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리자> 를 통해서, 낯설었던 한 러시아 작가의 이름이 이제는 꽤나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니콜라이 카람진‘ , 1766년 심비르스크 출생으로 러시아의 작가, 역사가, 저널리스트이며 비밀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러시아 문학의 감상주의 유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귀족 출신으로 모스크바에서 교육받았고 계몽주의 철학과 서유럽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2년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영국을 여행한 후 <<모스크바 저널>>을 창간하고 <<러시아인 여행자의 편지>>를 발표합니다. 이는 대단한 호평을 받으며 러시아에 계몽적, 유럽적 문화를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그의 대표소설인 <가엾은 리자>(1972)와 <보야르의 딸 나탈리야>를 발표하는데 장 자크 루소와 로렌스 스턴의 영향을 받아 자기 폭로적인 문체로 쓰여 졌습니다.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의 친교 덕분에 궁정사가 가 되고 전 12권으로 된 <<러시아 제국의 역사>> 집필에 여생을 바쳤습니다. 최초의 러시아 개설서인 이 책은 러시아 전제정치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면서 역사 사건에 대한 외국 기록과 무수한 문서를 활용한 저술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민중 없이 러시아는 없다‘ 는 인식을 했던 그는 농민들의 일상 언어인 러시아어를 문학용어로 승격시켰고, 농노계급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갖고 있어서 작품 속에 그네들을 반영했습니다.
1826년 카람진은 12권의 역사서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사망했습니다.
‘가엾은 리자‘ 에는 당시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감상주의를 유감없이 반영했습니다. 감상주의에는 크게 두 가지 문학경향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에 반기를 든 ’질풍노도’ 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에 호소해 눈물을 쏟게 하는 ‘묘지 문학‘ 이었습니다. 묘지 문학은 이름 그대로 대부분 사연 많은 황폐한 무덤가에서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가엾은 리자‘ 도 시작 부분에서 폐허가 된 수도원 무덤들 사이로 부는 바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리자는 은방울꽃을 팔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귀족 청년 에라스트를 만납니다. 에라스트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풍기는 리자에게 반하여 한동안 상류사회를 버리고 그녀와 만남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범한 후에는 전쟁을 핑계로 작별하고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에라스트는 우연히 다시 만난 리자에게 백 루블을 주고 하인을 통해 집밖으로 쫒아냅니다. 리자는 깊은 절망 속에서 연못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합니다.
‘신분상의 차이로 인한 불행한 사랑‘ 이야기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자연 묘사에 빠져들며 읽다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화자‘ 에 소설의 흐름이 방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열고 닫는 ’화자’ 는 가끔씩 중간에 등장하여 독자의 눈물을 유도하려 합니다. 마치 신파극의 ‘변사‘ 같아서 오히려 소설의 감동을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화자가 드러나지만 않았다면 한편의 아름답고도 슬픈 동화 같은 소설 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현대소설에 익숙한 우리의 편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남성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쾌락의 끝‘ 까지 가고 나서 원래의 제 갈 길로 돌아서는 에라스트에 대한 묘사입니다. 김은희샘은 이 부분에서 ’사랑의 행위는 뒤로 갈 수 없다.‘ 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뒤로 돌아간다면 사랑이 끝났음을 의미 하겠지요.
또한 이 소설에서는 죽음이 연속됩니다. 수도원 묘지에서 수도사들의 죽음을 묘사한 것에서부터 농부였던 리자 아버지의 죽음, 리자의 죽음, 리자 어머니의 죽음, 에라스트의 죽음등 소설 전체에 불행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도 독자의 눈물을 쥐어짜기 위한 감상주의 문학의 장치일 것 입니다. 거기에다 은방울 꽃의 꽃말이 ‘성모의 눈물’ 이라고 합니다.
토론 때 우리는 우리들의 청춘 때의 사랑과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을 잠시 비교하기도 했고 리자가 못 생겼다면 사랑도 비극도 없었을 텐데 예뻤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볼일이 있어 못 나오신 이순례샘, 낭군님 일 돕느라 못 나오신 엄선진샘, 강의가 있어 못 나오신 청일점샘, 다음 주 에는 푸쉬킨의 <역참지기>와 함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