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자와 공감하기 위하여 즉 공감능력 증강을 위하여
인문학을 공부합니다.
인문학의 본질은 인간탐구입니다.
첨단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시인이 자연을 노래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정서적 유대관계를 향상시키는 일이지요.
연기/브레히트
호숫가 나무들 사이 조그만 집 한 채.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한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삭막할 수 밖에 없겠지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인 연기로 인해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졌습니다.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풍경이란 언어 주체 내면의 기억, 정서. 경험 등에 의해서
굴절되어 나타난다.”라고 했습니다.
마음 상태에 따라 풍경은 달라 보입니다.
누구는 단풍을 붉은 눈물로,
누구는 생의 느낌표로, 민화투로 또는 술 취한 사내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결국 내 방식으로 굴절되고 표현되는 것이지요.
문학은 인간의 모방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구체적인 인간행위를 모방합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모방인 시와
인간 행위에 대한 모방인 소설로 나뉩니다.
존재는 행위가 있기 전의 본원적 실상으로
행위는 존재로부터 나옵니다.
인간 존재를 모방하는 시는 직관적일 수 밖에 없으며
주관적이고 순간적 문학입니다.
사물을 보는 즉시 감정이 발동하는 것이지요.
마치 플러그를 꽂자마자 불이 들어오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행위를 모방하는 소설은
긴 시간의 사유가 필요합니다.
전동차 안에서 페이스북에 시를 한 번에 세 편씩이나 올릴 수 있는 본인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인이라는 스승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 까르르 웃었습니다.
행위의 모방은 지속되는 행위와 동일한 상황 속의 행위로 나뉩니다.
지속되는 행위의 모방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사건이 이어지는 소설이고
동일한 상황 속의 행위는 사건이 지속될 수 없고
시간, 장소가 정해진 상황 속에서만 일어나는 희곡입니다.
지속되는 행위의 모방 중
사실적 행위이면 전기, 역사
허구적 행위이면 소설입니다.
시는 존재론적 시, 소설 양식을 빌린 이야기시,
드라마나 상황시, 비대상시로 구분됩니다.
비대상시를 제외한 모든 시는 대상에 대한 의식행위로 시를 쓰는데
비대상시는 초현실의 시로 이상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이용악, 백석, 신경림의 시와 김명인, 김용택의 초기 시들이 이야기시에 해당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쉬운 시들입니다.
한국인 DNA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지요.
줄글이라도 시적 표현이 있으면 시이고
행갈이를 했더라도 시적 표현이 없으면 시가 아닙니다.
시적 표현이란 이미지, 묘사, 상징, 알레고리, 반어 ,역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산문의 문체에서도 이와 같은 구성요소를 활용해야 하지요.
그래야 다채롭고 감미롭고 맛깔스러운 문장이 됩니다.
존재의 본질적 문제인 사랑, 삶, 이별 등등은 이성으로 사유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정답은 얻지 못하더라도 산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비유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느낌으로 알 수 았게 하는 것
그래서 본질적 정서를 건드리는 것이 수필입니다.
사실을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시론을 복습하며 결국 본질은 비슷한 수필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려우면 일단 의인법으로 시작하라는 스승님의 팁을 기억하세요.
언제나 읽어도 좋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주옥같은 문장들 중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이 두 문장을 다시 한번 음미해 봅니다.
총무님이 사 오신 새콤달콤한 귤을 까먹으며
시월의 마지막 강의를 끝냈습니다.
잔뜩 찌푸리던 하늘은 결국 비를 뿌리고
이제 이 비가 그치면 낙엽이 거리를 뒤덮겠지요?
한결 쌀쌀해진 날씨에 감기 조심들 하세요.
가을 학기의 마지막 달 11월에도 모두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