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3. 2, 수)
ㅡ 크로스오버 삼국지(1)
한국산문 김창식
1. 핵심 세 대목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및 모종강 계열의 각종 판본)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지만 열렬한 팬이다. 박태원의 <<삼국지(정음사)>>,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어문각)>>, 김구용 <<삼국지(솔출판사)>>를 읽었고, 그밖에 신문에 연재된 이문열 등 다른 분들의 <<삼국지>>를 띄엄띄엄 읽었다. 고우영 만화도 보았고,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구전으로도 전해 들었다.
삼국지 전반을 살펴볼 때 이야기 흐름을 일거에 바꾼 결정적인 분수령이 된 핵심적 사건은 '적벽대전(赤壁大戰)', '관우분사(關羽憤死)', '공명출사(公明出師)' 세 대목이다. 삼국의 정세에 미친 영향, 중심인물들의 충절과 탁월한 심리묘사,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이 모두 녹아있어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위에서 소개한 하이라이트 대목들의 역사적 의의를 짚어 본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전반을 통해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이 전투의 결과로 삼국정립(鼎立)의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조의 위(魏)나라가 촉(蜀), 오(吳) 동맹군에 승리했다면 당연히 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없었을 것이다.
촉나라 형주(荊州)성의 총사령관이었던 관우의 분한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관우의 죽음은 지금껏 삼국지를 이끌어 오던 올드보이들이 대거 퇴장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이야기 흐름은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구도로 전개된다.
삼국지 후반부에 제갈공명은 후주(後主) 유선에게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는 저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를 품신하고 여섯 번에 걸쳐 기산으로 나아갔으나(六出祁山), 사마중달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오호통재(嗚呼痛哉)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졸(卒)함에 삼국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공명 사후에도 삼국지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끝내기 수순일 뿐.
2. 흐름을 뒤바꾼 3대 전투
가. 관도대전(官渡之戰)
중국 후한(後漢) 말기 화북(華北)의 2대 세력이던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일대 결전. 199년 랴오둥[遼東]의 공손찬(公孫瓚)을 격파한 원소는 다음해 대군을 인솔하고 남하하여 당시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허난성[河南省]의 쉬창[許昌]에 할거하고 있는 조조와 맞붙게 되었다. 조조는 관도(官渡)에 진을 치고 원소의 대군을 맞이하여 책략과 기습으로 격파하였다. 조조는 이 싸움(200∼201)으로 화북의 지배를 확립하고 세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으며, 촉(蜀)의 유비(劉備)·오(吳)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중국을 3분하게 되었다.
나. 적벽대전(赤壁大戰)
중국 후한(後漢) 말기에 조조(曹操)가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싸웠던 전투. 원소(袁紹)를 무찌르고 화북(華北)을 평정한 조조는 형주목(荊州牧)을 지키고 있는 유표(劉表)를 정복하고 형주땅을 차지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유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손쉽게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강릉으로 달아나는 유비를 추격하였다.
조조군은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적벽에서 손권·유비 연합군과 대치한다. 그러나 조조군은 손권의 장수 황개(黃蓋)가 화공(火攻) 계략을 세워 전선(戰船)이 불타는 대패를 당하고 화북으로 후퇴했다. 이 결과 손권의 강남 지배가 확정되고 유비도 형주(荊州:湖南省) 서부에 세력을 얻어 천하 3분의 형세가 확정되었다. 정사에는 없는 허구이지만, 적벽대전의 3대 하이라이트는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의 동남풍', '화룡도에서의 조조와 관우의 조우'이다.
다. 이릉대전(夷陵大戰)
이릉대전(夷陵大戰), 또는 효정전투(?亭戰鬪)는 221년 촉한의 황제 유비가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손권의 오나라를 침공해 발발한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유비는 육손의 화공(火攻)과 뒤이은 공격에 의해 참패하고 백제성으로 물러났다. 제갈량이 기획한 천하삼분지계가 종언을 고한 전투이자 촉나라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전투이다. 이로 인해 실의에 빠진 유비는 223년 사망한다.