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에 발표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황석영의 주요 관심사가 성공적으로 그려진 소설로
고달픔과 쓸쓸함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생계를 위해 세상에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인
영달, 정씨 백화 세 명은 각각 개성이 다르지만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요.
임과 집, 길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길은 인생, 여정, 미래를 뜻합니다.
노신은 1921년작 단편 <고향>에서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도시화 혹은 산업화로 영혼의 안식처마저 잃어버린 존재들은
황석영 소설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영달과 정 씨는 눈이 많이 오자 가던 길을 틀어 감천역으로 향하고
백화와 우연히 만나지요.
함께 걸어가다 하이힐을 신은 백화가 눈길에 발목을 삐끗하자
영달이 업어주고 부축을 해줍니다.
감천 역에서는 영달이 먹을 것과 표까지 사서 백화에게 주자
그녀는 감동하여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며 떠납니다.
<삼포 가는 길>에서 삼포는 정 씨의 고향입니다.
하지만 삼포는 그의 고향만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들의 고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포 가는 길’은 ‘고향 가는 길’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이 당시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촌 인력은
도시와 공장으로 급속하게 유입되었습니다.
정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고향 삼포마저도
다리가 생기고 관광호텔을 짓느라 야단인 것을 알게 됩니다.
믿었던 삼포에 가기가 싫어진 그는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집니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결국 이들의 삶 앞에는 피곤한 영혼이 쉴 공간마저 없는
어둡고 굴곡진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의식하지 못했던 60~70년대를 소설을 통해서 실감나게 그린
<삼포 가는 길>을 공부하며 현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황석영의 <객지>도 읽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삼포 가는 길>이 개인만의 문제로만으로 노동조합의 설립 조짐을 보여주었다면
<객지>는 최초로 집단으로 싸운 노동조합의 설립을 보여줌으로써
주제의식이 진일보되었습니다.
노동소설은 80년대에 들어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이어집니다.
정님이 / 이시영
용산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 매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 있니 맛 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섣달 긴 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당잘그당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나올 것만 같더니
한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종로 5가 / 이승엽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 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宗廟)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 묻은 긴 편지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 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 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70년대의 용산과 종로 5가를
잘 그려낸 시 두 편입니다.
라오스 매니아들이 있다고 하지요?
라오스의 현재는 우리나라 60~70년대와 비슷해서
어린 시절의 향수에 빠져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위의 시 두 편과 함께 향수에 젖어볼까요?
봄바람이 한결 따스해져서인지 결석자의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자꾸 바쁜 일들이 생기니 어쩔 수 없겠지요.
3월 마지막 수업인 다음 주에는 꽉 찬 강의실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