i Novgorod)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Aleksei Maksimovich Peshkov)이다. 아버지(막심 사바치예비치 페쉬코프)는 목수였고 어머니(바르바라 바실리예브)는 작은 염색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이었다. 고리키가 3세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가 재혼하여 모스크바로 떠나자 외할머니에게 의탁하여 성장하였다. 초급학교를 3년 다니다가 가난으로 중퇴하였으며 돈벌이를 위해 구두수선공, 제도사, 짐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고리키가 11세 때 사망하였다.
1880년 그가 12세가 되었을 때 집을 나와 살면서 각지를 방랑하며 떠돌이로 지냈다. 우연히 볼가강을 운항하는 화물선의 식당에 취업하여 주방일을 하게되었다. 그곳에서 같이 식당에서 일하는 퇴직한 사관출신의 요리사를 만나는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후일 고리끼는 그 퇴직사관이 자신의 첫번째 스승이라고 고백했다. 그와 생활하면서 학문과 문학에 눈뜨게 되고 독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타타르스탄의 수도인 카잔(Kazan)으로 가서 지하조직에서 활동하였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곳에서 활동하며 진보적인 혁명가들과 교류하였으며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더욱더 독서에 매진하였다. 특히 그는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열학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집회에 가담하였다. 고리키는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진보적인 지식을 가진 청년들과 만남에서 자신의 부족함에 절망하여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1887). 20세가 되어 친구이자 혁명가인 로마스를 따라 볼가강 연안을 끌라스노비도보로 이주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문에 고리키는 짜르 경찰과 보수파의 수배대상이 되어 쫗기다가 고향이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그동안 간간히 집필하였던 것을 그만두고 이후 5년 동안 러시아제국 전역을 도보로 여행하였다. 러시아제국이 처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며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때 자신의 처녀작 단편소설인 《마까르 추드라 Makar Chudra (Макар Чудра)》를 집필하였다. 늙은 두명의 집시를 주제로 한 소설이며 인간의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고리키는 이것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되며 이때부터 필명인 막심 고리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895년 단편소설 《첼카슈 Chelkash (Челкаш)》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소설에서 떠돌이 부랑자인 첼카슈가 물건을 훔치면서도 작은 물건에도 소유욕이 많은 가브릴라에 대비하여 금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인간상을 보여준다. 문학가인 코롤렌코(Vladimir Galaktionovich Korolenko),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와 친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제정 러시아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적인 문학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1899년 자본주의가 인간을 변모시키는 과정을 묘사한 장편소설 《포마 고르제예프》를 발표하며 그의 문학적인 입지는 더욱 견고해진다. 1901년에는 짜르 타도를 외치며 지하인쇄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1905년에 러시아혁명의 기폭제가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을 주도했던 '가퐁신부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와 미국을 여행하며 짜르 정부의 타도와 러시아 민중혁명지원을 호소했다.
그의 생활은 자전적(自傳的) 3부작 《유년시대 Detstvo》(1914), 《사람들 속에서 V lyudyakh》(1916), 《나의 대학 Moi universitety》(1923)에 나타나 있다. 1892년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 Makar Chudra》로 인정을 받았고 이어 《첼카슈》(1895)로 주목을 끌어 희곡 《밤 주막 Na dne》(1902)이 특히 유명하며, 한때 볼셰비키당에 들어가 소설 《어머니 Mat’》(1907)에서 혁명가의 전형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1905년 혁명으로 투옥된 뒤 외국으로 망명, 그곳에서 《레토피시》지(誌)를 발간하여 좌익작가를 모았다. 1913년, 대사령(大赦令)을 이용하여 귀국, 《신생활》지(紙)를 발행하여 레닌파(派)와 대립하였으나 11월혁명(구력으로는 10월혁명) 후에는 신정권을 지지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제창하여 소비에트 문학의 기수(旗手)가 되었고, 미완성의 서사시인 《클림 사므긴의 생애 Zhizn’ Klima Samgina》(1936)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36년 6월 8일 폐렴으로 죽었다. 일설에는 1930년대 후반의 대숙청 때 정적에게 독살되었다고도 한다.
<<유년시대>> : 소년 알렉세이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함께 니쥐니이 노브고로드시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된다. 외할아버지 까쉬린의 가족과 함께 한 삶은 알렉세이로 하여금 금세 어른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소년의 눈에 비친 가족의 모습은 우매하고 가혹한 것이어서 항상 다툼과 폭력이 오고갔다. 아이들에게까지 냉혹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상처받은 알렉세이는 늘 술에 취해있는 삼촌들과 완고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가출을 결심하기도 한다. 소년이 유일하게 좋아한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소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세계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었다. 할머니는 사람들 사이에 선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당신의 삶 자체가 고달팠지만 항상 즐겁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할머니의 모습은 알렉세이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쳤고, 무례를 끼쳤다면 용서를 빌 것을 가르쳤다. 오직 할머니만이 손자를 진심으로 위해 주었으며 그 또한 그런 할머니를 깊이 사랑했다.
외가집에서 살았던 경험은 알렉세이가 더욱 강한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켰고 현명한 지혜를 갖도록 도와주었으며 주위의 삶들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그리고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고달팠던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이 작품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세상속으로>> : 폐결핵으로 어머니가 사망하고 가세가 기운 외가집에서 힘든 생활을 하던 알렉세이는 우연히 오른 윤선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첫 스승인 요리사에게 독서지도를 받는다. 이후 성상판매소 판매보조원을 하기도 하고 성상 조각가들의 작업장 일을 하기도 했으며 공사장 감독원까지 경험하게 된다.
냉혹하다고만 여기던 외할아버지에게서도 깊은 깨달음과 교훈을 받은 알렉세이는 대학에라도 갈 수 있을 기대를 안고 카잔행을 결심하며 소설을 끝낸다.
<<나의 대학들>> : 카잔으로 간 알렉세이는 어려운 살림을 이어나가면서 지하서클 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장례를 치른 1주일 뒤에야 외사촌의 편지로 알게 된 그는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에 휩싸였으며 이후 자살을 감행해 종교재판 후 7년간 파문선고를 받기도 한다. 지하활동중 큰 실망감을 느낀 그는 농민에게 기대를 버리고 노동자에 희망을 걸었으며 카스피해 해안 한 어장의 어업협동조합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소설을 끝낸다.
2교시 수필반
박화영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박옥희 님의 <돌아온 빨간지갑> 두 편을 합평했습니다.
우리 일상속의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글로 녹여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과 작품 속 캐릭터를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함께 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3교시 티타임
청송 문학기행 장기자랑 상금으로 김혜정 반장님께서 3교시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 문학기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정진희 회장님의 남촌 문학상 수상 소식, 사무실 이전 소식 등 함께 기뻐해야 할 일들이 많아 시간가는 줄 몰랐었지요.
다음 주 휴강 시간에 저와 홍성희샘은 새단장을 마친 한국산문 사무실 나들이를 가볼까 합니다.
12시 30분쯤 사무실에서 만나 김형자샘과 오붓한 점심식사도 함께 할 계획이니 시간이 허락하시는 샘들께서도 함께 해주시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 문학기행을 떠나시는 샘들께서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어 오시길 기도합니다.
잘 다녀 오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