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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결코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답니다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5-10-19 19:42    조회 : 3,943

주름진 거울 / 이재무

 

거울 속 굵게 팬 주름들 곁,

갓 태어난 잔주름들

어느새 일가를 이루었구나

    

저 굴곡과 요철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이 만든 것

 주름 문장을 읽는다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눈에 거듭 밟히는

 윤곽 흐릿한 얼굴이 있고

 만지면 촉촉이

 손에 습기가 배는 풍금소리가 있다

 

 이마에서 발원한 주름 물결

 번져서 온몸을 덮으리라

   ,

눈 내리는 마을은 시련을 뜻하고

윤곽 흐릿한 얼굴은 흘러간 나의 인연, 첫사랑을 말합니다, 

풍금소리는 말할 수 없는 서정,슬픔 희로애락이지요.

우리는 태어나 책 한 권을 쓰고 갑니다.

굴곡과 요철은 주름을 말함이요

세월이란 펜으로 내가 쓴 문장들입니다.

사람은 곧 책입니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오는 사람은

그의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사건인지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를 맞아야겠습니다.

 

시는 어지러운 마음속에, 부족한 마음에

깃들기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라고 함민복 시인은 말합니다.

박범신 소설가는 문학은 고통을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고통과 불행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지요.

 

오늘도 함민복 시인의 주옥같은 문장을 공부했습니다.

아지랑이 수직의 악보를 타고 노란 나비 너울너울 춤추며

아지랑이를 악보로 보고 나비가 춤추는 정경이 그려지지요?

서정주 시인은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고 했습니다.

봄부터 초록색옷만 입던 잎사귀들도 지겨웠나 봅니다.

홍엽이 되더니 낙엽으로 변하니까요.

단풍을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보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띄우는 선홍빛 연서라든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뭔가 일깨워주려는 듯

느낌표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지요.

 

미루나무가 깜짝 놀란다.’

글이 잘 안 풀릴 때는 의인화로 써 보세요.

미루나무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파르르 이파리를 떤다.’

감정이입이 잘 된 문장입니다.

 

 

영실營實 / 김신용

 

산비탈 가시덤불 속에 찔레 열매가 빨갛게 익어 있다

 잡풀 우거진 가시덤불 속에 맺혀 있어서일까?

 빛깔은 더 붉고 핏방울 돋듯 선명해 보인다

 겨울 아침, 허공의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처럼 눈에 선연해

 눈이라도 내리면, 그 빛깔은 더욱 고혹적일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담장의 철조망처럼 얽혀 있는 찔레 덤불 속

 손가락 하나 파고들 틈이 없을 것 같은 가시들 속에서

 추위에 젖은 손들이 얹히는 대합실의 무쇠난로처럼 익고 있는 것은

 아마, 날개를 가진 새들을 위한 단장일 터

 마치磨齒의 입이 아닌, 부드러운 혀의 부리를 가진 새들을 기다리는 화장일 터

 공중을 나는, 그 새들의 눈에 가장 잘 띄일 수 있도록

 그 날개를 가진 새들만 다가올 수 있도록

 열매의 채색을 운영해왔을 열매

 영실이라는 이름의 열매

 새의 날개가 유목의 천막인 열매

 새의 깃털 속이 꿈의 들것인 열매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을까, 그 유목의 천막에 드는 일

새의 복부속에 드는 일

 남의 눈에는 영어 같겠지만, 전락 같겠지만

 누구의 배고픔 속에 깃들었다가 새롭게 싹을 얻는 일, 뿌리를 얻는 일

 그렇게 새의 먹이가 되어, 뱃속에서 살은 다 내어주고 오직 단단히 씨 하나만 남겨

 다시 한 생을 얻는 일, 그 천로역정을 위해

 산비탈의 가시덤불 속에서 찔레 열매가 빨갛게 타고 있다

 대합실의 무쇠난로처럼 뜨겁게, 뜨겁게 익고 있다

 

식물들은 죽기 전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익기 전에 열매가 맛이 없는 이유는 새나 사람들에게 아직은 먹지 말라는 뜻이요

다 익었을 때 향이랑 맛이 매혹적인 이유는 이제 먹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열매는 먹혀야만 단단한 씨만 남아서

또 다른 열매로 태어날 수 있지요.

이 모든 것이 종족 번식의 본능에서 비롯된 자연의 법칙입니다.


어떤 출토 /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생명을 가진 것은 남의 것을 빼앗아 먹다가

결국 죽어서 남의 밥이 됩니다.

자연의 순리입니다.

시인은 늙은 호박이 죽어 여러 벌레들을 먹이고

종잇장이 되어버린 것을 소신공양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느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 그 일부가 될 테니까요.

 

가을이 무르익어 갑니다.

이왕이면 가을에 관한 글을 써보라고 스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파란 가을 하늘과 나날이 짙어지는 단풍들을 관찰하며

상상력을 펼쳐보며 시인이 되어 보세요.

