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권두시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을 공부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다루었던 시이기에 친숙하지만
기승전결의 구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요.
1,2,4연에 나오는 술병, 빈병, 소주병과 달리
3연에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기승전결 형식에서는 ‘전’에서
‘그런데 ,‘그러나’와 같이 소재가 달라집니다.
이 시는 비유의 원리에 의해 쓰였습니다.
두 개의 대상 사이의 유사성이 비유인데
형태나 내용의 유사성 중
이 시에서는 내용의 유사성을 다루었지요.
자기를 따라주면서 빈 것이 되어간다는 유사성이지요.
수필에서도 이 비유의 원리를 적용하면
순조롭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생활 이야기로 들어가지 말고 주제가 나오기 전에
비유되는 사물을 써 내려가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선경후정의 원리도 좋습니다.
꼭 기행문에서만 쓸 수 있는 기법이 아니지요,
불이 나지 않으려면 퓨즈가 나가야 합니다.
퓨즈가 죽는다고 구리로 바꾸면 화재가 나지요.
자발적 희생 실천이 아니면 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퓨즈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바로 지성인이지요.
지식노동자인 지식인과 지성인은 다릅니다.
전문 분야에 통달한 사람인 지식인은 많으나
성찰하고 행동하는 지성인은 드뭅니다.
현실 속에서는 윤리적 판단, 결론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글에서 정답을 향해서 달려가는 태도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쉽게 반성에 이르면 글의 격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렵구나하는 공감을 일으키기 위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관성화된 반성은 기계적 반성으로
죄짓는 것보다도 더 나쁠 수 있습니다.
갈등 그 자체를 그려내는 글이 좋습니다.
독자 위에 군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죄와 벌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내 안의 속물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인 김수영의 용기는 대단합니다.
처절한 반성과 함께 내 안의 치부를 드러내었기에
생명력이 강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소설, 영화를 이해하려면 그 안에 있는 상징을 이해해야 합니다.
영화 <설국열차>는 전부 상징으로 꾸며져 있지요.
총리의 치아가 전부 쇠인 것과
마지막 열차에서의 열차 지배자가 자꾸 손을 돌리는 행위도
노동자 출신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열차의 폭발은 문명사회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열차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폭발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최후에 남은 두 아이가 혼혈아와 흑인인 것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한 자의 상징입니다.
물고기를 죽이는 장면은 너희들이 계속 저항하면
물고기들처럼 죽음을 당한다는 암시이고요.
뜨개질하는 아녀자들은 집단 이익에만 빠진
중산층 이기주의를 상징합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장인의 제약회사 부장인 주인공이
무진 기행에서 만난 음악교사 하인숙과의 만남에서 갈등하다
아내로부터 빨리 올라오라는 전보를 받고는
홀로 서울로 올라온다는 내용입니다.
하인숙은 주인공의 이상적 자아,
아내는 현실적 자아입니다.
두 자아 사이에서 현실적 자아를 선택한 김승옥은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이유를 암시했다는 설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 절필한 천재 작가 김승옥이
계속 소설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회계사 아드님 한턱을 내신 성희샘 덕분에
맛있는 점심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햇밤을 손수 쪄오신 한나샘과
곶감을 갖고 오랜만에 나타나신 인영샘,
모두 고맙습니다.
한가위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한 주 건너뛰어 시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