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제사 /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일가(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 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 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제사를 즐겁다고 한 이 시에서는
아이들이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닌다는 표현이 좋습니다.
명절 풍속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고 있지요.
본래 의미가 변질된 명절은 현대판 이산가족의 만남일 뿐입니다.
이 두 번의 명절이 없다면 형제를 비롯한 친척들은
십 년이 가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69년 부산에서 출생하고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한 시인 박지웅은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즐거운 제사〉로 당선되었고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과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를 출간하였습니다.
가족사진 / 이창수
할머니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
우리 가족의 균열을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더디게 가는 시간에 지친 형들이
이러다 차 놓친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처럼
잠시 후엔 누가 붙잡지 않아도
제풀에 지쳐 제각각 흩어져
갈 것이다
언제나 쫓기며 살아온 우리 가족
무엇이 그리 바쁘냐며
일부러 늑장을 부리시는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 위로
플래쉬가 터진다
순간, 담장을 타고 올라온
노오란 호박꽃이
푸른 호박을 끌어안고
환하게 시들어간다
가족의 균열을 다룬 시입니다.
'환하게 시들어 간다'는 모순으로 역설적 표현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밥을 먹었으니 모두들 서둘러 떠나려고 합니다.
명절 때 흔히 보게 되는 쓸쓸한 풍경이지요.
1970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고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한 시인 이창수는
2000년 <시안>으로 등단하였습니다.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시인은 봄이 딴 짓을 하느라고 쉽게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계절을 의인화 하여 의인관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이렇게 의인화를 하면 쉬워집니다.
봄은 가장 까다로운 20대 여인처럼 변덕이 심하지요.
왜 봄이 까칠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0년대에 쓰여진 이 시에서는 봄을 민주화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는 그만큼 어려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 시는 중의법을 사용했습니다.
1942년에 태어나 2012년에 사망한 시인 이성부는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서 시<<바람'>이 당선되었습니다.
한 주를 결석하고 미안한 마음에 맛있는 떡을 갖고 오셨다는
문정혜샘 덕분에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늘 성실한 자세로 강의실을 지켜주시는 문정혜샘,감사합니다.
한결 봄이 무르익었는지 무척 따스한 월요일이었습니다.
더디게 더디게 와서인지 더욱 소중한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