가을은 결코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답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이순선샘이 따끈한 고구마를

한 팩 씩 예쁘게 싸오셔서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총무님은 달달한 스낵바를 나눠 주셨고요.

풀꽃 문학상을 수상하신 스승님은 참 행복해 보이셨어요.


박래순   15-10-19 20:42
    
초록 잎에 여름 이야기를 적어놓고 가을 단풍잎엔 가을 이야기를 적어야겠어요.
초록 잎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 꽃으로 피어나는 잎이라는 걸 가을이 알려주었거든요.
오늘은 가을 시 수업이 마음을 흥분시켰고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게 했지요.
부지런한 반장님 덕분에 못다 읽은 시를 마저 공부했군요. 수고하셨어요.
     
한지황   15-10-19 21:40
    
가을만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요?
봉평  나들이의 추억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네요.
올가을은 유난히 따사롭네요.
가을 여행을 단순한 여행으로 끝내지않고  멋진 수필로 승화시키는 래순샘의 가을은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이지요.
          
김정미   15-10-19 23:08
    
박래순선생님!
분당반 김정미입니다.
저의 첫 글 자기소개서에
댓글 달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이 쯤에서야 하게 되었네요.
물론 등단도 했답니다.
기특하지요?
덕분입니다.
가을이야기 대신
감사하다는 이야기 드리며
이만 폴폴폴~~~
               
박래순   15-10-26 22:08
    
정미샘! 등단 축하드려요. 좋은 글 많이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어 보세요.
열정이 있으면 신경숙 작가도 능가합니다. 화이팅!
공해진   15-10-19 22:25
    
지황 반장님,
래순샘이 계셔 든든하고 이뿐 순선샘이 오셨군요. 인영샘! 가을 타걸랑 큰바구니 들고 오세요.
     
한지황   15-10-19 23:11
    
공해진 선생님.
가을을 멋지게 보내고 계시겠지요?
아름다운 시월, 행븍하세요!
          
공인영   15-10-22 00:09
    
우리 벗들과 공선생님...
단풍에 마음 한 자락 묻혀 날려보내니,
남은 가을 속에서 모두 아름답게 물들어가시길요.
     
박래순   15-10-26 22:09
    
ㅎㅎ 공샘! 멋지셔요.
진미경   15-10-19 22:45
    
후기 제목처럼 가을은 결코 오래 머물지않지만 그 아름다움은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현종시인의 방문객 싯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인데요.
일주일에 한 번 독토모임과 수필반 수업에서 만나는 우리는 권태로울 틈이 없어요.
책읽어야죠. 이야기 나누어야지요. 덤으로 웃음도 얻어갑니다.
오늘은  시 선물을 꾸러미로 받았잖아요.
반장님의 후기를 읽으며 다시금 곱씹어봅니다.
감사드려요.^^
     
한지황   15-10-19 23:42
    
얄미울 정도로 짧게 머물다 서둘러 돌아가 버리는  가을이기에 더 애착이 가는걸까요?
그만큼 귀하기 때문에 가을의 항기를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싶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추억이란 책갈피에 담아두듯이 말이지요.
미경샘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 창비 소설전집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니
참 행복합니다.
김정미   15-10-19 23:12
    
후기로
많은것 느끼며 배웁니다.
아!
이 가을에
이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감사합니다.
이재무 시인,교수님!
축하드립니다.
     
한지황   15-10-19 23:45
    
김정미선생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시처럼 멋진 가을 만끽하세요!
최영자   15-10-20 16:23
    
반장님. 가을을 얘기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주에 들깨 수확을 했습니다.
시어머니, 아버님과 남편이랑.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여름을 지나면서  저것들이  열매를 맺기나 할려나 걱정했는데
툭툭  터는 깻단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들깨들을 바라보며
비록 식물이지만 모진 가뭄에도 열매를 맺고 제 할일을 마친 깨나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깨나무뿐 아니라. 고구마, 콩등등
먹거리를 제공 해준 모든 식물들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을이 사랑스럽습니다.

담주에 만나요.
     
한지황   15-10-21 20:05
    
수확의 계절이 영자샘의 가정에 찾아왔군요.
들깨의 향내가 풍겨오는 것 같아요.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가 그리도 울었듯이
캐나무에서 깨를 수확할 때까지
바람,햇살, 비 그리고 시어머니의 정성이 대단했겠지요.
울론 깨나무도 대단하고요.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이게 되는가을이 깊어가네요.
진미경   15-10-20 18:11
    
최영자샘의 수필인 참깨 한 알이 생각납니다.
이번엔 들깨 ?
생활에서 글감을 길어올리는 영자샘이 보고싶어요.
이 번 주 안보이셔서 서운했답니다 .
가을이 사랑스럽죠!  저도 그렇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