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봄 학기 두 번째 수업입니다. 작품 합평과 교수님의 글<오래전 시를 읽던 날>, 베르너 하이두체크<못생긴 작은 새 이야기>124p~127p로 빼곡하게 시간을 채웠습니다.
<만점짜리 엄마-한금희>
말하듯이 거침없이 쓴, 생기 있고 재미있는 글이라는 평입니다.
만점의 관점, 혹은 판단은 자녀의 입장에서이지 엄마의 관점에서는 아니라는 일부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교수님의 글 <오래전 시를 읽던 날>을 감상했습니다. ‘문학의 향기’ 2007년 3월호에 실린 글로 10~15년 전, 장례식에서 상주를 인도하던 제례관 모습의 시인 전영경 선생과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을 쓴 글이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당시 책을 통해 본 이미지와 실제로 만난 자연인 전영경 선생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서 놀라웠다고 했습니다.
흔히, 작품과 작가가 연결되어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험하다고 작가가 험하고, 작품이 아름답다고 작가가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즉 어떤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어떤 시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어떤 꽃(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작품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 그 작품의 작가가 좋다는 것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작품과 작가를 분리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시인 ‘이상’을 자연인 김해경으로 보지 않고 막연하게 ‘날개’의 주인공으로 보듯이 우리가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도 분명 자연인의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미당 서정주(1936. 시인부락 동인)가 쓴 시인 이상에 대한 글을 보면, 이상의 시가 난해하고 괴짜스럽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가 부른 ‘태평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서정주 시인이 들었던 태평가처럼 이상을 보는 것, 그의 탁월한 기법, 성음을 연구하는 것이 이상을 연구하는 것일 것입니다. 작품은 작가의 자세로 하며, 작가의 자세가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르너 하이두체크<못생긴 작은 새 이야기>는 어른들 속에, 아이들 속에 무엇을 건드려 준 것인지를 알고 느껴보면 좋을 것 같은 동화입니다. 고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지지리도 못생긴 걸 탓하는 작은 새와, 반쪽 몸을 가진 걸 비탄해 하는 늙은 달과, 낮에만 뜨는 걸 침통해 하는 태양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부족한 면만을 보며 말하고 있습니다. 뒷부분에 어떤 반전이 이어지는지, 제출된 3편의 작품과 함께 읽고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오늘 교수님의 원고청탁 날짜 메모 하셨죠? 약속한 날짜 이외에도 원고는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지켜보면서 머지않아 사람의 능력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 작가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는, 지구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그들의 글이 점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복잡 단순한 염려(?)를 잠깐 해 봤습니다. 그러나 염려는 하되 두려워는 마시고 우선, 올 봄엔 우리 교수님이 원고를 읽느라 불면의 밤을 보내시도록 글 많이 쓰는 월님들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